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이 살포대상명단으로 의심되는 리스트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사실로 드러날 경우 수사는 급진전해 단숨에 5부 능선을 돌파한다. 자금의 출처와 윗선 수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수 있다. 이 명단에 오른 이들도 자동적으로 검찰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메가톤급 파장이 예고된다. 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는 원내외 인사에게는 총선 출마에 위협을 받는 살생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안씨문건 돈살포명단? 진실게임=검찰은 이날 확보한 명단에는 서울과 부산지역 38곳 당협의 현역 의원들과 원외 당협위원장들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이를 돈을 뿌리기 위해 작성한 대상목록일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안씨 측은 해당 리스트가 금품 살포 대상명단이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안씨 측은 12일 밤11시 무렵 검찰 조사를 받고 귀가한 안씨는 “구의원들에게 나눠준 문건은 서울지역 당협위원장의 후보 지지성향을 표시한 것”이라며 “이를 돈 봉투 살포 리스트라고 주장하는 것은 특정 세력의 사주를 받아 나를 음해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검찰과 안씨 간의 진실게임 양상이 펼쳐지게 됐다. 안씨의 주장을 뒤집을 수 있는 추가 정황과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 문건 ‘캠프 회의 참석’이라는 항목에 안 위원장, 고승덕 의원을 비롯해 안모, 정모 의원 등 18명의 이름에 표시가 돼 있어 검찰은 이들이 돈 살포 대상이 아니었는지 살펴보고 있다.

이 문건은 안씨에게 돈을 건네받은 구의원 4명이 소환조사를 받으며 검찰에 제출한 것이다. 안 씨가 당시 서울 여의도 소재 박 후보 캠프 사무실 아래층 방에서 이들에게 2000만원을 전달하며 명단까지 함께 전달했고, 이들은 이후 돈은 되돌려줬으나 문건은 보관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공씨 300만원, 안씨 2000만원 한주머니?=검찰은 돈봉투 살포에 투입된 자금의 출처를 캐기 위해 거센 액션에 들어갔다. 돈봉투 살포가 고씨, 안씨 등이 독자적으로 기획한 게 아니라 윗선급 수명의 공모 등 박 캠프 내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진 정황이 확실시 되는 만큼 돈줄 역시 한두 계통에서 거액을 받아 마련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고씨가 고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300만원은 교통비와 식비 등 실비, 안씨가 구의원들에게 전달한 2000만원은 격려금 차원이란 성격이지만 둘다 박 후보 선거운동에 사용된 돈인 것은 분명하다. 하나의 큰 목표를 두고 뿌려진 점에서 출처도 같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검찰이 이날 국회 사무처 기획조정실을 압수수색해 고씨의 최근 4년간 이메일 내역을 확보하고, 캠프 안팎의 계좌 중 전대 전후로 거액 자금이 수시로 입출금된 계좌를 발견해 추적중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메일 계정 분석으로 편지를 주고 받은 사람과 그 내용을 확보하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고씨가 300만원을 고 의원 측에 전달한 혐의를 굳힐 추가물증을 확보하고 그에게 지시를 내린 윗선을 가려낼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해 자금 확보처를 밑단부터 탄탄히 추적할 수 있다.

계좌 추적에서도 검찰은 최근 박 의장 캠프 재정담당자 등의 계좌들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전당대회를 전후해 이들 계좌와 연결돼 있는 계좌들 가운데 일부에서 거액의 자금이 수시로 입출금됐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캠프 사무실 바로 옆에 A은행 서여의도지점이 있는 점도 주목하고 있다. 고 의원이 자신에게 전달된 3개의 100만원 다발이 ‘A은행’ 띠지로 묶여 있었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에 연관성이 엿보인다.

정치권에선 자금 출처로 박 후보를 밀고 있던 친이계 중진들이 십시일반식으로 몰아준 것이거나 대선 후 남은 자금이 들어온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이에 대한 면밀한 추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무선 사법처리 수순, 윗선 소환 임박=검찰은 안씨와 고씨에 대해 금명간 사전구속영장 등 사법처리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들의 혐의를 뒷받침할 물증이 이미 확보된 상태라는 판단이다. 돈봉투 배달을 실행한 실무자들의 사법조치가 이뤄지면 이들에게 돈을 뿌리도록 지시했거나 모의에 가담한 윗선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뒤따르는 것이 순서다.

윗선으로는 당시 박 캠프에서 함께 일했던 조정만(51)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과 김효재(60)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등이 지목되고 있다. 검찰은 하위 실무자들의 혐의가 짙어진 만큼 이들의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이르면 내주 초 이들을 소환할 것을 유력히 검토중이다.

조 의장수석은 캠프에서 재정과 조직을 맡아 자금 정황에 대해 자세히 파악하고 지시할 수 있는 인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17대 국회 때 박희태 당시 의원실에서 조 수석은 보좌관, 고 씨는 비서로 일하며 서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앞서 고 의원에 대한 참고인 조사에서 박 후보 캠프에 돈 봉투를 돌려준뒤 고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와 ‘왜 돈을 돌려주느냐’고 물어본 인물이 김 청와대수석이라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조 수석은 이같은 의혹이 불거지자 이틀째 국회에 출근하지 않고 잠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수석은 현재까지도 “고 의원과는 전화로도, 대면으로도 말을 섞어본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조용직 기자/yjc@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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