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비싸서 손도 못 댔는데…”
참치 중에서도 ‘최고급’으로 꼽히는 참다랑어. 기름진 뱃살을 비롯해 고급 회나 초밥 재료로 쓰이며 높은 몸값을 자랑한다.
그런데 이 참다랑어, 한때 가격이 비싼 수준을 넘어서 돈이 있어도 먹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졌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잡아 먹었기 때문.
실제 태평양참다랑어는 한때 어획 이전 추정 수준의 약 2%까지 급감했다. 멸종을 걱정할 정도로 벼랑 끝에 몰린 셈이다.
그런데 최근 뜻밖의 반전이 나타났다. 국제적인 관리와 보전 노력으로 개체군이 다시 회복되기 시작한 것.
이런 ‘대반전’은 참다랑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호랑이와 바다거북, 코끼리 등 멸종을 걱정했던 동물들도 잇따라 개체수가 늘거나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
사람들의 노력으로 훼손된 자연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다는 신호가 포착된 셈이다.
하지만 마음을 놓을 상황은 아니다. 이 같은 회복은 일부 종과 개체군에서 나타난 변화일 뿐, 지구 전체 야생동물의 상황은 여전히 빠른 속도로 나빠지고 있다.
8일 세계자연기금(WWF)이 공개한 ‘2026 지구생명보고서’에 따르면 대서양참다랑어와 태평양참다랑어는 한때 과도한 어획으로 개체군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대서양참다랑어는 2010년까지 개체군이 80% 감소하며 위기종으로 분류됐다. 태평양참다랑어는 어업의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와 비교해 약 2% 수준까지 급감하며 취약종으로 분류됐다.
말 그대로 벼랑 끝까지 몰렸던 셈이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각국은 잡을 수 있는 참다랑어의 양을 줄이고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그 결과 현재 대서양·태평양참다랑어 모두 남획 상태나 우려종으로 간주되지 않을 정도로 개체군이 회복됐다. 사라질 위기에 몰린 생선이, 사람들의 행동 변화로 살아난 셈이다.
비슷한 변화는 육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 야생 호랑이는 2010년 약 3200마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약 5700마리까지 늘었다. 15년 사이 70% 이상 증가한 것이다. 국가별 호랑이 회복 계획과 보호지역 확대, 전문 레인저 운용, 국가 간 불법 야생동물 거래 단속 등 장기간에 걸친 보호 조치가 영향을 미쳤다.
푸른바다거북도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지난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푸른바다거북의 적색목록 등급을 ‘위기(Endangered)’에서 ‘관심대상(Least Concern)’으로 낮췄다. 바다거북 가운데 처음이다. 약 80개국의 산란지를 중심으로 50년 동안 이어진 보호 활동의 결과다.
WWF가 이번 보고서에서 강조한 것은 바로 이 같은 ‘회복 가능성’이다. 실제 지구생명지수 조사 대상 개체군 가운데 절반은 줄어들지 않았다. 전체의 43%는 개체가 증가했고, 7%는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다.
WWF는 이를 근거로 생물다양성 감소가 반드시 피할 수 없는 미래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다만 전체 그림은 여전히 어둡다. WWF가 포유류와 조류, 어류, 양서류, 파충류 등 척추동물 5790종에 속하는 3만5803개 개체군을 분석한 결과, 1970년부터 2022년까지 관찰 대상 개체군의 평균 규모는 73.2% 감소했다.
지구생명지수는 각 지역에서 관찰한 야생동물 개체군이 과거와 비교해 얼마나 늘고 줄었는지를 종합해 평균적인 변화를 나타낸 지표다. 절반가량의 개체군이 안정적이거나 증가했는데도 전체 지수가 크게 떨어진 것은, 감소한 개체군의 낙폭이 증가한 개체군의 증가 폭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늘어난 개체군보다 줄어든 규모가 더 컸다는 것. 특히 강과 호수 등에 사는 생물들의 상황이 심각했다. 담수 생물의 지구생명지수는 같은 기간 85% 감소했다. 육상 생물은 69%, 해양 생물은 59% 줄었다.
원인은 하나가 아니다. 동물들이 살던 숲과 습지가 사라지고 훼손되는 일이 가장 큰 위협으로 지목됐다. 여기에 필요 이상으로 생물을 잡고 사용하는 자원 남용, 기후변화, 환경오염, 침입종, 질병 등이 동시에 야생동물을 압박하고 있다.
결국 참다랑어나 호랑이 몇 종을 되살리는 것만으로는 지구 전체의 감소세를 뒤집기 어렵다는 얘기다.
WWF는 그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금의 에너지·식량·금융 시스템을 지목했다. 우리가 먹을 식량을 생산하는 방식은 서식지를 없애고 자원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석탄과 석유, 가스를 태워 에너지를 생산하는 구조는 기후변화를 가속한다.
돈의 흐름도 자연에는 불리하다. 2023년 자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활동에는 약 7조3000억달러가 투입됐다. 반면 자연을 보호하거나 복원하는 활동에 투입된 자금은 약 2200억달러에 그쳤다.
WWF는 이처럼 규모가 크고 복잡한 사회·경제 시스템도 바뀔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핵심은 ‘긍정적 티핑 포인트’다. 흔히 티핑 포인트는 산호초 붕괴나 아마존 열대우림 훼손처럼 일정한 임계점을 넘는 순간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는 현상을 설명할 때 쓰인다.
하지만 반대 방향도 가능하다. 정책과 기술, 시장 변화가 일정 수준 이상 쌓이면 변화가 스스로 힘을 얻어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에너지 분야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WWF는 태양광 발전이 대부분의 국가에서 가장 저렴한 신규 발전원으로 자리 잡는 등 에너지 시스템이 이미 긍정적 티핑 포인트를 지나 변화가 가속화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식량·농업 분야에서도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생산 방식과 지속가능한 소비,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식단, 식량 손실과 폐기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 분야는 아직 초기 단계다. 자연 훼손을 일으키는 산업과 활동에 흘러가는 자금을 줄이고, 자연과 기후 문제를 실제 금융 위험으로 평가하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게 WWF의 설명이다.
관건은 속도다. 국제사회는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를 통해 2030년까지 생물다양성 손실을 멈추고 회복세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오는 19일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는 제17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BD COP17)가 시작된다. WWF는 이번 회의를 이미 합의한 목표를 실제 정책과 투자로 옮길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우디 숨바 WWF-International 최고보전책임자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시간은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며 “복잡한 시스템을 대대적인 속도와 규모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지만, 긍정적 티핑 포인트를 만들어 낸다면 변화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민혜 한국WWF 사무총장도 “이번 지구생명보고서는 자연이 빠르게 훼손되고 있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그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도 보여준다”며 “이 희망을 현실로 만들려면 각국의 약속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WWF는 보고서 발간에 맞춰 오는 8~11일 국립과천과학관에서 ‘WWF Living Planet 캠페인’을 진행한다. 보고서 주요 내용을 소개하는 전시와 생물다양성 캠페인 부스를 운영하고, 야외전시장에는 WWF의 상징인 자이언트판다 인형 약 100마리를 전시할 예정이다.
woo@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