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발견부터 관리·재활, 치료까지…치매 대응 기술 전방위 확장

-서울바이오허브 6개사로 보는 ‘예측·진단→관리·재활→치료’ 치매 대응 밸류체인

외국의 글로벌제약사나 국내 대기업 못지않게 국내의 바이오·헬스케어 스타트업들도 치매 극복을 위한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망막과 목소리에서 치매 위험 신호를 찾아내는 인공지능(AI)부터 뇌 기능을 자극하는 전자약과 AI 재활 솔루션, 알츠하이머병을 겨냥한 혁신신약까지 접근법도 다양하다.<출처:게티이미지뱅크>
외국의 글로벌제약사나 국내 대기업 못지않게 국내의 바이오·헬스케어 스타트업들도 치매 극복을 위한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망막과 목소리에서 치매 위험 신호를 찾아내는 인공지능(AI)부터 뇌 기능을 자극하는 전자약과 AI 재활 솔루션, 알츠하이머병을 겨냥한 혁신신약까지 접근법도 다양하다.<출처: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김태열 의학전문기자] 매년 9월 21일은 ‘치매극복의 날’이다. 이 날은 2011년 8월 제정된 ‘치매관리법’에 따라 지정된 국가기념일로, 1995년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알츠하이머협회(ADI)가 공동 지정한 ‘세계 알츠하이머의 날’과 날짜를 같이한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년 치매역학조사 및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치매 유병률은 9.25%다. 이 추세라면 2026년 국내 치매 환자 수는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치매는 더 이상 일부 고령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준비해야 할 과제가 됐다.

바이오·헬스케어 스타트업들도 치매 극복을 위한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망막과 목소리에서 치매 위험 신호를 찾아내는 인공지능(AI)부터 뇌 기능을 자극하는 전자약과 AI 재활 솔루션, 알츠하이머병을 겨냥한 혁신신약까지 접근법도 다양하다.

알츠하이머병에 따른 뇌 변화 설명 그림<출처:Garrondo  Wikimedia Commons>
알츠하이머병에 따른 뇌 변화 설명 그림<출처:Garrondo Wikimedia Commons>

치매 정복을 위한 노력은 글로벌제약사만 있는게 아니다. 아직 규모는 작지만 ‘실력’하나로 치매치료에 도전하는 스타트업 기업들이 모인 곳이 바로 서울바이오허브이다. 이곳에 터를 잡은 스타트업들의 기술을 찬찬히 살펴보면 치매치료에 대한 도전과 열정을 느낄 수 잇다. 치매 위험을 보다 일찍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해 진행을 관리하고 손상된 기능의 재활을 돕고, 궁극적으로 질병을 치료하려는 시도까지 ‘예측·진단→관리·재활→치료’로 이어지는 치매 대응의 새로운 밸류체인이 만들어지고 있다.

▶망막·목소리에서 치매 신호 찾는다…AI가 앞당기는 조기 발견=치매는 증상이 뚜렷해지기 전 위험 신호를 발견하고 조기에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에는 일상에서 비교적 쉽게 확보할 수 있는 데이터를 활용해 치매 위험군을 보다 빠르고 간편하게 선별하려는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디멘필은 망막(안저) 영상을 AI로 분석해 치매와 경도인지장애를 조기에 선별하는 솔루션을 개발한다. 망막은 발생학적으로 뇌에서 유래해 비침습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뇌질환 바이오마커를 찾기 위한 연구 대상으로 주목받아 왔다.

정상 망막 안저 사진(출처:Mikael Häggström  Wikimedia Commons)
정상 망막 안저 사진(출처:Mikael Häggström Wikimedia Commons)

디멘필은 여기에 AI 영상 분석 기술을 접목해 별도의 정밀검사 절차 없이 눈 검사만으로 경도인지장애와 치매 위험군을 빠르고 간편하게 가려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판단 근거를 제시하는 설명가능 AI(XAI)와 예측 신뢰도를 함께 산출하는 불확실성 정량화(UQ) 기술을 적용해 임상 현장에서 결과를 검증하며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2025년 설립된 신생 기업이지만 TIPS R&D 사업에 선정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보이노시스는 ‘목소리’에 담긴 신호에 주목했다. 이비인후과 전문의 출신 신정은 대표가 2019년 설립한 이 회사는 의료 분야에 특화된 음성 빅데이터와 AI 기술을 기반으로 음성에 담긴 미세한 바이오마커를 분석해 치매를 조기에 예측하고 케어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 대웅제약으로부터 투자를 받은 데 이어 클래식500, 하남케어센터 등에 서비스를 도입했다. 그동안 축적해 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국 지사를 설립해 해외 진출에도 나섰으며, 미국·일본 등 국내외 기업들과 협력을 강화하며 ‘조기발견→관리·재활→치료’로 서비스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두 기업의 접근법은 서로 다르지만 치매 대응 시점을 증상이 심해진 이후가 아니라 ‘초기 위험 신호를 발견하는 단계’로 앞당기려 한다는 점에서는 맞닿아 있다.

▶약물 밖에서도 답 찾는다…전자약·AI로 관리와 재활=치매 대응의 또 다른 축은 질환의 진행을 늦추고 환자의 기능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다. 약물 이외의 방식으로 뇌 기능에 개입하거나 치매와 함께 저하되기 쉬운 언어·인지 능력의 재활을 돕는 기술이 여기에 해당한다.

뉴로그린은 경희대 한의대 김선광 교수와 충북대 의대 정지훈 교수가 2021년 공동 설립한 회사로, 의약품 중심이었던 치매 치료 영역에 의료기기를 통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다.

뉴로그린이 주목한 것은 뇌척수액 순환과 뇌 내 노폐물 축적이다. 정상적인 뇌에서는 글림프·뇌척수액 순환을 통해 대사 과정에서 발생한 노폐물이 뇌 밖으로 배출되지만, 치매나 뇌혈관 질환 환자는 이러한 정화 작용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는 데 착안했다.

회사는 미주신경을 자극해 뇌척수액 순환과 뇌 내 노폐물 제거를 촉진하고 인지기능 개선을 유도하는 웨어러블 전자약 ‘CEROGRIN(새로그린)’을 개발했다. 뉴로그린은 이를 자율신경 조절을 통해 뇌 내 환경을 개선하는 일종의 ‘뇌 청소’ 기전으로 설명한다.

동물실험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뒤 사람에게 적용하기 위한 전자약 개발로 이어졌으며, 일반인 대상 연구자 임상시험을 거쳐 최근 혈관성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한 탐색임상시험을 마쳤다. 현재 대규모 확증시험을 준비하고 있으며, 관련 전임상·임상 연구를 바탕으로 올해 SCI급 국제학술지에 논문 2편을 게재했다.

말과학놀이터는 치매 환자의 언어·인지 재활에 AI를 접목했다. 언어재활 전문성과 한의학 박사 이력을 갖춘 이윤진 대표가 2024년 설립한 회사로, AI 언어재활 플랫폼 ‘뉴로톡’을 서비스하고 있다. 핵심은 장애음(disordered speech) 인식에 특화된 자체 음성인식(STT) 엔진이다. 일반적인 음성인식 기술로 정확하게 인식하기 어려운 언어장애 환자의 발화를 인식하기 위해 개발했으며, 공인시험 기준 89.58%의 인식 정확도를 확보했다. 여기에 임상에서 활용되는 5대 언어치료기법을 자동화해 치료사가 곁에 없는 시간에도 환자가 스스로 훈련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설계했다.

현재 1등급 의료기기 등록을 진행하고 있으며, 뇌졸중 후 구음장애를 적응증으로 하는 2등급 디지털치료기기(DTx) 임상을 별도 트랙으로 병행하고 있다. 원천기술은 국내 특허 등록과 PCT 국제출원을 마쳤으며, 미국 요양시설(SNF)을 대상으로 현장 실증도 준비하고 있다.

이윤진 말과학놀이터 대표는 “치매 환자의 언어 기능은 쓰지 않으면 빠르게 무너진다”며 “언어장애인과 가족이 언제 어디서나 고품질 훈련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의료기기 등록과 임상을 거쳐 치매안심센터와 요양기관 현장에서 실제로 쓰이는 단계까지 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알츠하이머 근본 치료 향해…혁신신약 개발도 속도=조기 발견과 관리·재활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치매 분야의 궁극적인 목표는 여전히 질병의 원인을 겨냥하는 치료제 개발이다. 국내 바이오 스타트업들도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한 퇴행성 뇌질환 혁신신약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일리미스테라퓨틱스는 자체 개발한 GAIA(GAS6-매개 항염증성 어댑터) 플랫폼을 기반으로 아밀로이드 베타를 표적으로 하는 알츠하이머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한다. 박상훈 대표가 2021년 설립한 이 회사는 시리즈B 투자 유치를 완료했으며, 2023년 ‘서울-BMS 이노베이션 스퀘어 챌린지’에서 우승했다.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 릴리의 ‘릴리 게이트웨이 랩스(Lilly Gateway Labs)’에 입주하고 미국 법인을 설립하는 등 글로벌 신약개발 무대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큐어버스는 KIST 연구소기업으로 알츠하이머병·파킨슨병·다발성경화증 등 난치성 뇌질환을 표적으로 하는 저분자 신약을 개발한다. 조성진 대표와 KIST 박기덕 박사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2021년 설립돼 내년 상반기 상장을 목표로 현재 Pre-IPO 투자 유치를 진행하고 있다.

주요 파이프라인인 뇌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CV-01’은 국내 임상 1상을 완료하고 임상시험결과보고서(CSR)를 확보했다. 이를 통해 우수한 안전성과 예측 가능한 약동학, 고령자 적용 가능성을 확인했으며 현재 유럽 임상 1b상에 착수했다. 내년 하반기 국내 알츠하이머병 임상 2a상 진입을 목표로 인허가 준비도 진행하고 있다. 2024년에는 이탈리아 제약사 안젤리니파마와 약 5000억 원 규모의 기술이전(L/O) 계약을 체결하며 국내 뇌질환 신약 스타트업의 글로벌 사업화 가능성을 보여줬다.

▶‘치매 극복’, 하나의 기술 아닌 전주기 혁신으로=망막과 목소리에서 위험 신호를 찾고, 전자약과 AI로 환자의 기능을 관리·재활하며, 혁신신약으로 질병 자체를 겨냥한다. 출발점은 서로 다르지만 서울바이오허브 6개 기업이 향하는 방향은 같다. 치매를 단순히 ‘노화와 함께 받아들여야 하는 질환’이 아니라 더 일찍 발견하고 관리하며 치료할 수 있는 질환으로 바꾸려는 것이다.

개별 기술 하나만으로 치매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예측·진단→관리→재활→치료’로 이어지는 전 과정에서 서로 다른 기술이 발전할수록 환자와 의료현장이 선택할 수 있는 대응 수단도 넓어진다. 서울바이오허브에 모인 바이오·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의 도전이 국내 치매 극복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 주목된다.


kt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