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AfD 주의회 첫 승리 이끈 바이델, 中경제 전문가
‘전통가족관 중시’ 극우정당서 이례적인 동성연애자
英 런던 주식중개인 패라지, 7전 8기 끝 하원 입성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승리 이끌고 총리 넘봐
拂 극우 왕조 후계자 르펜, 8살 때 집안 폭탄 경험
변호사 출신…‘극우=악마’ 탈피 위해 FN창당 父도 내쳐
이민불만 폭발·경제불안 가중·기성정치 불신 ‘결집’
‘분노→선거표’로 바꾼 3인, 중앙권력 장악할 지 주목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유럽 정치에서 극우는 오랫동안 권력의 아웃사이더였다. 선거에서 의석을 늘리고 강경한 구호로 존재감을 키워도 실제 정부를 구성하는 단계까지 가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풍경이 달라졌다. 독일에서는 극우 정당이 주의회 선거에서 처음 제1당에 올랐고, 영국에서는 브렉시트를 이끈 정치인이 다시 총리직을 꿈꾼다. 프랑스에서는 수십 년간 극우의 상징이었던 가문의 딸이 대통령궁 입성을 노린다.
알리스 바이델(47), 나이절 패라지(62), 마린 르펜(58). 세 사람의 출발점은 전혀 달랐다. 한 사람은 중국에서 경제학을 연구하고 골드만삭스에서 일한 금융 엘리트였고, 다른 한 사람은 대학 대신 런던 금융시장을 택한 원자재 중개인이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여덟 살 때 집에 폭탄이 터지는 경험을 한 극우 정치인의 딸이었다. 서로 다른 삶을 거친 이들은 지금 유럽 극우의 대표적인 얼굴이 됐다.
최근 세 나라에서 극우 정당의 지지율이 동시에 상승한 것은 우연이라기보다 기존 정당에 대한 피로감과 생활비 부담, 이민 문제에 대한 불안이 겹친 결과로 읽힌다. 세 인물은 바로 이 틈을 파고들며 자신을 ‘기존 정치가 외면한 유권자의 대변자’로 세웠다.
골드만삭스 출신 동성애자, 獨극우 선봉에…‘44% 돌풍’ 바이델
독일대안당(AfD)의 공동대표 알리스 바이델은 극우 정치인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경제학 박사 학위를 가진 그는 골드만삭스에서 일했고, 중국에서 수년을 보내며 중국어를 익혔다. 스리랑카 출신 여성 파트너와 두 아들을 키우는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이민과 전통적 가족관을 강조하는 정당의 지도자로서는 이례적인 이력이다.
1979년 독일 서부 귀터슬로에서 태어난 바이델은 바이로이트대학에서 경제학과 경영학을 공부했다. 졸업 뒤 프랑크푸르트의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부문에서 분석가로 일하며 금융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그의 경력은 중국으로 이어졌다. 중국에서 약 6년을 보내며 중국은행에서 일했고, 중국의 연금제도를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어와 중국어를 구사하는 국제금융 전문가로 경력을 쌓은 셈이다.
정치 입문은 2013년이었다. 당시 AfD는 지금처럼 반이민을 전면에 내세운 정당이 아니었다. 유로존 재정위기 당시 독일이 남유럽 국가들의 구제금융 부담을 떠안는 데 반대하던 경제학자와 보수 인사들이 만든 정당이었다. 경제학자 출신 바이델에게 정치의 출발점 역시 유로화와 재정정책 문제였다.
하지만 2015년 난민 위기를 거치며 당의 성격은 급격히 바뀌었다. 대규모 난민 유입을 계기로 이민과 국경 통제, 독일 정체성이 핵심 의제가 됐다. 바이델도 이 흐름 속에서 당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2017년 연방하원에 입성했고 2022년부터 티노 흐루팔라와 함께 당을 이끌고 있다. 재정지출 축소와 규제 완화 등 경제적으로는 시장친화적 입장을 유지하면서 이민 제한과 추방 강화, 우크라이나 지원 반대에서는 강경 노선을 대변한다.
그의 사생활은 늘 정치적 논쟁을 불렀다. 동성 파트너와 두 아들을 키우는 가족 형태가 AfD의 보수적 가족정책과 충돌한다는 비판이다. 바이델은 사생활과 정치적 입장은 별개라는 태도를 보여왔다. 이처럼 국제금융 엘리트의 경력과 강경한 반이민 정치가 한 인물 안에 공존하는 점은 그의 가장 독특한 정치적 자산이 됐다.
지난 6일(현지시간) 작센안할트주 선거는 바이델의 정치 인생에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됐다. AfD는 약 44%를 얻어 83석 가운데 39석을 차지하며 제1당에 올랐다. 전후 독일에서 극우 정당이 주의회 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처음이었다. 다만 과반에는 미치지 못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CDU) 등 주류 정당은 AfD와 협력하지 않는 ‘방화벽’을 유지하고 있다. 선거 승리를 실제 권력으로 바꿀 수 있느냐가 바이델 앞에 놓인 다음 시험이다.
7번 떨어져도 브렉시트는 해냈다…英정치 뒤집은 ‘불사조’ 패라지
영국개혁당의 나이절 패라지 대표의 정치 인생은 한 가지 목표를 향한 집념으로 설명된다. 영국을 유럽연합(EU)에서 탈퇴시키는 것. 수십 년 동안 주변부 정치인으로 취급받던 그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승리로 영국 현대사의 방향을 바꿨다. 그러나 정작 영국 하원에 들어가기까지는 일곱 번이나 낙선했다.
1964년 영국 켄트주 판버러에서 태어난 패라지는 런던 금융가에서 일하던 주식중개인의 아들로 자랐다. 가정사는 순탄하지 않았다. 알코올 문제를 겪던 아버지가 그가 다섯 살 때 집을 떠났다. 패라지는 런던의 명문 사립학교 덜위치칼리지에 다녔지만 대학에는 가지 않았다. 대신 18세에 런던 금융가인 시티로 향했다.
1982년 런던금속거래소에서 원자재 거래를 시작해 금속 중개업자로 경력을 쌓았다. 정치 성향도 일찍 드러났다. 청소년 시절 보수당에 가입했지만 영국의 주권을 유럽에 넘기는 데 반대했다. 결정적인 결별은 19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이었다. 유럽 통합을 한 단계 진전시킨 이 조약에 보수당 정부가 서명하자 당을 떠났고, 이듬해 영국독립당(UKIP) 창당에 참여했다.
하원 진출은 쉽지 않았다. 1994년 첫 도전 이후 번번이 낙선했다. 대신 1999년 유럽의회 의원에 당선되며 역설적으로 자신이 반대하던 유럽 통합의 중심 무대를 정치적 발판으로 삼았다. 유럽의회에서 그는 거침없는 연설과 도발적인 화법으로 이름을 알렸다. 술집에서 맥주잔을 든 모습, 기성 정치인을 향한 직설적인 공격도 그의 상징이 됐다.
전환점은 2014년이었다. UKIP가 유럽의회 선거에서 영국 내 최다 득표 정당이 되자 보수당은 EU 탈퇴 요구를 무시하기 어려워졌다.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총리가 국민투표를 약속했고, 2016년 영국은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패라지는 오랫동안 불가능해 보였던 목표를 현실로 만들었다.
브렉시트 이후에도 정치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브렉시트당을 거쳐 영국개혁당(Reform UK)을 이끌며 이민, 세금, 공공서비스, 기성정치에 대한 불만을 집결시켰다. 2024년 총선에서는 클랙턴에서 마침내 하원의원이 됐다. 일곱 차례 실패 끝에 얻은 첫 하원 의석이었다.
하지만 패라지의 가장 큰 강점은 동시에 약점이다. 당보다 개인의 인지도가 압도적으로 크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거액 증여와 정치자금 문제로 의회 조사를 받는 등 재정 문제도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다. 패라지는 위법 행위를 부인하고 있다. 2026년에는 의원직 사퇴와 보궐선거라는 또 한 번의 승부수를 던졌다.
그는 최근 프랑스 국민연합(RN)의 조르당 바르델라와 영국해협 소형 보트 이민 문제를 놓고 협력에 나섰다. 양측은 집권할 경우 영국에 도착한 일부 망명 신청자를 프랑스로 돌려보내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브렉시트를 만든 ‘반대의 정치인’ 패라지에게 남은 과제는 이제 자신이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정치인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폭탄 테러서 살아남은 8살 소녀…佛극우 집권 문턱까지 이끈 르펜
1976년 11월 2일 새벽 프랑스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극우 정치인 장마리 르펜 가족의 집을 겨냥한 폭탄이었다. 건물 일부가 크게 파손됐지만 가족들은 살아남았다. 당시 여덟 살이던 마린 르펜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정치가 가족의 삶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겪었다.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연합(RN) 대표는 1968년 파리 인근 뇌이쉬르센에서 세 딸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장마리 르펜은 1972년 극우 정당 국민전선(FN)을 창당한 인물이다. 강경한 반이민 정책과 잇단 역사 관련 발언으로 프랑스 정치에서 가장 논쟁적인 정치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
가정생활도 평탄하지 않았다. 1984년 어머니가 집을 떠났을 때 르펜은 16세였다. 부모의 이혼은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 속에 진행됐다. 정치인의 딸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특권인 동시에 평범한 삶을 어렵게 만드는 짐이었다.
르펜은 파리 제2대학 팡테옹아사스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변호사로 일했다. 형사 사건과 국선변호 업무를 맡으며 법정 경험을 쌓았다. 1986년 국민전선에 가입했고 1990년대부터 당의 법률 업무와 선거에 참여했다.
2011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국민전선 대표가 되면서 본격적인 변신을 시작했다. 목표는 극우 정당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을 낮추는 것이었다. 이른바 ‘악마화 탈피’ 전략이다. 노골적인 인종차별 발언을 하는 인사들과 거리를 두고, 이민뿐 아니라 구매력과 복지, 치안을 전면에 내세웠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2015년 나왔다. 아버지 장마리 르펜이 홀로코스트 관련 발언으로 다시 논란을 일으키자 결국 그를 당에서 제명했다. 아버지에게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은 딸이 집권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그 유산의 상징을 내친 것이다. 2018년에는 당 이름도 국민전선에서 국민연합으로 바꿨다. EU 탈퇴와 유로화 폐지 같은 급진적 정책도 뒤로 물렸다.
효과는 선거에서 나타났다. 르펜은 2017년과 2022년 대선에서 잇따라 결선에 진출했다. 2022년에는 41.5%를 얻으며 마크롱과의 격차를 크게 줄였다. 산업 쇠퇴 지역의 경제적 불안, 이민과 치안에 대한 우려,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을 파고들면서 극우 정당을 정권 경쟁 세력으로 키웠다.
다만 마지막 문턱은 여전히 높다. 유럽의회 자금 유용 사건 유죄 판결과 이에 따른 법적 분쟁이 그의 대선 행보를 흔들고 있고, 젊은 조르당 바르델라가 당의 또 다른 얼굴로 성장하고 있다. 아버지를 넘어선 르펜에게 이제 필요한 것은 극우의 정상화가 아니라 실제 집권이다.
바이델과 패라지, 르펜은 출발점부터 달랐다. 금융 엘리트, 브렉시트 승부사, 극우 왕조의 후계자라는 삶도 닮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이 정치의 중심으로 올라온 동력은 비슷하다. 이민과 국경, 경제 불안, 기존 정당에 대한 실망이다.
다만 세 사람의 지지층과 정책은 같지 않다. 독일의 AfD, 영국개혁당, 프랑스 국민연합은 이민과 주권 문제에서 닮았지만 경제정책과 외교 노선, 제도권과의 관계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세 사람 모두 이제 선거에서 표를 모으는 단계를 넘어 실제 권력을 얻을 수 있는지를 시험받고 있다. 독일에는 ‘방화벽’, 영국에는 양당제와 조직력, 프랑스에는 결선투표와 법적 문제가 있다. 주변부의 분노를 중심부의 표로 바꾸는 데 성공한 세 사람, 그 표를 정부로까지 바꿀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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