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기업인, 말 한 마디에 주가가 출렁이는 금융인, 미래를 바꾸는 창업가, 국제정세를 쥐락펴락하는 지도자. [더 비저너리]는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워 리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무엇이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생생한 스토리를 전해 드립니다.
회계사 아버지 밑에서 용돈 관리법 배운 소녀
골드만삭스·맥킨지 거쳐 월街 메이저은행 첫 여성 CEO로
“승진시기 임신금지” 불문율 깨고 두 아들 돌보느라 ‘파트타임’ 근무
씨티그룹 임원 승진하자 금융인 남편이 전업주부로 ‘외조’
멕시코 은행 부실·소매금융 부진 등 씨티 위기마다 ‘구원투수’
처절한 구조조정, 장기적 체질개선에 워런 버핏 ‘30억달러 매수’로 화답
‘선택과 집중’ 효과내기 시작...올해 주가 37% 상승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글로벌 금융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의 월가(街)는 공공연한 백인 남성들의 격전지였다. 석사 이상의 학위를 달고 나와 고급 정장과 명품 서류가방으로 무장한 백인 남성들은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된 거래를 주무르며 고액연봉을 전리품으로 챙겨왔다. 여성, 혹은 유색인종은 끼어들 틈이 없었던 백인 남성들의 아성을 2020년 9월 한 여성이 깼다. 미국 3위의 금융그룹 씨티를 이끌 새로운 수장으로 제인 프레이저(58)가 지명된 것이다. 미 유력 경제매체 포춘은 이를 “가장 높고 가장 단단한 월가의 유리천장이 깨진 순간”이라 명명했다.
용돈 벌기 위해 캐디 아르바이트 하던 소녀, 의사 꿈 접고 경제학도로
제인 프레이저의 뿌리는 투박하고 단단한 스코틀랜드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무뚝뚝하고 완고하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회계사였던 제인 프레이저의 아버지는 그 고정관념에 부합하는 면모가 있었다. 1967년 얻은 소중한 외동딸이었지만 하고 싶다는 것을 마냥 다 들어주지 않고 ‘원칙대로’ 키웠다. 프레이저는 “스코틀랜드인 회계사 아버지 밑에서 정해진 기준 이상의 용돈을 얻으려면 스스로 돈을 버는 수밖에 없었다”며 “집 근처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며 용돈을 충당했다”고 말했다.
제인이 12살 되던 해, 태어나고 자란 세인트 앤드루스를 떠나 호주로 이민을 갔다. 10대 때 제인의 꿈은 의사였으나 스스로도 “생물학 점수가 형편없었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대학 진학시기 그가 택한 전공은 경제학이었다. 케임브리지 거튼 칼리지에서 경제학을 배운 그는 “공부하기에 가장 아름다운 장소였고, 영감을 주는 곳이었다”며 “그곳에 다닐 수 있다는게 얼마나 큰 특권이었는지 모른다”고 회상하곤 했다.
그러나 제인이 현실에서 통하는 경제학 지식을 쌓은 곳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서부터다. 이에 대해 그는 “그곳(케임브리지)의 경제학과 교수진들은 대부분 극좌파 공산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이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게다가 그들은 항상 우울해했다. 경제학을 공부한 학생들 모두가 그들의 사상으로 개종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학생들은 모두 런던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자본주의자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교수진들에게는 엄청 실망스런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케임브리지를 졸업한 그는 런던에 있는 골드만삭스에서 인수합병(M&A) 분야 애널리스트로 금융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중산층 가정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튀지 않게’ 자란 그는 금융계 인사들의 화려한 면모에 자못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제인은 “나만 지루한 스코틀랜드 소녀였고, 다들 세련된 유럽인들이었다. 대부분 여러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독특한 취미가 있었다. 나 자신을 더 멋지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고 당시 결심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가 내린 결심은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금융컨설팅 회사 아세소레스 부르사틸레스로 회사를 옮기는 것이었다.
당시 제인은 스페인어를 할 줄도 몰랐다. 단순히 외국 회사로 자리를 옮기는 것을 넘어 언어 장벽까지 뚫어야 하는 상황에서 제인은 “20대의 패기” 덕에 결심을 했다고 전했다. 제인은 3주간 ‘벼락치기’ 스페인어 코스를 수강하고 스페인에서 금융인으로서의 이력을 이어갔다.
美 엘리트 금융인 코스 밟으며 가정에도 욕심...일·가정 모두 잡아
스페인에서 2년여간 재직한 제인은 1992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미국에서 금융인으로 성공하기 위한 ‘법칙’과도 같은 코스다. 월가의 금융인은 ‘job zone 5’의 대표격으로 분류된다. 이는 미국 노동국 통계의 직업 기준 중 하나로, ‘별도의 자격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재무·회계를 볼 줄 안다는 자격 증명이 있거나, 학사 학위 이후 이어지는 다년간의 성공적인 경력, 혹은 석사 이상의 학위 등을 흔히 월가에서 자리잡는데 필요한 ‘별도의 자격’으로 본다.
여성들도 남성들만큼이나 승리를 원한다. 그들은 진정으로 팀을 구축한다.
단지 그들은 그 모든 ‘배지(상징적 명예)’를 필요로 하지 않을 뿐이다.
제인이 선택한 이 엘리트 코스는 이후 그의 경력과 가정을 모두 단단히 다지는 시작이 됐다. 하버드에서 제인은 현재의 남편 알베트로 피에드라를 만났다. 쿠바 출신 금융인인 알베트로도 제인과 비슷한 선택으로 하버드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었다.
MBA 과정을 마친 제인이 향한 곳은 컨설팅 그룹인 맥킨지&컴퍼니였다. 금융사가 아닌 컨설팅사를 택한 것에 대해 제인은 “당시 금융계에는 여성이 많지 않았고, (금융계 여성들은) 남자들보다 더 무서워야 했다”며 협업(파트너십)을 선호하는 자신의 성향에 컨설팅사가 더 적합했다고 전했다. 그는 “파트너십은 성장하기에 훌륭한 환경이라 생각한다. 맥킨지는 글로벌 기관이자 기업이었고, 다루는 업무도 상당히 전략적이었다. 특히 (일을 배울 수 있는) 견습생 모델이 정말 훌륭했다”며 맥킨지를 택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가 맥킨지로 눈을 돌린 이유 중 하나는 가정이었다. 그는 “가족을 가질 기회가 생길 거라 생각했고, 그러려면 업무 일정이 조금 더 예측 가능해야 했다”며 살인적인 업무 스케쥴이 기다리는 월가를 뒤로 하고 컨설팅업계로 향했다.
10년여 근무하며 결혼·두 아이 출산...애 보느라 시간제 근무하면서도 파트너 승진
제인은 맥킨지에서 금융서비스와 글로벌 전략 분야를 담당하며 근 10년을 일했다. 1996년에는 알베트로와 결혼을 했고, 연달아 두 아들을 출산했다. 살인적인 월가의 업무를 벗어났다고 해도, 컨설팅 업계 역시 녹록지 않았다. 90년대 일과 가정을 모두 손에 쥐고 경력을 이어나가려던 여성들 사이에서는 “승진 여부가 결정되는 해에는 임신을 피하라”는 조언이 불문율처럼 자리잡았다. 승진 대상자가 임신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경영진이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경쟁자에게 내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인은 “이런 얘기는 바보같다고 생각했다”며 가정이 주는 안정감을 미덕으로 꼽았다.
실제로 제인은 승진 대상자였던 시기에 첫 아이를 임신했고, 2000년 출산 2주 후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다 전화로 파트너 승진을 통보받았다. 컨설팅 기업에서 파트너는 사업 개발 등을 총괄하는 임원진이다. 제인은 승진 이후에도 아직 어린 두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파트타임(시간제)으로 근무했다. 여기에는 맥킨지의 포용적인 정책도 한 몫 했다는게 제인의 전언이다. 그는 “파트너가 되던 시기에 엄마가 됐고, 파트너십 기간 내내 파트타임으로 일했다”며 “맥킨지는 그 점에 대해 정말 대단했다. 덕분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전까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동시에’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수십 년에 걸쳐서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나는 내 인생을 여러 ‘덩어리(chunks)’로 나누어 생각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곁에 더 많이 있어 줘야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제인은 엄마가 되기 직전인 1999년 맥킨지에서 다른 직원 3명과 함께 ‘세계를 향한 경쟁:위대한 글로벌 기업을 만들기 위한 전략(Race for the World: Strategies to Build a Great Global Firm)’이라는 책을 공동 집필한다. 여기에서 씨티그룹으로 이어지는 연(緣)이 시작된다.
이 저서는 세계 경제의 동향과 이에 대한 여러 기업들의 글로벌 전략에 대한 내용이다. 제인은 이 중 아시아 분야의 현황 조사와 해당 지역 공략을 위한 글로벌 과제를 맡아 집필했다. 제인은 조사를 위해 중국과 홍콩,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인도 등에서 맥킨지 고객사들을 인터뷰했고, 여러 기업들의 글로벌 전략을 전했다. 여기에서 씨티그룹을 ‘다양한 지역에서 우수한 비즈니스 시스템 생산성 비용을 활용하는 모델’이라 평가했다. 아시아를 누비며 쌓은 제인의 혜안과 씨티그룹에 대한 평을 보고, 당시 씨티의 투자은행 부문 임원이었던 마이클 클라인이 그녀를 눈여겨봤다. 클라인은 몇 년 동안 제인에게 씨티로 옮길 것을 제안했고, 2004년 제인은 이 제안을 수락했다.
제인이 다시 금융권으로 발을 딛은 배경에는 풀타임(전일제) 근무가 가능해졌다는 판단도 있었다. 그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게 되자, 이제 풀타임으로 다시 일할 수 있겠다 싶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제야 제가 조언(컨설팅)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할 때가 왔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일과 가정의 병행을 위해 컨설팅 업계에 있었지만,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되자 다시 금융계를 택했다. 그의 ‘피’는 금융인이었던 것이다.
씨티그룹 가자마자 ‘금융위기’, 그룹 구조조정 등 ‘구원투수’ 나서
씨티그룹 내에서는 그의 주전공이라 할만한 투자 및 글로벌 뱅킹 부문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2007년 10월에는 그룹의 글로벌 전략 및 인수합병 책임자로 승진했다. 순조로웠던 경력은 여기까지다. 날벼락처럼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쳐왔다. 저금리로 인한 서브프라임 모기지(저신용자 대출) 붐이 부동산 시장 하락, 금융시스템 붕괴로 이어졌고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졌다.
씨티그룹도 예외가 아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파생상품에 투자한터라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거대 금융그룹의 파산이 불러올 파장을 우려한 미국 정부가 450억달러(약 64조6000억원)의 구제금융을 지원한 덕에 파산 위기를 넘겼다.
정부 지원까지 받은 씨티는 ‘뼈를 깎는 노력’이라 할 만큼의 자구책을 내놔야했다. 제인은 당시 그룹의 구조조정과 재구축, 사업부 매각 및 신규 자본조달을 담당하는 팀에 임원으로 들어갔다. 그룹의 사활을 결정하는 팀이었다. 격무가 불보듯 뻔한 상황. 이전처럼 일과 가정의 양립을 요구할 수 없었다. 결국 남편 알베트로가 ‘전업 아빠(stay at home dad)’로 전환했다.
남편이 유럽에서 은행을 경영하고 있었다. 2008년에 우리는 마주 앉아 ‘가족을 위해 우리 중 한 명이 그만둬야 한다’고 논의했다. 남편이 나보다 10살 위였는데, 그가 “좋아, 내가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우리 둘 다 경력을 계속 이어갈 방법은 없었다.
당시는 (금융) 위기가 절정이던 시기였다. 남편의 은행은 매각됐고, 그는 이사회 멤버로 활동하거나 투자를 하는 일로 전환했으며, 아이들과도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만약 그만두는 것이 내 차례였다 해도 기꺼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나는 엄마이고, (아이를 돌보는 것은) 기쁨이기 때문이다.
금융 위기 극복을 위해 발버둥을 치던 2009년 6월에는 씨티 프라이빗 뱅크(PB)의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했다. 당시 씨티 프라이빗 뱅크는 연간 2억5000만달러(약 3600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었다. 제인은 프라이빗 뱅커 1명이 담당하던 고객 수를 기존 50여명 내외에서 30명으로 줄였다. 고객과의 관계를 강화해 서비스의 질을 더 높이겠다는 전략이었다. 여기에 은행가에 제공하던 수수료를 폐지하고, 직원들에게 연말 재량 보너스를 제공하는 등 유인책을 강화해 4년의 임기 동안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켰다.
2013년에는 씨티 모기지에 CEO로 부임했다. 같은 적자 자회사라 해도 PB와는 사정이 다른 곳이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제인은 “PB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가들을 만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즐거운 사업이다. 그런 고객들과 대화하는 특권을 누리다 하강 국면에 있는 사업부로 옮긴다는 것은 일반적인 경력 이동은 아니었다”며 완곡히 표현했다. 그러나 제인은 “무언가를 ‘턴어라운드(turnaround·회생)’시키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기회를 사랑한다” 말했고, 이를 입증했다. 단, 이번 경우에는 직원 1000명을 해고하고 지점을 줄이는 등 구조조정의 고통이 뒤따랐다.
여전한 숙제 남긴 남미 시장...하나씩 풀어가다 보니 그룹 CEO에
제인은 2015년 남미로 향했다. 씨티그룹 라틴아메리카의 CEO로 부임한 것이다. 라틴아메리카는 당시 씨티그룹의 매출 14%를 책임지는 주요 시장이었고, 제인은 24개국 본부의 운영을 책임지게 됐다.
남미에는 씨티그룹에서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는 숙제가 있었다. 멕시코에서 인수한 은행 바나멕스가 2014년 4억달러(약 5700억원) 규모의 불법대출을 승인, 내막을 들여다보니 임직원들의 리베이트 수수와 회계부정까지 나왔던 것이다. 이로 인해 씨티그룹은 연방수사국(FBI)과 증권거래위원회(SEC) 조사를 받고, 2015년에 9740만달러(약 1400억원)의 벌금까지 내야 했다.
당시부터 제인이 지휘한 바나멕스 자구책은 미완인 상태다. 2022년 씨티그룹이 바나멕스 매각 계획을 발표했으나, 외국계 자본의 인수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안드레스 오브라도르 당시 멕시코 대통령의 고집에 매각이 불발됐다. 올해 들어서야 멕시코의 억만장자 페르난도 치코 파르도가 25%의 지분을 인수하기로 했다. 나머지 지분은 기업공개(IPO) 방식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바나멕스의 손실을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제인 임기 동안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자산관리, 모기지 비즈니스가 뚜렷한 성장세를 보였다. 이에 힘을 받은 제인은 2019년 씨티그룹 사장 겸 글로벌소비자은행(GCB) 책임자로 임명됐다. 19개 시장에서의 소매금융, 자산관리, 신용카드, 모기지 등을 총괄하는 자리였다. 소매금융은 씨티의 약한 고리지만, 자산관리와 신용카드 등 씨티가 강점을 보이는 ‘알짜’ 사업부가 포함된 든든한 보직이었다. 제인은 이즈음 웰스파고 은행의 CEO 후보군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깜짝 인선은 씨티의 몫이었다. 2020년 9월 마이클 코뱃 씨티그룹 CEO는 자신의 후임으로 제인을 지목했다. 월가의 유리천장이 깨지는 극적인 순간을 제인은 엄마로서의 입장을 담아 이렇게 기억했다. “아들에게 이 소식을 알려주려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이후 큰 아들이 ‘엄마, 나 바빠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엄마가 급히 할 말이 있으니 전화해줘’라고 문자를 보냈지만 ‘엄마, 나 친구들이랑 줌(zoom)으로 얘기해야 돼요. 바쁘다고요.’라는 답문만 왔다. 잠시 후에 아들이 ‘엄마, 뉴스에 온통 엄마 얼굴이 나와요. 엄마 무슨 중요한 사람이예요? 아니면...’하는 문자가 왔다.”
경쟁력 있는 부문 집중 전략으로 체질 개선...시장도 다시보기 시작한 ‘월가의 문제아’
제인의 그룹 CEO 발탁을 두고 유리천장이 깨졌다는 희망적인 의미부여만 있지는 않았다. 최고위직 여성에게 주어지는 것은 ‘정리업무(clean-up)’라는 비판적인 평도 있었다. 이는 조지타운 대학교 맥도너 경영대학원의 캐서린 틴슬리 경영학 교수의 연구에서 나온 말이다. 기업 이사회는 회사가 어려움을 겪을 경우 여성을 고위직에 임명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연구의 내용이다. 회사가 순항하고 있을 때에는 남성들이 고위직에서 그 성과를 누리고, 막상 회사가 어려워질 때 여성들을 고위직에 앉혀 위기 극복으로 능력을 입증하라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씨티그룹의 상황도 암울했다. 2020년만 봐도 매출액은 전년과 거의 비슷한 743억달러(약 107조원)였는데, 순이익은 40%나 떨어진 114억(16조4000억원)달러였다. 자기자본수익률(ROE)이 6.5~7% 사이에 맴돌때 경쟁 그룹인 JP모건은 14%, 뱅크오브아메리카는 9%였다. 여기에 금융기업의 핵심인 리스크 관리 및 통제가 그룹에 치명타를 안겼다. 미 통화감독청(OCC)과 연방준비제도(Fed)가 리스크 및 데이터 관리 부실을 이유로 4억달러(5756억원)의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씨티는 내부통제 시스템 개선 명령도 받아 구조개편안을 주기적으로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씨티는 ‘월가의 문제아’가 됐다.
여기에 CEO로 취임 하자마자 코로나19가 덮쳤다.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 제인은 특유의 유연함으로 위기에 하나 하나 대응해갔다. 씨티그룹은 재택근무를 적극 도입했고, 유연근무를 확대했다. 씨티는 팬데믹이 끝난 후에도 직원이 원한다면 주 2회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JP모건, 골드만삭스 등 다른 대형 투자은행들은 사무실 복귀를 종용한 것과 다른 대목이었다. 이를 두고 제인은 “결과물을 보면 (재택근무로 인한) 업무 태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오래되고 시대에 뒤떨어진 문화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에너지를 발산하게 돼 상쾌하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자신의 일정을 조정해 근무시간을 적용하도록 하는 것도 씨티가 월가에 불러일으킨 변화다. 제인은 “일찍 퇴근해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리고 온 후, 저녁에 다시 접속해 업무를 마치는 것도 괜찮다. 아이들을 볼 수도 있고, 지옥 같은 통근 시간을 피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저연차 금융인들은 주 100시간을 일한다는 월가에서는 보기 힘든 정책이었다.
문화는 변했고,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문화는 필요하지 않다.
(회사는) 애널리스트들에게 저녁에는 귀가하도록 권장하고 있고, 업무가 필요할 경우 사무실에 남을 필요 없이 재택근무를 하도록 하고 있다.
통근 거리가 상당히 긴 직원들에게 재택근무를 허용하는 것이 오히려 생산성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은 제인의 취임 직후 나왔지만, 씨티그룹의 구조조정 계획은 1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다. 2022년 고심 끝에 내놓은 구조조정안은 5개 부문에 집중한다는 전략이었다. 트레이딩(채권, 외환, 파생상품 등)과 투자은행(기업 M&A 등), 서비스(기업 및 기관 고객 서비스 등), 자산관리(PB 서비스 등), 소매금융(신용카드, 디지털뱅킹 등) 등이다.
여러 가지로 확장해놓은 사업구조를 단순화하는 작업부터 들어갔다.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제인 취임 이후 1년만에 2만여명의 직원을 감축했다. 경쟁력 없는 사업 부문은 과감히 철수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과 브라질 등 여러 곳에서 소비자 금융을 매각했다.
내부통제 리스크가 컸다 보니, 금융의 책임을 강화하는 작업도 필수였다. 제인은 당시 상황을 두고 “매우 힘든 일이었다”면서도 “이것은 단순히 문제를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을 ‘변혁’하는 것이며, 반드시 제대로 해낼 것이라 다짐했다”고 전했다.
제인의 노력은 뜻밖의 우군을 맞는다. 구조조정 계획 발표 몇 주 후에 워런 버핏의 버크셔 헤서웨이가 당시 30억달러(약 4조3000억원)에 가까운 씨티그룹 주식을 매입한 것이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올해초까지 3년여간 씨티그룹의 4대 주주였다. 올해 1분기에 씨티그룹 보유 지분을 전량 처분했지만, 이는 금융주 비중을 축소하고 소비재 기업 지분을 늘리는 것으로 전략을 전환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심어가는 문화는 탁월함뿐 아니라 공감의 문화다.
공감이라는 단어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공감 능력이야말로 경쟁 우위의 핵심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고객의 목소리에 진정으로 귀 기울이고
그들이 걱정하는 바를 이해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직원들과 소통하며 그들이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
왜 일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그에 맞춰 가치 제안을 구성하면,
당연히 경쟁 우위를 확보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은행을 찾고 있다.
동시에 두뇌를 갖춘 은행,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에 매우, 매우 뛰어난 은행을 찾고 있다.
가시화된 ‘월가 퀸’의 마법...회장직까지 확보
제인이 진두지휘한 씨티의 구조조정안은 점차 그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씨티그룹은 올해 주가가 연초 대비 약 37% 가량 상승했다. 올해 매출은 전년보다 3.5% 성장한 수치인 840억달러(약 120조8000억원)를 돌파할 전망이다. 블룸버그, 월스트리트저널 등 경제 매체들은 “체질개선 성과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오펜하이머와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주요 애널리스트들은 씨티그룹 주식을 ‘매수(outperform)’ 또는 ‘강세(bullish)’ 의견으로 유지하고 있다. 목표주가를 100~110달러 수준으로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제인 프레이저는 성과에 힘입어 이달부터 씨티그룹 CEO에 이사회 의장(회장)직까지 겸임하게 됐다. 블룸버그는 누구도 성공할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씨티그룹의 구조조정이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을 들어 “프레이저는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할 만한 자격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며 “씨티에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 프레이저를 앞으로 몇 년 더 자리에 묶어두는 것이야말로 그 일들을 완수하기 위한 현명한 방법으로 평가된다”고 일컫기도 했다.
그룹의 체질개선 효과가 가시화되면서 제인에게 돌아가는 보상도 넉넉해졌다. 제인은 그룹 CEO로 취임한 첫 해인 2021년에는 총 기본급 150만달러(약 21억6000만원) 2250만달러(약 333억7000만원)를 받았다. 이후 기본급은 줄곧 150만달러였고, 해마다 보너스나 주식보상 규모만 달라졌다. 2022년에는 2450만달러(약 352억5000만원), 2023년에는 2600만달러(약 374억원), 2024년은 3450만달러(약 496억5000만원)로 보상이 올라갔다. 2024년 연봉은 월가의 CEO들 중에서도 최고의 인상률이었다. 순이익을 전년 대비 37%나 끌어올린 실적을 인정받은 결과였다. 올해는 회장직까지 겸하게 되면서 2500만달러(약 359억7000만원) 상당의 제한적 주식과 100만주의 스톡옵션까지 추가됐다.
월가의 유리천장은 2021년 제인이 공식 취임한 이후에도 수년간 더 이상의 균열이 나지 않았다. 여전히 금융그룹 CEO 중 여성은 보기 힘들었다. 올해 4월이 되어서야 유리천장을 깬 후임자가 나왔다. 자산규모 순위로 미국 내 5위인 U.S. 뱅코프에서 건전 케디아가 CEO로 취임한 것이다. 그만큼 월가의 유리천장은 여전히 견고하다. 회장 겸 CEO로 새로운 장을 연 제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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