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경제5단체가 11일 차기 정부가 역점 추진해야 할 100대 과제를 공동 제안했다. 성장 촉진 동력으로는 국가 차원의 인공지능(AI) 역량 강화가 가장 먼저 꼽혔다.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미래 먹거리가 부재한 상황에서 AI를 축으로 한 신산업 전략 외에 성장엔진을 되살릴 방법이 없다는 절박한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특히 향후 3~4년이 AI 강국으로 도약할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경고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경제5단체가 대선을 앞두고 공동으로 정책 제언집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저성장·고령화, 보호무역주의 확산, AI·기술혁명이라는 격랑 속에서 한국 경제가 점점 생기를 잃고 있다”며, 이번 대선이 ‘한국 경제라는 나무’를 다시 키울 전환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AI를 제1과제로 내세운 것은 위기의식을 보여준다. 에너지·데이터·인재가 뒷받침되는 AI 생태계를 조성하려면, 기존의 제한적 규제 완화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규제 메가 샌드박스’ 도입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AI 외에도 항공우주, 바이오, 로봇, 친환경 선박 등 미래 신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주문도 포함됐다. 정부는 마중물 역할에 집중하되, 성장은 민간이 주도할 수 있도록 세제·금융·인재 정책을 전방위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제언집에는 성장 동력 회복, 신산업 이식, 경제 영토 확장, 성장 기반 조성이라는 4대 축 아래 총 100개 과제가 담겼다. 모두 현장 경험에 기초한 실천적 제안들이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뉴노멀’에 진입했다는 우려는 이제 현실이 됐다. 국회예산정책처,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한국의 중기 잠재성장률을 1.8~1.9% 수준으로 제시했다. KDI는 2040년대에 아예 역성장이 상시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저출산·고령화, 노동력 부족, 투자 위축, 생산성 둔화가 맞물리면서 국가 경제의 엔진 자체가 식고 있다. 여기에 외부 충격이 겹치면 역성장은 순식간이다.
잠재성장률이 낮아졌다는 것은 성장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줄었다는 의미다. 재정 확대나 금리 인하로는 경제를 근본적으로 되살리기 어렵다. 13조원 추경을 쏟아부어도 0.1%포인트의 성장률을 올릴 수 있을 뿐이다. 국가부채는 빠르게 늘고 있다. 경제 체질을 바꾸지 않고서는 생산성을 올릴 길이 없다. 규제 철폐, 진입장벽 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연공서열식 임금 체계 개편 등 민감한 구조개혁을 미룰 처지가 아니다.
대선 주자들은 국가의 미래가 달린 이 중차대한 시점에 공허한 구호가 아닌 실현 가능한 정책 대안으로 국민에게 응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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