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기사 내용과 관련 없는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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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보영 기자] 미국에서 자폐증 진단 건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부 장관이 자폐증 발생률 증가의 원인을 규명하라고 지시했다.

15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미국의 자폐증 아동 비율은 2000년에는 150명 중 1명꼴이었으나, 2022년에는 31명 중 1명꼴로 급증했다. 1960~70년대 연구에서는 자폐증 유병률이 약 5000명 중 1명 수준이었지만, 2000년대 이후부터는 급격하게 증가했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텍사스 일부 지역에서는 100명 중 1명꼴로 진단을 받았지만, 샌디에이고에서는 무려 19명 중 1명꼴로 진단이 이뤄졌다. 인종별로 보면 백인 어린이보다 아시아계, 흑인, 히스패닉계 어린이에서 자폐증 진단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증가세에 대해 자폐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검사 자체가 확대된 결과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역 및 인종 간 유병률 격차에 대해서는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높은 가정일수록 자폐증을 조기에 발견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뉴저지 러트거스 대학의 월터 자호로드니 박사는 “특히 캘리포니아는 오랜 역사를 지닌 훌륭한 검진 및 조기 개입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폐증 발병률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대중의 우려가 커지자, 케네디 장관은 지난달 미국 국립보건원에 자폐증 비율 증가의 원인을 오는 9월까지 규명하도록 지시했다.

케네디 장관은 최근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자폐증 유행을 일으킨 원인이 무엇인지 규명하기 위해 전 세계 수백 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검사와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특히 백신 회의론자로 유명한 케네디 장관은 백신과 자폐증의 관련성을 연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자폐증은 유전적 요인, 부모의 고령화, 태아기 대기오염 및 살충제 노출 등 다양한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질환으로, 주요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면 연구 설계에만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여년간 자폐증 원인을 연구해온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마인드(MIND) 연구소의 어바 허츠-피치오토 박사는 “9월까지 원인을 규명한다는 계획은 터무니없다”고 비판했다.

미국자폐증협회는 성명을 통해 “추측에 근거하거나 투명성이 부족하고, 지나치게 촉박한 일정이 아닌,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엄격한 연구가 필요하다”며 “누가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지, 어떤 방법론을 적용하고 있으며, 그것이 과학적 기준을 충족하는지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또 자폐증옹호네트워크의 책임자 조 그로스는 “그들은 ‘자폐증의 원인이 무엇일까’라는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지 않고, ‘자폐증이 특정 요인에 의해 유발된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진행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bb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