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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국제 구리 가격이 1년 새 약 47%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다. 최근 1년간 20%대 오른 금보다도 상승 속도가 가팔랐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투자에 따른 장기 수요 확대에 미국의 추가 관세 가능성과 주요 광산의 생산 차질이 겹치면서 구리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다.

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벤치마크인 3개월물 구리는 장중 0.8% 오른 톤(t)당 1만4533달러까지 상승했다. 지난 1월 기록한 종전 최고가 1만4527.50달러를 넘어선 역대 최고치다. 올해 들어서만 약 16~17%, 최근 12개월로는 약 47% 뛰었다.

같은 기간 금 가격의 상승률은 20%대다. 금 역시 지정학적 불안과 중앙은행의 매입 등에 힘입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최근 1년 가격 상승폭만 놓고 보면 구리가 두 배가량 큰 셈이다. 구리가 단순한 산업 원자재를 넘어 주요 투자 자산 가운데서도 두드러진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AI·전력망이 먹어치우는 구리…광산 공급은 제자리

구리의 장기 강세를 떠받치는 것은 구조적인 수요 증가다.

구리는 전기전도성이 높아 전선과 전력망,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재생에너지 설비 등 산업 전반에 폭넓게 사용된다. 최근에는 전력 소비가 막대한 AI 데이터센터가 빠르게 늘면서 송배전망과 냉각·전력 설비에 필요한 구리 수요도 함께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강해졌다.

문제는 광산 공급이 수요 확대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존 대형 광산은 노후화되고 광석의 품위는 낮아지는 반면 신규 광산을 개발해 실제 생산에 들어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국제구리연구그룹(ICSG)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세계 구리 광산 생산량은 전년 동기보다 1.1% 감소했고, 구리 정광 생산은 2.6% 줄었다. 칠레와 인도네시아, 콩고민주공화국(DRC) 등 주요 생산국의 차질이 영향을 미쳤다.

특히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의 부진이 두드러진다. 칠레에서는 광석 품위 저하와 광산 운영 차질에 겨울철 폭우·폭설 등 악천후까지 겹쳤다. 지난 7월 구리 생산량은 전년 동월보다 9.4% 줄어 7월 기준 201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달 구리 수출액도 46억2000만달러로 전월보다 14% 감소해 지난해 7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가격이 전년보다 40% 넘게 오른 상황에서도 수출액이 감소할 정도로 실제 물량 공급이 부진했던 셈이다.

관세 매기기 전에 사두자…구리 수십만t 미국으로

다만 최근 몇 주 동안 가격을 사상 최고치까지 끌어올린 직접적인 동력은 AI 수요보다는 미국의 관세 불확실성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향후 정제구리에 추가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제기되자 거래업체들이 관세가 시행되기 전에 구리를 미국으로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미 상무부는 정제구리 추가 관세 필요성을 검토해 지난 6월 말까지 백악관에 관련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돼 있었지만 두 달 넘게 최종 결정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관세 여부가 불확실한 상태가 계속되자 미국 내 높은 가격을 노린 물량 이동도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뉴욕상품거래소(COMEX) 재고는 지난해 2월 약 8만t에서 최근 69만5624t으로 8배 이상 급증했다. 세계 구리가 미국에 빨려 들어가면서 미국 밖 시장에서는 당장 거래할 수 있는 물량이 줄어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칠레 구리·광업연구센터(Cesco)의 크리스티안 시푸엔테스 수석 애널리스트는 “최종 수요 과잉보다는 관세 가능성이 거래에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며 “글로벌 수요 과잉이라기보다는 국지적 부족 사례”라고 말했다.

실제로 세계 전체 구리 시장이 당장 완전한 공급 부족 상태에 빠진 것은 아니다. 광산 생산은 줄었지만 올해 상반기 정련 구리 생산량은 2.4% 늘어 소비 증가율을 웃돌면서 약 13만1000t의 공급 초과가 발생했다.

즉 지금의 사상 최고가는 ‘전 세계에서 구리가 절대적으로 모자라다’는 한 가지 이유보다는 광산 공급 부진과 장기 수요 기대, 관세를 앞둔 미국의 재고 축적이 동시에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

‘닥터 코퍼’ 어디까지 오르나…관건은 관세·칠레 생산

향후 가격 방향을 좌우할 첫 번째 변수는 미국의 관세 결정이다. 관세가 실제로 부과되면 미국과 다른 지역 간 가격 차이가 더 벌어질 수 있지만,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그동안 미국으로 몰렸던 물량 흐름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칠레를 비롯한 주요 생산국의 회복 여부도 중요하다. 칠레는 전 세계 광산 구리 생산의 약 4분의 1을 담당하는 만큼 생산 차질이 장기화할 경우 세계 공급 자체가 더욱 빠듯해질 수 있다. 블룸버그는 칠레 생산이 하반기에도 반등하지 못하면 세계 구리 광산 공급량이 2017년 이후 처음으로 연간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반대로 단기간 급등에 따른 가격 부담도 커졌다. 구리 가격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전력망과 전기차, 건설업체의 원가 부담이 커지고 일부 수요가 미뤄지거나 알루미늄 등 대체재 사용이 늘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시장이 구리를 장기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강하다. 기존 광산의 생산 확대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AI 데이터센터, 전력망 현대화,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설비가 동시에 구리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흐름을 민감하게 반영해 ‘닥터 코퍼(Dr. Copper)’로 불리는 구리가 이번에는 금보다 가파른 상승세로 사상 최고치를 넘어섰다. 앞으로의 관건은 AI와 전력망이 만들어내는 구조적인 수요 증가가 실제 공급 부족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관세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단기적으로 미국에 쏠린 물량이 다시 분산될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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