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이란 11일째 무력충돌 격화
트럼프 “후티 반군 홍해 봉쇄땐 美가 처리”
이란 “동맹국·배후세력 자산도 보복 대상”
유조선 6척 홍해서 회항…“유가 120弗” 우려
亞정유사, 4주 더 걸려도 ‘수에즈→희망봉’ 물색
美국방장관 “이란戰에 55조5000억원 썼다”
북한 전례 언급하며 이란 핵저지 의지 강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간) 예멘의 친(親)이란 무장세력 후티 반군이 홍해 봉쇄를 선언하자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가 처리할 것(take care of)”이라며 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이란도 미국이 자국 핵시설을 공격할 경우 중동 내 모든 미국 시설을 타격하겠다며 “단호한 보복”을 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백악관에서 조셉 아운 레바논 대통령과 회담하던 중 후티 반군의 홍해 봉쇄 가능성에 대한 취재진의 질의에 “어떻게 될지 봐야겠다. 지금까지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며 이 같이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후티가 홍해 봉쇄를 실행하면 미 군사력을 동원해 후티를 타격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미군은 지난해 3∼5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홍해에서 상선을 공격해온 후티에 대한 대규모 공습에 나선 바 있다.
앞서 후티 반군은 미국과 이란의 무력공방이 연일 이어지는 상황 속 친미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겨냥해 홍해와 아라비아해를 잇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이른바 ‘곡괭이산(Pickaxe Mountain)’에 대한 타격도 예고했다. 곡괭이산은 이란의 나탄즈 우라늄 농축시설 인근에 있는 곳으로, 지하 핵시설이 구축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조만간(pretty soon) 그 지역을 매우 강력하게 타격할 것”이라며 “그들이 핵과 관련해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있는 장소가 있다면 어느 곳이든 우리는 매우, 매우 강력하게 타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란이 곡괭이산으로 핵 원심분리기를 옮겼는지에 대해선 “아마 그랬을 수도 있다”면서도 “핵 물질이 없다면 그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이란은 필사적으로 (미국을) 만나고 싶어 한다”며 “그들이 의미 있는 방식으로 만날 준비가 될 때까지 우리는 관심이 없다”고 짚었다.
이날 회담에 배석한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 역시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해야 한다며 북한의 사례를 들며 강조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47년간 그들(이란)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재래식 군사력을 강화했다”며 “바로 그 방식으로 북한이 폭탄(핵폭탄)을 개발해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이날 연방 상원 세출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이란과의 전쟁에 현재까지 375억달러(약 55조5000억원)가 투입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 자리에서 ‘곡괭이산’ 지하에 구축 중인 것으로 알려진 핵시설을 미군이 공격할 경우 파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우리의 많은 능력은 기밀”이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이란 측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즉각 반발했다. 이란군을 통합지휘하는 하탐 알안비야 중앙군사본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이 이란 핵시설과 여타 중요한 시설을 공습하겠다고 위협했다”며 “침략군이자 테러리스트인 그 나라의 군대가 그런 행동을 한다면 중동 내 분쟁을 고조하겠다는 뜻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 일이 발생하면 미국의 모든 자산을 비롯해 그 동맹국, 배후 세력의 자산은 이란 이슬람공화국 군대의 단호한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이달 초 미국과 무력충돌이 재개된 뒤 이란은 중동 내 미군 기지를 주 표적으로 삼았으나 경우에 따라 전쟁 초기와 마찬가지로 에너지 인프라, 금융기관, 데이터센터 등 비(非)군사시설로까지 공격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편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홍해 입구까지 막힐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되면서 아시아 정유업체들은 사우디아라비아산(産) 원유를 수에즈 운하를 통해 들여오는 대체 항로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21일(현지시간) 아시아 정유업체들이 사우디 홍해 연안의 얀부항에서 출발한 원유를 북쪽으로 운송해 이집트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 뒤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아시아로 가져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유사 현대오일뱅크도 이날 얀부항에서 수에즈 운하와 홍해·지중해를 연결하는 이집트 수메드 송유관을 이용할 수 있는 조건을 포함해 초대형 유조선(VLCC)을 구했다고 전해졌다.
기존에는 얀부항에서 남쪽으로 나아가 홍해를 가로질러 아시아로 원유를 실어왔다. 이를 반대로 되돌려 수에즈 운하로 가면 기존 수송로보다 4주는 더 걸린다. 운항 거리가 길어지면서 자연히 이를 실어나르는 연료비도 많이 들게 된다.
그럼에도 홍해 봉쇄 위협을 감안하면 ‘울며 겨자 먹기’로 고비용 항로를 택할 수밖에 없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휴전 결렬 이후 호르무즈 해협에서 피격된 선박은 최소 7척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후티 반군이 홍해 봉쇄를 경고한 뒤 24시간 동안 선박 6척이 회항했다.
홍해까지 막힐 상황이 다가오면서, 국제유가 급등 우려는 더 커졌다. 골드만삭스는 이날 호르무즈 해협이 막힌 상황이 올해 4분기까지 지속되면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까지 급등할 것이란 경고를 내놨다. 이날 ICE 선물거래소에서 9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전장보다 2.01% 상승한 배럴당 91.01달러로 마감했다. 뉴욕상업거래소의 8월 인도분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종가도 배럴당 84.91달러로 전장보다 2.02% 올랐다. 종가 기준으로 브렌트유는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 시기인 지난달 10월 이후, WTI는 지난달 11일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
김영철·도현정 기자
yckim6452@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