- 미중 무역 분쟁에 삼성ㆍSK하이닉스 등 전전긍긍 - 외교 문제로 비화할 것 우려하는 정부도 속수무책 - “기본적인 가치, 국가의 성격을 원칙에 입각해 ”
[헤럴드경제=이태형 기자]미중 무역 분쟁이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상황에서 양국이 이들 ‘빅2’의 틈바구니에 낀 글로벌 기업들을 상대로 노골적인 압박에 나서면서 한국 기업들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고래 싸움에 결국 새우등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가운데 빅2의 갈등이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긴요한 대책마련이 요구된다.
10일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최근 뉴욕타임스는 중국 정부가 삼성, SK하이닉스와 미국 영국 등 기술 대기업을 불러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중 압박에 협조하면 “심각한 결과(dire consequences)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해리 해리슨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 5일 국내 기업들에 ‘중국 화웨이 장비를 쓰지 말라’고 요구하자 이에 맞서 중국이 ‘반(反)화웨이 전선에 동참하지 말 것’을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나섰다. 중국 정부가 중국 기업과 국가 안보에 피해를 주는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목록을 만들겠다고 발표한 직후 다시 외국 기업을 불러 직접 압박에 나선 셈이다.
중국 정부는 미국 기업에 대해선 중국과의 거래를 제한하면 ‘영구적인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한편, 미국을 제외한 제3국 기업에는 중국 기업에 대한 공급을 정상적으로 지속하면 불리한 상황에 직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들 국가와 거래하는 삼성과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은 ‘우황 든 소 앓듯’ 전전긍긍하고 있다.
업계는 중국 정부와의 기업들 간 현지 미팅 자체에 대해서도 “확인을 안 해준다”며 함구하고 있다. 국가적 이슈에 대해 개별 기업이 의견을 내놓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분위기다.
다만, 미중 무역분쟁이 진행되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다양한 대책 마련에 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화웨이에 대한 매출은 지난해 전체 매출(244조원)의 2% 선에 불과하지만 반도체, 디스플레이는 화웨이가 삼성의 5대 거래선 중 하나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전체 매출 40조원의 10% 안팎인 약 4조원 가량을 화웨이와의 거래에서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엄치성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협력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 기간부터 일관성있게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도 미리 대책을 세웠어야 했는데 준비과정부터 늦었다. 지금부터라도 치밀한 전략을 세워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국 간 무역전쟁의 불똥이 한국으로 튀면서 한국 정부와 기업에 ‘내편들기’를 강요하고 있는 형국이지만, 그동안 이들 국가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기조로 삼아 오던 정부로서도 곤혹스런 상황이다.
어느 일방의 편을 들었다가는 해당 국가로부터 무역 보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파장은 차치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작동시키고 있는 정부 입장에서는 양국 중 어느 한 국가와의 관계라도 틀어지면 북한을 향한 공조가 어려워지는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다.
외교부 내에 미중 관계 태스크포스(TF)를 신설하는 등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정부의 대응 전략이 부재하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미중 갈등은 신냉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다방면에 걸쳐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본다”며 “전략적 모호성이라든가 임기응변, 뾰족한 수가 없으니 세월을 보내보자는 식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전 본부장은 “중국과 국가정체성 측면에서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우리 세대는 물론이고 다음 세대까지 생각한다면 우리가 지켜가야 할 기본적인 가치, 국가의 성격을 원칙에 입각해 대외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국 간 무역분쟁이 ‘거대한 체스판’ 위에서 글로벌 패권을 놓고 진행되는 만큼 단순한 통상 마찰을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의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치열한 수싸움이라는 점에서 조만간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도 어렵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들이 직면해야 하는 상황은 더 엄중해질 수 밖에 없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은 “지금 상황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들 순 없다. 우리 상황을 미국도 중국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우리로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면서 줄타기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위주로 문제를 풀 수 없는데다 자칫 잘못 대처할 경우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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