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동성 큰 장에서 경상수지 주목 왜
연간 4500억달러 흑자 달성 가시화
주가·환율 동시 하락…위기론 일축
고금리 장기화에 투자 불확실성 커져
AI 중심 종목·채권 분산, 적립식 주목
[헤럴드경제=김벼리 기자] 최근 급락한 뒤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는 증시에 투자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앞으로 글로벌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투자 환경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가만 봐서는 위기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며 환율과 경상수지 등 대외 경제 지표들을 함께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위기론’ 비웃는 경상수지…3개월 연속 400억달러 웃돌아
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8월 경상수지는 461억1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6월(497억3000만달러)에 이어 역대 2위에 올랐다. 3개월 연속 400억달러를 웃돌았다.
경상수지란 한 국가가 다른 나라들과 상품, 서비스, 소득 등을 주고받은 모든 일상적인 경제 거래의 차액을 나타내는 지표다. 경상수지가 흑자라는 것은 쉽게 말해 외국에서 벌어들인 돈이 외국에 지급한 돈보다 많다는 뜻이다.
경상수지는 올해 글로벌 반도체 수요 급증에 힘입어 흑자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 1~8월 누적 흑자는 2792억달러로 지난해 연간(1231억달러)의 두 배를 넘었다. 연간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2015년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넘긴 뒤 떨어졌다가 2023년(325억달러)부터 3년 연속 증가하며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8월에도 구글·아마존 등 글로벌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클라우드 사업자)의 설비투자 확대로 인공지능(AI) 인프라 수요가 이어지면서 반도체 수출이 급증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8월 수출액 982억5000만달러 중 47%에 해당하는 466억5000만달러가 반도체 수출에서 나왔다. 반도체 수출은 3개월 연속 400억달러 이상을 기록했다.
지금 추세대로면 연간 4500억달러도 무난히 달성할 전망이다. 한은은 지난 8월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연간 흑자 전망치를 기존(2500억달러)보다 2000억달러 높인 4500억달러로 제시했다. 유성욱 한은 금융통계부장은 8일 국제수지 설명회에서 “연간 4500억달러 전망 중 하반기가 2590억달러였다. 8월까지 경상수지 흐름을 보면 전망이 대체로 부합한 수준”이라며 “9월 같은 경우에는 무역수지가 지금 예상을 뛰어넘는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연말로 갈수록 수출 집중 효과도 있어서 전망 수준 정도는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록적인 경상수지 흑자 행렬과 달리 증시는 부진한 상황이다. 코스피 지수는 지난 6월 9000선까지 올랐다가 급락하면서 7월 30일에는 5593.6까지 떨어졌다. 그 이후 소폭 회복했지만 여전히 7000을 사이에 두고 줄다리기하고 있다. 급등락기록하는 증시에 일각에서는 ‘AI 버블(거품)론’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보면 한국 경제가 위기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대표적인 게 환율 흐름이다. 코스피가 급락하고 횡보할 동안 원/달러 환율은 추세적으로 하락해왔다. 한은에 따르면 월평균 원/달러 환율(주간종가 기준)은 6월(1528원) 이후 7월(1488.9원), 8월(1404.4원), 9월(1358.8원) 등 계속 떨어졌다. 일반적으로 경제 위기가 와서 주가가 급락하면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가 높아지면서 환율이 오르는 것과는 반대되는 흐름이다. 따라서 주가 하락은 위기의 신호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위기 없이 주가만 빠졌다면 특정 업종에 쏠렸던 기대가 되돌려진 결과일 가능성이 크고, 이 경우 근본적인 위기보다 회복에 걸리는 시간도 짧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오건영 신한은행 패스파인더 단장은 지난 2일 ‘헤럴드머니페스타 2026’에서 “주가가 내려가면서 달러가 뛰는 건 상관관계, 위기가 와서 달러가 뛰는 건 인과관계”라며 “위기가 오면 주가는 급락하고 달러는 오르지만, 주가가 내려간다고 꼭 달러가 오르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원래 연간 1000억달러 경상수지 흑자를 내면 ‘A+(플러스)’라고 했는데 올해는 7월까지 누적 흑자가 2300억달러다”라며 “유가가 오르는 속도보다 반도체 가격이 오르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실제 8월 반도체 수출 물량이 10% 증가할 때 반도체 가격은 2배 가량 뛰었다.
고금리 장기화에 투자 불확실성 커져…“그래도 AI는 유효”
주요국들의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AI 투자는 앞으로도 유효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달 정책금리(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3년 2개월 만에 0.25%포인트 높였고, 일본은행도 0.25%포인트 올리며 31년 만에 최고 수준을 찍었다. 한국은행도 지난 7·8월 기준금리를 연이어 올렸다. 8일 미국 국채 10년물과 30년물 금리는 각각 5.36%, 5.73%까지 오르며 200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금리 국면에서는 투자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 안전자산의 수익률이 높아지면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투자할 이유가 약해지고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의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오건영 단장은 “금리 상승세가 꽤 오랜 기간 이어질 것으로 확신하는 순간 시장은 긴장하게 될 것”이라며 “금리가 내려갈 때 투자하는 것보다는 불확실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여전히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투자에 힘을 실었다. 오 단장은 “AI 혁명이 무너지면 전 세계 국가들의 부채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AI 쪽으로 국가적인 차원의 지원이 이어질 것”이라며 “길게 본다면 포트폴리오를 AI 쪽에 넣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창규 미래에셋자산운용 ETF(상장지수펀드)컨설팅본부장도 “내년 하이퍼스케일러의 설비투자 규모가 1조200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라 시장에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며 “반도체뿐만 아니라 AI가 묻어 있는 섹터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금리가 발목을 잡고 있지만 AI 산업을 망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투자 사이클은 한동안 꺾이지 않을 것으로 봤다.
다만 AI·반도체만 바라보는 무조건적 투자 대신 종목이나 채권 등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이재만 하나증권 글로벌투자분석실장은 “금리 5% 시대에는 업종 선택뿐 아니라 기업 선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나증권은 코스피 순이익 증가율이 올해 271.5%에서 내년 30.6%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 실장은 “이익 증가율 둔화 초기에는 영업이익률 개선 여부가 주가 차별화를 가를 것”이라며 원화 강세를 반영한 영업이익률과 잉여현금흐름(FCF) 증가 여부를 선별 기준으로 제시했다.
육동휘 KB자산운용 ETF상품마케팅본부장도 “고대역폭메모리(HBM) 부족에서 데이터센터 전력, 사이버 보안으로 이어지는 병목 산업에 분산해 기다려야 할 시기”라며 “지금은 언제 무엇을 사느냐보다 얼마나 기다리고 견딜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채권 비중 확대와 적립식 투자로 변동성을 방어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다. 최창규 본부장은 “미국 30년물 국채 금리가 5.7% 수준까지 치솟으며 22년 만에 최고치”라며 “전통적인 주식 60%, 채권 40% 공식이 깨질 만큼 이례적인 장세”라고 짚었다. 이어 “연말을 기점으로 포트폴리오 내 채권 비중을 서서히 높여가는 전략도 적극 고려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또한 올해 고점에 진입한 투자자의 피로감을 고려하면 앞으로 소수점 매수 등을 활용한 ‘적립식 모으기’가 대세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장기적인 시야로 투자해야 한다는 조언도 이어졌다. 김경필 머니트레이닝랩 대표는 “향후 5년 안에 죽었다 깨어나도 쓸 일 없는 돈인 ‘위닝 머니(winning money)’를 가졌다면 성공할 확률이 있지만, 전세금이나 등록금처럼 써야 할 돈인 ‘루징 머니(losing money)’는 하락장을 못 버티고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kimstar@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