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인형 푸리프(Pullip : les poupees ambigues)
예전에 사람들은 여성들에게 더 이상 오브제가 되지 말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오늘날의 여성들은 인형에 몰두하면서 란제리 코너에 그것들을 진열하거나, 인형의 다양한 포즈를 즐기고 있다. 자신들의 매력적인 분신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패션의 최근 경향을 뒤쫓는 ‘카와이코파리(Kawaikoparis)’의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순진무구하고도 발랄한 얼굴을 한 한 아름다운 금발 인형이 허리에 손을 얹고 벌거벗은 몸을 한 채 유혹하는 듯한 태도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 망사와 고무밴드를 걸치고, 검은 레이스가 달린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있으며, 높은 굽이 달린 부츠를 심은 이 인형은 유명한 속옷 광고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킬 것’ ‘지혜롭되, 지나치지는 말 것’ ‘감정을 통해 그를 붙잡을 것’ 등 유혹의 수칙에 충실하고 있다. 밑에서부터 올려다보는 시선을 어깨 너머로 던지는 인형은 더없이 매혹적이다. 마치 미스 뱀프로 탈바꿈한 바비인형 느낌이다.
높이가 30㎝에 달하는 푸리프는 디자이너 군단인 천상천하의 작품이다. 매달 하나씩 모델이 출시되기 때문에 2003년부터 일본 회사 준 플레이닝이 제작을 떠맡고 있다. 옛 모델이 다시 출시되는 법은 없다. 그 때문에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곤 한다. 한정판으로 출시된 인형 가격은 450유로 혹은 그 이상까지 올라간다. 현재 통용되는 모델들은 약 90유로 정도이며,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고 있다.
이들이 성공을 거둔 이유는 무엇일까? 커다란 눈을 하고 마치 살아있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절을 가진 푸리프는 머리 뒤에 달린 3개의 작은 버튼을 이용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쳐다볼’ 수 있고, 눈을 감을 수도 있다. 또 취향에 따라 사람들이 그것을 개조할 수 있다.
푸리프의 주인들은 인형의 머리모양, 화장, 의상을 바꾸며 개성을 부여하며 유일한 것으로 만든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푸리프는 어린이들을 위한 인형이 아니며 15세 미만의 소년소녀들에게 권장되지 않는다.
많은 소녀들이 오직 자신의 인형을 위한 사이트를 만들고, 인형에 옷을 입히고 화장시키며, 배경 속에 넣은 후 사진을 찍을 정도로 푸리프 신드롬은 막강하다. 매주 소녀들은 인터넷에 새 사진들을 올린다. 많은 이들에게 푸리프는 예술적 감각을 계발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일본의 한 저널리스트는 푸리프 현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은 푸리프를 취향에 따라 개조하고, 의상을 바꾸며, 사진을 찍어요. 인형은 ‘단순한 플라스틱 덩어리’에서 ‘살아있는 존재’로 위상을 바꾸었습니다. 포토스토리를 읽어보면 시간이 흐르며 그들 모습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연출이지요. 때로는 한 가족의 여러 구성원이 푸리프 인형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진을 공유하기 위해 같은 포럼에 참석하기도 합니다.” 포토스토리란 푸리프의 사진에 인형의 발언을 덧붙여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해낼 수 있는 거대한 동공을 가진 푸리프 인형들은 소유주로 하여금 자신과 인형을 동일시 하고픈 강렬한 감정을 갖게 한다. 인형 주인은 열정과 꿈을 표현하고 사랑을 체험하기 위해 인형을 동원한다. 인형들이 모든 욕망의 배출구로 사용되는 것이다.
때로는 어수룩하고 때로는 반항적인 그 욕망들은 종종 순응적인 모습을, 가끔은 일탈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늘 떨리는 마법으로 둘러싸여 있다.
여자 인형들의 왕국에는 불안한 구석이 있다. 비록 그 모습이 페미니스트적인 주장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관절을 지닌 이 인형들은 거대한 가슴을 가진 동양 자기인형과 전혀 무관하다. 더없이 귀여운 측면에서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지만, 순응적인 차원에서는 아니라는 얘기다. ‘팬시’하고 분홍빛이며, 달콤하고도 동화적인 함정에 걸려들어서는 안 된다.
눈부시게 커다란 눈을 보유한 푸리프 인형들이 신비스러움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아시아 여성들의 이미지를 본 따 만든 이 인형들은 남자들 세계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다. 그녀들은 남성의 세계를 모방하고, 교란하며, 착란적인 상태까지 그 세계를 패러디한다.
일본 여성들은 늘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 순박한 여성들 모습을 과도하게 연기하면서 그녀들은 남자들의 성적 환상을 빈정대며 우롱하는 것이다.
말이 없다고? 고분고분하다고? 이는 잘못된 착각이다. “남자들의 담론이 무책임한 이미지를 자신들에게 강요할수록 여성들은 자신들의 어릴 적 모습을 더욱 페티시즘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사회학자 알레산드로 고마라스카(Alessandro Gomarasca)는 진단한다.
자신의 저서 ‘인형, 로봇’을 통해 그는 이러한 메커니즘을 유쾌하게 밝혀내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형과 더불어 즐기는 여성들이 꼭 순진무구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친절한 로망-포토를 경계할 것.
아이 같은 여성을 모델로 한 아주 ‘순응주의적’인 그들 이미지를 믿지 말 것. 가장 무뇌충 같은 바비인형보다 훨씬 더‘여성적이고 섹시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페미니즘 형태도 존재한다. 이러한 페미니즘은 틀에 박힌 이미지를 뒤집어보라고 요구한다. 남자들이 ‘아름다운 인형들’을 좋아한다고?
“그래요, 우리 역시 그 인형들을 가지고 놀고 싶답니다.” 도발로 무장한 아기 인형의 스테레오 타입을 개조하면서 청소년 세대는 자신의 세상을 조작하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건드리지 않는 척하는 법을.
푸리프 인형들은 파리에 소재한 카와이코 부티크에서 시판 중이다. 이 가게는 푸리프를 치장하는 요령을 가르치는 강좌와 콩쿠르도 열고 있다.
글=아녜스 지아르(佛칼럼니스트), 번역=이상빈(문학박사ㆍ불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