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90년대 복고
‘건축학개론’과 ‘응답하라 1997’ 힙합바지·PC통신·삐삐… 깨알같은 재연으로 90년대 소환
가요계도 아날로그 열풍 ‘버스커버스커’ 주요 차트 독식 후크송에 질린 대중에 큰 위로
하이테크, 하이엔드의 감성이 오히려 촌스러운 한 해였다. 2012년 대중문화는 복고, 그것도 외환위기(IMF)가 터지기 이전, 경제ㆍ사회ㆍ문화적으로 풍족함과 여유가 절정을 이루던 1990년대 초ㆍ중반으로 시침을 돌렸다. 경쟁 속에 앞만 보고 달렸지만, 세계 경제위기와 장기불황을 피하지 못하고 워킹푸어, 하우스푸어로 전락하고만 30ㆍ40대에게 1990년대는 팍팍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피로회복제였다. 2011년이 음악다방 ‘세시봉’과 영화 ‘써니’가 주도한 70~80년대 복고라면 2012년은 영화 ‘건축학개론’과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만든 90년대 복고의 잔치였다.
▶영화, 방송, 가요계를 물들인 복고 감성=96학번 건축학도의 어설픈 첫사랑 이야기 ‘건축학개론’은 1994년 발매된 전람회 1집 ‘기억의 습작’ 다시 듣기 열풍과 전 국민적인 첫사랑앓이를 불러일으켰다. 공일오비의 ‘신인류의 사랑’, CD플레이어, 헐렁한 힙합바지와 가르마 헤어스타일 등으로 ‘X세대(1970년대 이후 태어나 1990년대 초반 대학을 다녔던 ‘나’를 중시한 세대)’를 추억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1996년 국내 최초로 결성된 아이돌 그룹 H.O.T와 젝스키스조차 추억의 대상으로 만들며, 당시 중ㆍ고등학교 학생이던 ‘N세대(네트워크세대)’까지 복고 대열에 합류시켰다. PC통신과 다마고찌, 삐삐, PCS, 공지영 소설 ‘봉순이 언니’, 천계영 만화 ‘오디션’, 깜찍이소다와 이스트팩 가방, K2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등 영화, 음악, 방송, 광고, 문학, 만화, 패션, 디지털기기까지 당시 주변을 깨알같이 재현해내며 1997년을 2012년에 소환시켰다.
아날로그 복고 감성은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묻어났다. 늘 최첨단 비밀무기로 무장했던 첩보요원 ‘007’은 50주년 된 올해 터키 이스탄불의 먼지가 풀풀 날리는 도로 위를 오토바이로 달리고 맨주먹과 칼, 간단한 무선GPS장치로 싸운 게 전부였다.
가요계도 디지털 사운드를 제거한 어쿠스틱한 아날로그 감성이 적셨다. 지난 3월 발매한 버스커버스커 1집은 ‘여수밤바다’ ‘눈꽃엔딩’ 등이 주요 온라인 차트에서 1위를 독식하며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힙합 듀오 리쌍의 언플러그드 앨범, 나얼의 릴 테이프 녹음(자기 테이프에 자연 파장 그대로 소리를 기록하는 방식)이 시도됐다. 윤건, 넬, 에피톤프로젝트 등이 아이돌그룹의 화려한 군무와 단순한 후크송에 물린 대중을 위로하고 따뜻한 감성으로 채웠다.
1990년대 음악을 들려주는 주점 ‘밤과 음악 사이’가 홍대에서 출발해 빠르게 점포 수를 늘렸고, 1990년대 가요와 그 시절 스타들이 출연하는 기획 공연이 잇따랐다.
▶문화 소비와 생산의 주류로 떠오른 40대=드라마 ‘신사의 품격’은 한때는 신세대로 불린 ‘X세대’였지만 지금은 기성세대로 늙은 40대 초반 남성인 ‘꽃중년’의 이야기를 다뤄 인기를 모았다. 가장으로서 생계에만 매달렸던 아버지 세대와 달리, 경제력을 갖추고 나에게도 관심을 쏟는 40대 남성이 현실에선 문화소비의 주류로 떠올랐다. 문화계 40대 남성은 소녀시대, 아이유의 디지털 음원을 다운로드하고 ‘국민 첫사랑’ 수지에 열광하는 ‘삼촌 팬’이자 뮤지컬 ‘위키드’를 보기 위해 삼삼오오 공연장을 찾은 직장인 관객과 동의어다.
그런가 하면 40대 여성은 TV 앞을 떠나는 20ㆍ30대를 대신해 흥행 드라마와 프로그램을 결정짓는 바로미터가 됐다. ‘해를 품은 달’ ‘옥탑방 왕세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넝쿨째 굴러온 당신’ 등 화제의 드라마 뒤에는 주 시청자인 40대 여성이 든든하게 자리했다.
마흔 언저리의 감성을 잘 이해하고 ‘니즈’를 충족시킨 이들 역시 1970년대생이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박지은 작가, ‘응답하라 1997’의 신원호 감독과 이우정 작가, 영화 ‘건축학개론’의 이용주 감독, ‘늑대소년’의 조성희 감독,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윤종빈 감독 등 197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에 캠퍼스 생활을 한 30ㆍ40대가 한국 대중문화계를 이끄는 주역으로 떠올랐다.
한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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