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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무차별 관세 따른 美 물가상승 방어책

‘제2 플라자 합의’로 달러 약세 유도 가능성

관세전쟁 와중 EU·中·日, 美에 비우호적…1985년과 달라

베선트 재무 “국채금리 하락 필요성” 지속 언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일(현지시간) 상호관세 발표로 글로벌 관세전쟁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철강, 자동차 등 품목별 관세에서 미국과 교역하는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한 이른바 ‘상호관세’로 글로벌 무역전쟁이 한층 격화할 전망이다.

트럼프의 무차별 관세 정책으로 미국의 물가 상승과 스테그플레이션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관세로 대외 불균형을 해결할 수 없는 미국이 종국엔 교역 상대국의 환율 조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글로벌 관세전쟁이 환율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도 ‘나바로 패러다임’으로 불리는 대중국 강공 일변의 관세정책을 펼쳤다. 당시 중국은 보복관세 대신 위안화 가치를 15% 넘게 평가절하하는 방식으로 맞섰다. 그 결과 관세 충격의 70% 이상을 상쇄할 수 있었고, 위안화 평가절하는 미국과의 경제력 격차를 10년 이내로 좁히는 원동력이 됐다. 트럼프 정부의 조치가 관세 다음에 환율로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은 1기 당시 경험했던 뼈아픈 정책 실패에 근거를 두고 있다.

4월 2일 오후 3시 기준 달러인덱스 추이 [인베스팅닷컴]
4월 2일 오후 3시 기준 달러인덱스 추이 [인베스팅닷컴]

실제 트럼프 진영에서는 ‘마러라고 합의’에 대한 논의가 일찌감치 있어왔다. 앞서 미국은 1985년 9월 뉴욕에 있는 플라자호텔에 주요5개국(G5) 재무장관들이 모여 ‘플라자 합의’로 달러가치 하락을 유도한 적 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저택이 있는 미국 플로리다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 주요국 재무장관을 불러들여 또 한번 달러 약세를 압박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정부는 최근 대미 무역 흑자가 큰 나라로 중국, 멕시코, 베트남, 일본, 한국 등을 지목하면서 “그들 통화는 너무 싸다”고 비난했다. 이에 이들 국가를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플라자 합의가 다자간 협력으로 이뤄졌다면 이번에는 미국의 일방적 압력으로 이들 국가의 통화 가치가 급등할 수도 있다.

‘제2 플라자 합의’로 弱달러 유도할 수도

외환시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 강세를 바로잡기 위한 새로운 국제적 틀 구축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시장은 최대 리스크로 ‘제2 플라자 합의’를 경계하는 모습이다.

플라자 합의란 1985년 미국이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만나 일본·독일·영국·프랑스와 진행한 환율 조정 합의로, 달러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게 골자다. 이 결정은 당시 달러 가치가 5년 새 두 배로 상승해 세계 무역을 뒤흔들고 금융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들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뤄진 조치였다.

워싱턴 민간 연구기관 애틀랜틱 카운슬의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측근 중 일부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달러를 평가절하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강달러가 국제 무역 불균형을 초래하며, 미국 제조업을 불리하게 한다는 설명이다.

트럼프는 미중 무역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달러 약세가 절실하다. 수입품은 관세 인상으로 비싸지는 반면, 수출기업은 달러약세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택 마러라고 리조트 전경. [로이터]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택 마러라고 리조트 전경. [로이터]

최근 미국 헤지펀드 허드슨베이캐피털이 지난해 11월 내놓은 41페이지 분량의 보고서 ‘글로벌 무역 재편을 위한 유저 가이드’에서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 지명자는 “‘미러라고 합의’를 해야 한다”며 “달러는 세계의 외화 준비금으로서 수요로 인해 고평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란은 국가를 통화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수단으로 ‘관세’를 제안했다. 미란은 보고서에서 “자국 통화를 지키기 위해 달러를 보유한 국가는 달러를 팔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 관세 인상을 이용한다. 일련의 관세 이후 유럽, 중국 등 무역 상대국이 관세 인하 대가로 어떤 통화 협정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미란은 관세에 더해 미국의 ‘안보 우산’도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그는 미국의 안보망을 제공받는 국가들이 이에 대한 비용을 부담해야 하며, 이를 통해 달러 평가절하를 유도하고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 효과를 완화할 수 있다고 봤다. 미란은 안보망을 제공받는 국가들이 “미국 국채, 특히 100년 만기 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해야 하며, 만약 단기 국채를 장기 채권으로 교환하지 않는다면 관세로 인해 시장에서 배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도 “공동 안보를 누리려면 공동의 통화 목표를 가져야 하며, 관세는 협상 조건을 조정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미국의 안보 우산을 글로벌 무역 시스템 재편과 연계해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관세전쟁 한복판 EU·中·日, 제2 플라자합의 참여 안 할 가능성↑

미국 달러화와 중국 위안화 [로이터]
미국 달러화와 중국 위안화 [로이터]

다만 플라자 합의 때와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무역적자 감축 관점에서 보면 대미 무역흑자가 큰 나라는 중국과 멕시코, 베트남이다. 플라자 합의처럼 미국 주도로 통화정책을 조율하려면 중국 등의 참여가 필수다. 1985년 당시만 해도 미국은 프랑스, 독일, 일본, 그리고 영국에 대한 안보 보장을 제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2025년 중국, 멕시코, 베트남은 미국의 군사 보호에 의존하지 않는다.

미국 달러가 글로벌 기축통화로서 차지하는 지위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바 있는 중국은 달러가 외환보유고 및 국제 금융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약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현재 소비 수요가 지속적으로 부진한 상황에서 중국은 여전히 수출 부문에 경제 성장의 동력을 기대고 있다. 무역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이때, 중국이 위안화 절상을 통해 자국 수출 경쟁력을 저해할 위험을 감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플라자합의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일본도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감수할 생각이 없다. 일본은 플라자합의 이후 급격한 엔고에 대응해 금융완화 정책을 폈고, 이는 버블을 낳았다. 이후 금리 인상 및 부동산 대출 총량 규제 등으로 버블이 붕괴하고,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으로 이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유럽연합(EU) 역시 동맹국을 먼저 때리는 미국에 강력한 보복조치를 준비하는 등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같은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스와프를 통한 달러 자금 지원을 계속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 1일(현지시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103.945를 나타냈다. 달러인덱스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점차 하락세를 보이다가 지난 3개월 동안 108에서 103으로 5% 가량 하락했다.


mokiy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