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투자액 2000억달러의 60%인 1200억달러 차지
웨스팅하우스 지분 투자도…K원전, 미국 진출 통해 세계 시장 진출
조선협력 ‘마스가’보다 ‘마누가’ 시너지 더 클 것으로 기대
[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2000억달러 규모의 대미 전략투자에서 최대 1200억달러가 원전에 투입된다. 미국에 대형 원전 8기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한국형 원자로인 APR1400 2기도 포함됐다. 미국 원전 시장에 한국형 원자로가 실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단순한 투자 사업을 넘어 K원전의 해외 사업 기반을 넓힐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미국 원전 공급망에 국내 기업의 참여를 확대하고 현지 건설 경험을 확보할 경우 유럽 등 제3국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할 발판이 될 수 있다. 조선업의 미국 진출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에 이어 원전에서도 미국을 교두보로 한 글로벌 진출이 가능할지 주목된다.
핵심은 한국형 APR1400 2기다. 나머지 6기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AP1000으로 건설한다. 1단계에서 AP1000 2기를 짓고, 2단계에서 APR1400 2기와 AP1000 2기를 건설한 뒤 3단계에서 AP1000 2기를 추가하는 3단계 방식이다. 양국은 1·2단계 EPC 계약의 시차가 6개월을 넘지 않도록 ‘합리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무엇보다 APR1400의 미국 진출을 막아온 한미 원전업계의 타협협정(SA·Settlement Agreement)을 개정하기로 한 것이 이번 합의의 핵심이다. 지난해 1월 한전·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체결한 SA에는 한국형 원전의 미국 진출과 관련한 제약이 담겨 있다. 또한 한국형 원전을 해외에 수출할 경우 1기당 최소 1조원이 넘는 물품과 용역 등을 웨스팅하우스에서 구매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부는 “한국 노형인 APR1400은 양국 기업들이 체결한 SA로 인해 미국 진출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며 “미국 에너지부·주정부·의회·업계 등을 다각도로 접촉하고 미측과 치열하게 협상해 미국 진출이라는 성과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합의로 APR1400 2기의 미국 건설을 프레임워크에 명시하면서 막혀 있던 시장 진입의 문을 열었다는 의미가 있다. 미국이라는 원전 종주국에서 한국형 원전을 실제 건설할 경우 수주 실적과 건설 경험을 확보할 수 있다.
원전은 실제 건설·운영 경험이 후속 수주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산업이다. 미국에서 APR1400 건설 실적을 확보하면 향후 유럽 등 제3국 수주전에서도 한국형 원전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부도 APR1400의 미국 진출이 제3국 시장에서 한국형 원전의 수주 가능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AP1000 6기도 국내 원전 기업에는 새로운 기회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형 원전인 AP1000의 시공과 기자재 공급망에 참여할 수 있다. 미국 원전 건설 과정에서 국내 기업의 공급망과 시공 역량을 입증하면 향후 웨스팅하우스가 참여하는 유럽 등 제3국 사업에서 공동 진출할 기반도 넓어질 수 있다.
정부가 대미합의 직후인 1일 원전수출기획위원회를 열고 APR1400의 기본설계·인허가·EPC·시운전과 AP1000 공급망 참여 방안을 논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웨스팅하우스 지분 인수까지 추진된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대규모 원전 사업에서 발생하는 상업적 이익을 한미 간 폭넓게 공유하기 위해 한국 기업들의 웨스팅하우스 지분 인수도 추진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등에 따르면 한국은 웨스팅하우스 지분 5~10%를 공모가보다 10% 낮은 가격에 인수하고 이사회 의결권을 확보하는 방안을 미국과 논의 중이다. 다만 구체적인 지분율과 조건은 협의가 진행 중이다.
이 같은 협력이 현실화하면 원전도 조선업의 ‘마스가’와 비슷한 산업적 확장 효과를 노려볼 수 있다. 조선이 미국 현지 생산과 공급망 진입을 통해 시장을 넓히는 것처럼 원전 역시 미국에서 경험과 공급망을 동시에 확보해 ‘마누가(Make America Nuclear cooperation Great Again)’ 협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1200억달러라는 숫자만으로 국내 기업에 대규모 일감이 확보됐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APR1400의 미국 진출에 따른 수익성을 좌우할 핵심 변수는 개정되는 SA의 세부 조건이다. 한전·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는 기술료와 역무, 핵연료 공급 등을 놓고 후속 협상을 벌이게 된다. 정부 안팎에서는 관련 비용이 20억달러 수준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종 조건은 확정되지 않았다. 한국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대가로 웨스팅하우스에 지급하는 비용이 커질수록 국내 기업이 가져갈 수 있는 몫은 줄어들 수 있다.
사업의 상업성도 아직 검증해야 한다. 원전 8기는 각각 별개의 프로젝트로 추진되며 부지와 인허가, 공사비, 전력 수요 등을 고려해 상업적 합리성을 따지게 된다. 정부는 원전 건설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용 초과에 대비해 1200억달러 가운데 200억달러를 예비비로 편성했다. 이 예비비는 실제 집행되지 않더라도 투자 이행액으로 인정된다. 또 제작 기간이 긴 기자재의 선제 발주를 위해 100억달러를 미국 측에 우선 지급하기로 했다.
인력 확보도 과제다. 미국 원전 8기에 더해 체코 두코바니 원전 2기와 국내 영덕 신규 원전 2기까지 건설이 겹치면 설계·시공·시운전·품질관리 등 전문인력 수요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 한전과 한수원 등 공공기관의 인력 운용에 제약이 있는 만큼 미국 사업을 실제 수주로 연결하려면 민간 시공사와 기자재 업체까지 포함한 ‘팀코리아’의 인력과 역량을 어떻게 배분할지가 관건이다. 현재 재정경제부에서 공공기관 인원수를 관리하기 때문에 한전과 한수원 인력수를 증원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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