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머잖아 봄바람, 꽃바람이 겨우내 닫혀 있었던 몸과 마음을 열어젖힐 터이다. ‘봄추위가 장독 깬다’고 경칩 지낸 날씨 치곤 제법 맵지만 우리는 안다. 그야말로 혹독한 동장군도 ‘따스한 바람, 품에 안고 살랑살랑 다가오는 봄처녀’를 이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하지만 오늘 우리네 춘삼월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 느닷없는 계엄과 몇 달째 뒤엉켜 있는 탄핵 찬반의 소용돌이로 정치는 어지럽고, 경제는 회복이 가물가물하고, 사회는 어수선하고, 살림은 쪼그라들었다.

기쁠 땐 궂은 비도 낭만이지만 서글플 땐 화사함도 비극이듯이 어쩌다 찾아오는 즐거움도 즐길 수 없다. 가슴 한구석에 도저히 털어낼 수 없는 찜찜함이 도사리고 있어서다. 그러나 마냥 그러지 않아도 된다. 돌이켜보면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은 이런 봄’이 처음은 아니다. 을사늑약의 빌미가 된 1904년 2월, 전두환의 ‘친위 쿠데타’로 비롯된 1980년 3월,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의 4월이 그러했듯 부지기수였다.

그 봄날들은 한결같이 암울했다. 새봄의 소생, 활기, 도약, 희망을 찾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정지된, 아니 거꾸로 가는 세월이었다. 나라를 빼앗기고 애써 가꿔 온 민주주의를 잃고 말았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쓰러질지언정 꺾이지 않는 수천 년 역사의 민족답게 저항하고 부딪치며 싸워 봄을 되돌려 놓았다. 더러는 수십 년이 걸리기도 했지만, 그 어느 것도 우리의 봄을 빼앗지는 못했다. 조선의 봄이 그랬고, 서울의 봄이 그랬다. 추운 겨울 뒤의 봄꽃이 더 화려하다고 하지 않던가. 오늘날 세계에 퍼진 ‘K의 명성‘도 그 잔인한 봄들을 이겨내며 일군 것이다.

그럼에도 이 봄이 걱정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적당한 가운데가 없이 지나치게 양쪽 끝을 달리고 있고 모두의 몸과 마음이 너무 많이 가라앉아 있으며 함께 걱정하다가도 돌아서면 또 핏대를 세우기 때문이다. 극렬하게 싸우다가도 돌아설 땐 손을 잡았던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왕소군은 그 미모라면 북쪽 험지까지 끌려가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뒷돈을 챙기지 못한 화공이 그녀를 일부러 못생기게 그린 것이 화근이었다. 그림으로만 삼천궁녀를 봤던 중국 왕은 당연히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나, 가까이에서 실제 모습을 본 흉노 왕은 단번에 소군에게 빠져들었다. 두 나라 화친의 제물이 되고 만 그녀는 고향 땅을 떠났고 한 시인이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피지 않아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며 그녀의 서러운 ‘춘래불사춘’을 읊었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의 봄만 맥없이 기다리지는 않았던 듯하다. 문화의 불모지인 흉노에게 중국의 문물을 습득시키며 화친의 역할을 제대로 해 그로부터 60여 년간 한나라와 흉노는 싸움 없는 봄날을 보냈다. 덕분에 왕소군은 훗날 서시, 초선, 양귀비 등 중국 4대 미녀 중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미녀가 됐다.

봄인데도 봄이 온 것 같지도 않다며 너무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동안 살아본 바에 따르면 이 소용돌이와 혼돈도 곧 잠잠해진다. 호된 과정을 거치겠지만 해피 엔딩이 확실하다.

일체유심조, 모든 게 마음먹기다. 지내 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봄을 봄 같지 않게 만드는 바보 같은 사고들은 더 이상 일으키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자면 ‘이 또한 지나 가리라’가 아니라 ‘이 또한 지나 가게 하리라’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할 터.

봄이다. ‘봄인 듯 봄 아닌 봄’ 말고 ‘봄다운 봄’을 기다린다.

이영만 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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