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자영 기자]법원 경매 풍경이 달라졌다. 투기는 사라지고 실수요의 분위기가 역력하다. 집값 상승 기대감이 아예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물론 척 보면 알 만한 꾼들이 없는 건 아니다. 꾼들은 눈빛도 행동도 다르다. 속사포처럼 경매 결과가 발표되지만 급한 게 없다. 꼭 필요한 것만 메모할 줄 안다. 하지만 이들마저도 지금은 초보자의 법적 절차를 도와줄 대리인으로 오는 게 대부분이다. 대신 모자나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혼기 닥친 자녀에게 집을 사주거나 가게를 열 만한 상가를 찾는 사람도 많다. 일단 분위기를 알고 보자며 공부를 위해 찾는 초보자들도 부지기수다. 차액을 노리다가 ‘아니면 말고’ 하는 표정은 없다. 건별 낙찰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탄식과 감탄의 소리가 유난히 높은 이유다.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북관 211호 경매법정. 대출 끼고 샀다가 눈물 머금고 토해낸 강남의 반값 아파트 물건이 많아 늘 주목받는 곳이다. 여기엔 “망한 집을 왜…”라는 사람들이 없다. 찌는 듯한 더위에도 210여개의 좌석은 만원이다. 역시 이날 낙찰된 물건은 일원동, 도곡동, 개포동, 서초동 아파트와 청담동 연립주택 등 강남구와 서초구에 집중돼 있었다. 이날 최고가 낙찰 물건은 도곡동 ‘대림 아크로빌(전용면적 172㎡)’. 지난 2006년엔 실거래가 18억원을 찍었고 최초감정가도 16억원에 달했던 강남 1세대 주상복합아파트다. 하지만 두 번이나 유찰됐다가 결국 이날 11억6400만원을 써낸 이영득(가명ㆍ경기 광명시 거주) 씨에게 돌아갔다. 반포의 30평대 아파트 가격으로 도곡동 50평대 주상복합을 샀으니 아무리 부동산 하락기라 해도 괜찮은 결과다. 게다가 광명에서 강남으로의 입성이다. 그가 꾼처럼 보이지 않아서인지 대출업자 20여명이 몰려와 “축하한다”며 명함을 건넨다. 그의 자리엔 금세 전단지와 명함이 수북이 쌓였다.
경매장을 방앗간처럼 찾는 현숙자(가명ㆍ서울 잠실 거주) 씨. 할머니란 호칭이 어울릴 법한 그는 꾼에서 실수요자로 변한 경우다. 5년 전 공인중개사인 고향 후배를 따라 법정을 찾았다가 한때는 집을 일곱 채까지 보유한 ‘베테랑’이 됐다.
“3년 전만 해도 복도까지 사람들이 꽉 들어찼지. ‘묻지마’ 투자도 많았고. 지금은 그런 사람 거의 없어. 싼 가격에 강남에 입성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야.” 실제로 그 역시 피자집을 차리려는 딸에게 구해줄 상가를 물색 중이다.
한눈에도 앳돼 보이는 외모에 카고 바지를 입은 20~30대 청년 정모 씨는 어머니와 함께 왔다. 그는 “결혼을 대비해 괜찮은 아파트를 찾는 중”이라면서 “경매 물건을 살펴보자는 어머니의 권유로 하루 월차를 내고 왔다”고 말했다. 이날은 시쳇말로‘간’을 보러 온 셈이다. 급할 것도 없다. 하지만 경매를 통해 싸게 강남 집을 사겠다는 맘은 그대로다.
“괜찮은 아파트다 싶으면 물건 하나에 30~40명이 몰려드는데, 결혼하는 자녀에게 집을 사주려는 분이 많다.” 낙찰자들에게 자금을 빌려주는 대출업자 유모 씨의 말이다. 그는 “집값이 많이 떨어졌다고들 하니까 경매를 전혀 모르던 사람들도 관심을 갖는다”고 경매시장 분위기를 전한다.
이 때문에 중소형대 강남 아파트는 부동산 불경기에도 인기다. 법원 경매정보업체 굿옥션의 안원국 소장은 “경매시장이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되면서 20~30평대 소형 평수가 인기다. 예전 같으면 낙찰가율이 64% 정도였던 소형주택이 75%, 80%까지 올라갔다”며 “주택임대차보호법 등 관련법이 간편해지면서 예전보다 일반인들의 참여가 쉬워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직접 경매에 뛰어들기 전 ‘공부’를 위해 경매장을 찾는 사람도 많다. 이들은 대개 삼삼오오 모여앉는다. 낙찰이 발표되면 꾼들은 전혀 관심 없어 하는 물건도 이들은 가격을 받아적느라 부산하다. 그리곤 토론을 벌인다. “괜찮은 가격이냐?” “요즘 시세가 어떻게 되냐?” 동기가 같으니 궁금한 것도 같다.
정오를 넘겨 경매가 끝나자 참가자들은 곧바로 흩어진다. 경매정보업체 사람 몇몇만이 결과를 스마트폰으로 블로그에 바로 올리느라 손길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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