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상징이 된 음경(Des verges porte-bonheur)
그의 이름은 윌리(Willy)다. ‘윌리’는 미국식 속어로 ‘음경(Pennis)’이란 뜻이 있다. 예술가는 윌리라는 이름을 통해 ‘남근’을 상징하는 작품을 만든다. 그림, 방명록, 성냥갑을 비롯한 도처에 자신의 의기양양한 ‘자국’을 남기는 것이다.
본명이 기욤 뒤퓌(Guillaume Dupuis)인 그는 1998년부터 캐나다에 정착한 프랑스인으로 무정부주의를 고집하는 화가다. 마약중독자, 권투선수, 여장 남자, 결혼과 이혼, 스타들의 분장사를 차례로 거쳤다. 그는 요즘 매춘부보호협회를 후원하기 위해 작품들을 판매하면서 편의주의와 관련된 모든 상황을 공격하는 중이다.
최근 윌리는 고급 종이에 음경으로 ‘행운의 부적’을 찍어내는 일을 벌이고 있다.
“현재까지 50여개의 작품을 만들었어요. 일종의 단쇄 판화죠. 유리나 금속판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단 한 장의 종이 위에 찍어내는 방식으로 만듭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 달라고 특별주문을 하기도 합니다. 만드는 법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잉크로 족하지요. 잉크는 쉽게 씻어낼 수 있고, 솔을 이용해 털어낼 필요가 없어요. 유일한 문제가 있다면 ‘자국’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일정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점이지요. 아주 세게 눌러야 하니까요.”
우편엽서에 단쇄 판화로 찍은 그의 작품은 가격이 1000달러나 나간다. 보다 싼 가격으로 작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윌리는 ‘자국’을 사진으로 축소해 만든 성냥갑을 몬트리올 현대미술박물관에서 팔고 있다. 그는 교회의 촛대(cierge)에 비교해 자신의 작품을 ‘행운의 부적 음경(verge)’이라 부른다.
“다 말장난입니다. 당신들은 교회에서 소원을 빌면서 촛대에 불을 붙이지 않나요? 내게는 나만의 행운의 부적이 있습니다. 처음 전시했을 때 이 작품들은 ‘나는 가톨릭을 저버렸습니다’는 문구가 있는, 검은 네모로 입을 가린 요한바오로 2세 초상화 아래 배치됐습니다.
그러나 전시회는 대단한 성공을 거뒀습니다. 25개 프린트 중 17개가 팔렸으니까요. 그 작품들이 익명의 손님들에게 팔렸다는 사실은 내게 아주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윌리가 가톨릭을 등진 것은 요한바오로 2세가 프랑스를 방문했던 1997년이다. 당시 그는 ‘현재를 살다’라는 정치단체의 일원이었다. 그 단체는 시민들에게 국가와 교회 간의 동맹 문제를 환기시키기 위해 ‘가톨릭 떠나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1997년 교황이 프랑스를 방문하면서 납세자들이 낸 수백만 프랑을 낭비했다는 게 이유였다.
윌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나는 교회의 보수주의적 프로그램들을 아주 싫어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곳 퀘벡에서의 욕설은 성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종교와 관련된 것이 많아요. 퀘벡 주민들은 1960년대부터 성당을 기피하기 시작했고, 아직도 신성모독에 대한 취미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윌리의 작업도 신성모독에 대한 취미라는 것이다.
그가 이런 방식의 작업을 시도한 첫 번째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상관없다. 윌리의‘작품’은 우리들의 지문처럼 유일무이하다. 그는 이미 수년 전부터 자신이 방문하는 모든 장소에 ‘윌리가 다녀가셨음!’을 의미하는 잉크 자국을 남기면서 영역을 표시하고 있는 중이다.
“다른 예술가들의 오프닝 행사에 참석할 때면 나는 방명록에 음경 자국을 남긴 후 윌리라고 서명을 하는 기쁨을 누립니다. 나보다 훨씬 이전에 살바도르 달리가 갈라의 항문 자국을 찍어냈지만, 내 기술과는 다르게 형판으로 눌러 무늬를 만드는 기술을 동원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윌리는 노출증 환자일까? 윌리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천만에요. 나는 정치적인 성, 성 정치를 즐겨 다루는 예술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에로티시즘을 정치적인 그 무엇으로 간주한다는 얘깁니다. 한 평범한 파티에 참석한 여성의 겨드랑이에 털이 보일 경우 그 모습이 도덕적 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정치적입니다.
나는 겨드랑이 밑의 털을 좋아합니다. 포르노그라피와 에로티시즘 사이의 장벽은 주관적인 것입니다. 내가 북미 지역에 도착한 후, 쿠르베의 그림 ‘세상의 기원’이 에로틱한 성격의 전시회를 포함해 두 번이나 검열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여자의 성기가 너무 중요했던 거지요. 나는 털을 지워버린 후 그림 이름을 ‘웰컴!’으로 바꿔버렸습니다. 나는 현재 음모를 영구적으로 제거하고, 음순을 수술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중년 여성들이 16세 때의 청춘을 되찾기 위해 성형외과를 찾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스캔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경우가 많지요. 모두 문화, 사회 및 개인적 도덕과 관련된 문제들입니다. 행운의 부적 음경은 많은 사람에게 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그 작품들은 우리 주변의 편의주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온도계로 쓰입니다.”
<윌리에게 던진 질문>-음경 자국을 만드는 작업은 지상에 흔적을 남기는 당신만의 방식입니까? ▶위대한 흔적을 남긴 가수 레오 페레는 “명증성이 내 바지 속에 들어 있다”고 노래했죠. 나 역시 작은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음경 자국은 예술인가요? ▶예술의 대중화라고 할 수 있죠. 나는 모든 사람의 손이 닿는 데에 예술을 두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성냥갑은 왜 만들었나요? 욕망과 창조의 불꽃을 암시하기 위한 것인가요? ▶내 작품을 마케팅하고 매스미디어에 알리는 데 아주 좋은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이미지는 윌리가 음경을 고급종이에 찍어낸 작품과 상품들) 글=아녜스 지아르(佛칼럼니스트),번역=이상빈(문학박사ㆍ불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