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취임 100일 전문가 진단

‘본격 관세협상’ 실무단 30일 방미

24일 고위급 통상협의 후속조치 진행

美 자동차 부품 관세 완화 검토 발표

[헤럴드경제=배문숙·양영경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았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식 관세폭탄은 국제 무역 질서를 무너뜨렸고, 누구보다 한국 경제는 충격에 빠졌다. 관세 전쟁 후폭풍은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의 대미 수출 감소 등 이미 수치로 드러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완성차에 다른 관세를 중복으로 부과하지 않고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도 완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자국 내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출구 전략일 수 있다는 견해를 냈다.이에 한미 관세 협상 시한인 7월까지 피말리는 싸움을 펼쳐야 하는 상황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봤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는 관세 폐지를 목표로 하는 ‘7월 패키지(July Package)’를 마련하기 위해 이번 주 미국과 본격적인 ‘관세 협상’에 나선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협상 실무단이 30일 미국 워싱턴D.C로 출국해 미국과 협상 세부 의제를 논의할 작업반을 구성할 예정이다.

29일 정부에 따르면 장성길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정책국장과 안홍상 미주통상과장 등으로 구성된 실무단이 오는 30일 미국 워싱턴D.C로 출국해 미국무역대표부(USTR) 등과 양국 간 통상협의관련 세부 의제를 논의할 작업반 구성을 논의한다. 이는 지난 24일 고위급 통상 협의에 따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백악관 앞 잔디밭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A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백악관 앞 잔디밭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AP]

한미는 지난 고위급 통상 협의에서 ▷관세·비관세 조치 ▷경제안보 ▷투자 협력 ▷통화·환율 정책 등 4개 분야로 의제를 좁힌 바 있다. 이번 실무단은 세부 의제의 작업반 구성을 놓고 협의한 예정이다.

또 작업반 구성 의견을 내는 과정에서 미국이 우리나라에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비관세장벽 21건에 관련 논의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그간 연례 무역장벽 보고서 등을 통해 구글의 정밀 지도 반출 문제, 약값 책정 정책, 스크린 쿼터제 등까지 한국에 자국 상품과 서비스의 수출을 저해하는 다양한 비관세 장벽이 존재한다는 문제를 제기해왔다.

이런 가운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전날 공개된 영국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비관세 장벽 개선 관련, “개선할 수 있는 몇 가지 지점이 있다”면서 한국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 수출 제한으로 인한 구글 지도(Google Maps)의 제약을 예시로 제시했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주요 동맹국들과 통상 현안을 빠르게 정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취임 100일은) 트럼프 대통령이 성과를 어떻게 포장하느냐가 중요해진 시점”이라며 “진행 중인 협상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와 구체적으로 합의하지 않은, 자신이 희망한 것도 합의가 이뤄진 것처럼 선포를 해버리는 경향이 있다”면서 “취임 100일을 맞아 그런 성격의 발언을 내놓을 수 있다”고 봤다.

취임 100일을 하루 앞둔 28일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내 생산 자동차에 들어가는 외국산 부품에 대한 관세를 일부 완화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핵심은 외국산 완성차에 부과된 25% 관세와 철강·알루미늄 등 다른 품목에 대한 관세가 중복 부과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특히 이미 중복 관세를 납부한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소급 적용을 통해 환급을 신청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다음달 3일부터 부과하는 자동차 부품 관세는 일정 금액을 환급하는 형태로 완화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미국 내에서도 관세정책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무리한 관세정책을 현실화시켜가기 위한 조치, 즉 출구전략을 쓰는 게 아닌가 싶다”면서 “앞으로 다른 항목에도 완화 조치가 확산할 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선 협상할 국가로 한국을 꼽았는데 여론에 선전할 만한 성과를 내지 않으면 관세 정책에 대한 대대적인 불신, 부작용, 반대여론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수 있다”면서 “우리는 중장기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한 것을 양보 패키지에 넣으려고 하겠지만, 미국에서는 투자 참여나 방위비 등 바로 홍보할 수 있는 것을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속도전과는 별개로 최근 악화한 여론을 고려해 ‘톤 다운’하고 있는 만큼 우리로서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최대한 협상을 전개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입소스가 18~22일 미국 성인 246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평가한 응답자는 39%, ‘부정적’은 55%였다. 부정적인 평가가 더 많은 정책으로는 최근 주식시장 혼란(67%), 관세 정책(64%), 경제 정책·외국과의 관계(61%) 등이 꼽혔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난 100일을 뒤돌아보면 트럼프 행정부는 일사불란하게 관세를 비롯해 비관세장벽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고 이행해왔는데, 지난 1기와 다른 점은 금융·주식·채권·외환시장이 이에 대해서 빠르게 부정적인 반응을 내놨다는 것”이라며 “최근에는 시그널을 감지하고 톤 다운, 즉 조정 국면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우리로서는 ‘톤 다운하는 조정국면 속 협상’이기에 유리한 상황이 됐다고도 볼 수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일본과의 협상을 통해 보복이 아닌, 협력 트랙을 타는 나라들이 최선의 제안(A game)을 가져오면 관세도 낮춰줄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신원규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연방정부 부채 문제와 관세 유예 마감이 결정되는 오는 7월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이를 기점으로 주요 무역 파트너국들과의 협상을 완료하고 ‘트럼프식 상호주의 무역체계’를 본격 구축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과의 협상에서 만족할 수준의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동맹국과의 합의 기반 위 7월 이후 중국에 대한 최대 압박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속도전에 휘말리지 않고 신중한 협상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기보 교수는 “우리도 우리만의 일정이 있는 만큼 휘둘리지 않고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규 한국경제인협회 글로벌리스크팀장은 “협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큰 타격 없이 관세 파고를 넘어갈지 여부가 결정된다”면서 “당연히 한 판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 나올 때까지 계속 판을 만들어야 한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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