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부족·과밀학급·노후 교실에 불만 폭발
폭염 속 교실…“화장실·냉방 개선” 요구 거세
대입 플랫폼 불투명성도 시위 쟁점으로
정부, 개선 약속했지만 학생들 분노 여전
수면 시간보다 수업 시간이 더 길다.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지난달 중순 시작된 프랑스 학생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한 가운데, 학생들은 시위 현장에서 입을 모아 이 같은 구호를 외쳤다. 한국에서는 언뜻 공감을 얻기 어려운 구호로 들리지만, 프랑스 공교육에 내재한 문제점은 단순히 수업 시간이 길다는 불만보다 더 심각하다.
지난 7일(현지시간) 프랑스 매체 ‘프랑스24’에 따르면 프랑스 학생들이 시위에 나선 배경에는 장시간 수업과 과밀 학급, 교사 부족, 낡은 시설, 불투명한 대학 입학 시스템 등 공교육 전반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외곽에서 촉발된 이번 시위는 고교생들을 중심으로 교육 실태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면서 전역으로 확산했다. 대규모 시위가 조직된 6일에는 수도 파리뿐 아니라 마르세유, 리옹, 릴, 낭트, 스트라스부르, 렌, 툴루즈 등 전국 도시들에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시위 양상이 점차 과격해지면서 경찰과의 대치도 격화하고 있다. 지난 5일에는 15세 남학생이 랑스에서 시위 도중 한 손을 잃는 사건이 벌어졌다. 방호복과 헬멧을 착용한 경찰 대원들이 곤봉으로 시위대를 제압하는 모습도 온라인상에 올라오고 있다.
이번 시위는 교육 인프라 부족이라는 열악한 교육 여건이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근본적으론 중동 전쟁에 따른 물가 상승, 국가 재정 불안과 인공지능(AI) 붐이 부추긴 채권시장 불안, 정치 불안정 등 사회의 혼란상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사 부족, 과밀학급, 노후시설 속 40도 폭염 버틴 학생들…불만 터졌다
프랑스 공립학교 교직원을 대표하는 주요 노조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중·고교의 절반 이상은 최소 한 명 이상의 교사가 부족하다. 또 전체 학교의 69%는 교원이나 지원 인력 가운데 최소 한 명이 결원 상태다.
이에 학생들은 모든 교실에 담당 교사가 배치될 수 있도록 대규모 교원 채용을 촉구하고 있다. 학생 500명당 최소 간호사 1명, 심리상담사 1명, 진로상담사 1명을 배치하는 것이 주된 요구다.
교사 인력 부족은 과밀학급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일부 교실에는 학생 35명이 몰릴 정도로 과밀 학급 현상이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후화된 학교시설도 학생들의 불만을 키우고 있다. 실제로 학생노조가 발표한 요구사항 1순위 역시 학교와 대학 건물의 유지·보수였다. 올여름 기온이 40도까지 치솟는 폭염을 직접 겪으면서 학생들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노후화된 학교 건물의 개보수와 냉방·냉각시설 설치, 단열 강화 등을 포함한 ‘긴급 계획’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깨끗하고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 확보’ 역시 주요 요구사항이다.
시위가 확산한 이후 학생들은 교내 시설의 열악한 실태를 알리기 위해 과거 소셜미디어에 올렸던 학교 내부 영상들이 다시 공유하기 시작했다.
파리 북부 교외 센생드니의 블레즈 상드라르 고등학교 학생들은 화장실 천장이 뚫려 있거나 교실에서 책상 없이 수업을 들어야 하는 등 열악한 학교 내부 실태를 담은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이들은 영상 속에서 “나는 이 학교 학생이다. 물론 수업을 들을 때 머리 위에 지붕이 없다”며 조롱 섞인 반응을 보였다.
프랑스24는 “올여름 폭염 당시 일부 교실의 실내온도는 38도까지 치솟았다”며 “프랑스 초·중·고교의 약 3분의 2는 1970년 이전에 지어져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전했다.
“내가 왜 떨어져?” 프랑스 대입 플랫폼 불투명성에 불만
프랑스의 새로운 대입 지원 플랫폼인 ‘파르쿠르쉬프(Parcoursup)’의 학생 선발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비판도 이번 시위의 주요 요구 사항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바칼로레아라는 대학 입학제도를 사용하다가 2018년부터 파르쿠르쉬프를 도입했다. 이후 대학들은 바칼로레아 최종 성적뿐 아니라 고교 3년간의 성적, 교사 의견, 지원 동기 등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학생들을 평가하고 있다.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 학생들은 이 플랫폼을 통해 대학과 각종 고등교육 과정에 지원. 학교 성적과 지원서를 토대로 합격 여부가 결정된다.
하지만 학생들은 파르쿠르쉬프 운영이 불투명하고 자의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각 대학 과정이 자체 알고리즘과 기준으로 지원자 순위를 정하지만, 학생들은 어떤 기준으로 평가받았는지, 왜 탈락했는지를 알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 학생은 프랑스24에 “챗GPT를 쓰지 않고 자기소개서를 10여개나 작성했는데 내 지원서는 아예 검토조차 되지 않은 것 같다”며 “나보다 성적이 낮은 학생이 내가 가고 싶었던 과정에 합격하는 걸 보면 전혀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교육예산 확대와 학교시설 개선, 시간표 개편 등을 약속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학생들과의 입장 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학생들은 여전히 교원 확충과 학급당 학생 수 축소,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학교시설 개선 등을 핵심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학생노조 지도부는 여기에 고등학교와 대학 교육을 위해 100억유로를 추가 투자할 것도 요구하고 있다.
학생단체 ‘레 리세앙’의 아나이스 엘라 대변인은 미국 CNN 방송에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가 학생노조의 핵심 요구에 충분히 답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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