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 붉은 길, 푸르른 마음 (24)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재벌 2세와 권도일이 두 명의 정보요원을 따라 들어선 곳은 시내 중심가에 있는 6성급 호텔이었다. 낯설고 어색하게 여겨지던 검은색 승용차와 검은 정장차림의 정보요원들 모습은 이상하게도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평이하게 여겨졌다. 일류 호텔에서 풍겨오는 이국적이고 위압적인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북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째서 우릴 호텔로…”

“쉿!”

정보요원들은 대답 대신 손가락을 세워 입술을 막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실내에 들어서면 선글라스처럼 짙은 색으로 변하는 안경 뒤편으로는 섬뜩한 눈빛이 스며나오는 것 같았다.

“아! 미안합니다.”

재벌 2세가 손을 휘휘 가로 저으며 사과했다. 무엇이 미안한지, 어째서 목소리를 죽여야 하는지… 분명한 논리나 확신도 없이 그저 엄숙한 분위기에 빠져드는 것이 어쩌면 불안하기도 했다.

“부탁드립니다. 넥타이 잘 여며주세요.”

드디어 정보요원 중의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승용차를 타고 오는 동안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던 그는 여전히 주변을 두루 살펴가며 부탁했다. 하지만 태도로 보아서는 협박과도 다름없었다.

“넥타이를 여미라고요?”

“곧 만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굴 말이오?”

“안에 위원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정보요원은 재빠른 걸음으로 좁은 통로에 들어서며 대답했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니 호텔 로비를 가로질러 리셉션데스크 뒤편으로 이어진 좁은 통로를 따라 걷는 중이었다. 그들의 걸음이 유난히 빨랐으므로 그 뒤를 따라 걷는 재벌 2세와 권도일은 거의 종종걸음을 치다시피 했다.

“아! 말로만 듣던 안가가 이런 곳에 있었나요?”

“임시 접견장소일 뿐입니다.”

“오히려 외진 곳보다 낫군요. 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있을 때 오히려 비밀이 유지될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재벌 2세가 권도일의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평상시에 노출을 꺼리는 재벌 후계자의 처지로서 방 안에 있을 위원장의 마음에 동조한다는 뜻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호텔 스텝전용으로 사용되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 안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겉으로 보아서는 마치 집기, 비품 등을 보관하는 방인 것처럼 허술했지만 막상 그 내부는 막강한 회사 기획실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만나 뵈어서 반갑습니다.”

그 안에 또 다른 문이 있었고… 그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침내 위원장의 환한 미소를 마주할 수 있었다.

“여… 영광입니다. 위원장 님.”

재벌 2세는 잠시 말을 더듬었다. 잠시 전까지만 해도 곧 북한으로 가는 줄 알고 있던 참이라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아무런 사전 예고도 없이 대선 주자를 직접 마주하게 되니 무어라고 인사를 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물론 당황스럽기는 권도일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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