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3회> 바람 부는 길 1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치타 쇼’를 통해 당당히 3위 입상이란 쾌거를 이룬 거성그룹의 재벌2세는 칼을 빼든 김에 끝장을 보고자 했다. 애초에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할 것이라는 성경말씀에 따르자는 것인지, ‘못 먹어도 고’로 통하는 조선 남자의 본때를 보이고자 하는 것인지….
“이 흥분이 사라지기 전에 ‘치타 쇼’ 속편을 전 세계 사람에게 보여줍시다. 이 기회에 우리 거성그룹의 화끈한 면모를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눈이 녹기 전에 눈밭과 얼음판에서도 펄펄 나는 치타의 모습을 보여주자고요.”
“무슨 말씀이신가요? 이제 겨울랠리는 더 이상 없습니다.”
“랠리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스키장 슬로프를 활강해서 내려온 후에 아이스링크를 연이어 달리도록 하는 겁니다.”
“김연아 선수를 불러오자는 말씀이신가요?”
“이번 랠리에서 당당히 3등을 차지한 1974년 산 치타로 달리자는 겁니다. 특히 우승팀, 준우승팀과 맞장 좀 뜨자는 거지요.”
“네? 치타로? 그 낡은 자동차로 얼음판을 뱅뱅 돌게 하자고요? 김연아처럼? 뿐만 아니라 그 자동차를 타고 스키장 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리 꽂으라고요?”
상관에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보는 것은 ‘너 미쳤니?’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거성그룹 재벌2세의 정신은 말짱했다.
“이번 몬테카를로 랠리에 참가했던 모든 팀의 드라이버를 직접 만나 구두로 초청하세요. 이 겨울이 가기 전에, 스키장에 쌓인 눈이 녹기 전에, 아니 지금 당장 얼음장에서 한판 붙어보자고 말입니다. 우승팀 상금은 3000만달러, 추가로 드라이버에게 10년간 연금도 지급한다고 말입니다.”
재벌 2세의 명령은 즉각 시행되었다. 공식적인 절차를 통하거나 관행에 따른 행사가 아니라 무작정 저지르고 보는 ‘게릴라식 레이싱대회’와 다름없었으므로 직접 만나 합의를 보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를테면 선수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자는 전략이었다. 전략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일까. 각국의 드라이버는 몬테카를로 랠리의 뒤풀이로 이어지는 깜짝 쇼에 참가하는 정도로 가볍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렇게 큰 대회를 어떻게 치르시렵니까?”
“준비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무 스키장이나 슬로프 한 면만 전세내고요. 그 슬로프의 하단부터 바닥에 이르는 만큼을 모두 얼음으로 얼려버리면 됩니다. 우리가 치중해야 할 것은 오히려 언론플레이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세계의 유명한 레이싱 드라이버가 차를 몰고 스키장에서 곤두박질쳐 내려오는 모습을…. 더구나 하단부터는 눈밭이 아니라 얼음판이란 말입니다. 그 모습에 열광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이번 전략 역시 큰놈을 얻기 위한 은밀한 마케팅의 일환일 뿐입니다. 지난 몬테카를로 랠리도 그렇고, 앞으로 열릴 5대륙 관통 랠리도 그렇고 우리 거성에서는 입상할 욕심도 없고 실력도 없습니다. 독자적인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1974년산 치타를 부각시켜서 크리스 뱅글이란 디자이너를 감동시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번에도 1974년산 치타를 내보낼 계획입니까? 얼음판에서 이탈, 충돌해서 산산이 부서지거나 드라이버가 다치면 어쩌시려고요.”
“우리 드라이버…권도일 전무가 다치면 안되지요. 그는 몇 달 후 5대륙 관통 랠리에 출전할 사람입니다. 우린 5대륙 랠리에 사운을 걸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 게릴라식 얼음판 대회에는 다른 선수를 대타로 집어넣어야 합니다.”
“누구를 염두에 두고 계십니까?”
“라이벌 호크아이팀의 전진후 선수를 염두에 두고 있지요. 그 작자야말로 단순무식하기 때문에 술과 돈, 여자로 유혹하면 능히 팀을 바꿀 사람입니다.”
재벌 2세는 이미 머릿속에 명확한 전략전술을 새겨넣고 있었다. 게릴라식 레이싱대회를 추진해 언론의 관심을 고조시키면서도 라이벌의 전력은 마비시키자는 2중 전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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