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현장 수색 중 순직한 채 모 상병 사건 조사를 맡았다가 항명 및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게 군사법원이 9일 무죄를 선고했다. 중앙지역군사법원 재판부는 1심 선고공판에서 박 대령이 채 상병 사건 수사 기록 이첩 보류와 관련한 명령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명령 자체도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이 박 대령에게 개별적·구체적으로 명확한 지시를 하지 않았고,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김 전 사령관에게 내린 이첩 보류 명령 자체도 부당하다는 것이 판결 요지다.
군 조직, 더 나아가 국가기관의 공적 체계에서 명령이 직무상 의무로 성립되기 위해선 명확성과 정당성을 모두 갖춰야 한다는 것이 판결의 핵심이다. 국군통수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의 위헌·불법적 비상 계엄 선포와 그 명령에 따르고 행위에 가담한 이들을 수사기관이 전방위로 조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법원이 발부한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경호처가 병력을 동원해 막아 왔다. 지휘계통과 현장 최일선에서 누구의 어떤 명령을 따를 것인가가 첨예한 문제가 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가운데 나온 판결은 여러모로 뜻깊다.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박 대령은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경찰에 이첩하겠다고 상부에 보고했고, 이종섭 당시 국방 장관은 이를 승인했다가 입장을 바꿔 보류할 것을 다음날 지시했다. 재판부는 “군사경찰은 군사법원에 재판권이 없는 범죄를 인지한 경우 관련 기관에 지체 없이 이첩해야 할 직무상 의무가 있다”고 했다. 이 전 장관의 이첩 보류 명령은 채 상병 사건 수사 기록을 수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내려진 것으로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박 대령 측은 이첩 보류 결정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격노설과 외압설을 주장해 왔는데 재판부는 이를 확인하기 위한 대통령실과 국방부, 해병대 등에 대한 군검찰의 충분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채 상병 사건의 진상이 아직도 온전히 규명되지 않았음을 우회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정치권과 우리 사회는 채 상병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군 복무 중 순직한 한 청년의 희생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또 청년들이 앞으로도 자랑스럽게 병역 의무를 이행하고 부모들은 마음 놓고 자식을 군에 보낼 수 있는 길이다. 무엇보다 군의 명예와 기강은 헌법과 법을 준수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당한 명령’으로부터만 지켜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박정훈 대령에 대한 무죄 판결은 웅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