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수준의 역전

中 첨단산업 위상 높아져

주력업종 기술격차도 축소

양국 해외시장 경쟁 불가피

균형유지가 관건

對中의존도 경제 발목 우려

‘차이나리스크’대비책 절실

지나친 자국우월주의 벗어야

[베이징=박영서 특파원] 한·중 양국이 수교를 맺은 지난 1992년 이후 20년 동안 중국은 천지개벽의 발전을 거듭했다. 마차와 달구지가 다녔던 도로는 넘치는 자동차로 몸살을 앓고 있고 낡은 기차가 달렸던 철로 위로는 고속철이 질주한다. 주요국과 군비 경쟁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제 중국은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으로 불리면서 새로원 패권국가로 급부상했다. 이 같은 중국의 위상 변화에 따라 한·중 간 역학관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거인’이 된 중국과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며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하는가가 큰 과제로 떠올랐다.

▶이제는 중국이 ‘상전’=중국 현지의 한국인 기업가들은 지난 20년 동안 중국의 국력과 경제력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높아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러면서 중국이 많이 달라졌다고 토로한다.

몇년 전만 해도 몇백만 달러를 중국에 투자한다고 하면 성(省)이나 시(市)의 고위급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과장급 공무원이나 구(區) 서기도 면담하기기 쉽지 않다. 그야말로 ‘삼고초려’ 끝에 만남이 성사될 정도다.

외국인 투자유치 정책도 확 바뀌었다. 과거 중국 정부는 업종과 지역을 불문하고 외국 투자를 선호했다. 그러나 이제는 지방의 도시들까지도 외자를 선별적으로 유치한다.

하이테크 고부가, 첨단산업, 신에너지 업종은 환영받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들은 홀대를 받는 시대가 됐다.

이제는 오히려 한국이 중국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형편이 됐다. 한국 정부와 공공기관, 지자체들은 중국 각지에서 발품을 팔면서 ‘차이나 머니’를 끌어모으고 있다.

특히 국내 부동산시장이 침체되면서 중국의 ‘큰 손’을 유치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부지런히 투자설명회를 연다. 제주도를 비롯해 인천 영종지구, 강원도 평창, 해남·영암 지역의 J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이다.

강원도와 강원도개발공사의 경우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활성화를 위해 중국 자본 유치에 총력을 쏟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국영기업으로 국가체육총국이 대주주인 중티찬예(中體産業)그룹 고위 관계자 등이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기도 했다.

중국 현지 한국기업들의 사업환경도 갈수록 열악해지는 상황이다. 칭다오(靑島), 옌타이(煙臺), 다롄(大連) 등 동남부 해안도시에 자리잡은 한국의 중소기업들은 공장 이전 요구에 고민 중이다. 주민들의 민원과 도시개발계획, 중국 정부의 산업구조정책으로 인해 더 외곽으로 쫓겨나든지, 아니면 아예 중서부 내륙지역으로 이전을 강력하게 요구받고 있다.

김상철 코트라 베이징무역관장은 “수교 초기에 중국은 ‘어서 오시오’식 정책으로 업종과 지역을 불문하고 외국 투자를 선호했지만 이제는 ‘줄을 서시오’식 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유했다.

여기에 외자기업에 대한 각종 세제혜택 철폐, 임금상승, 5대보험 의무화, 설상가상으로 ‘인공황(人工荒)’까지 겹치면서 경영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지 한국 기업들은 “준조세가 급증한다”며 크게 우려하는 분위기다.

대한상의 베이징사무소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이 설 땅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지만 중국을 대신할 적당한 투자처가 아직까지는 뚜렷하게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역전되는 교역관계=수교 이후 20년이 흐르는 동안 양국 간 교역관계에도 질적인 변화가 생기고 있다. 중국이 무섭게 성장하면서 판도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중국 기업의 기술력 진보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왕성한 투자를 통해 정보기술(IT) 수준은 일부 분야에서 이미 세계 최고에 다다랐고 통신장비와 디지털 TV는 선진국에 근접한 기술 수준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한국의 기존 주력산업인 전자, 자동차도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제약, 태양광, 전기자동차 등 신산업 분야에선 중국의 기술 수준이 이미 한국을 추월했다.

이 같은 기술의 고도화는 해외시장에서 한국과 중국 제품 간 시장경쟁을 치열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이 추진하는 신에너지, 전기자동차 등 신성장 산업과 중국의 성장동력 산업이 상당 부분 중복돼 이제 미래산업을 놓고서도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구도가 짜여지고 있다.

게다가 한국의 대(對)중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져 우려감은 커지고 있다. 중국이 긴축정책을 쓰면 한국은 ‘차이나 쇼크’를 받을 수 있다. 중국 경제의 부침이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한ㆍ중 FTA가 체결되면 긍정적 효과도 크지만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일부 전문가는 예상한다. 차이나 리스크가 덩달아 확대되는 점이 걱정스럽다는 지적이다.

▶꼬이는 한·중 정서=중국의 경제력이 눈부시게 성장하고 중국내 국수주의가 확산되면서 중국인들이 한국인을 보는 시선에도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수교 초기 중국인들은 한국이 ‘배울 게 많은 나라’라며 부러움의 시선으로 쳐다봤다. 그러다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많은 중국인들이 한국이 중국과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제는 한국인들이 중국을 낙후된 나라로 오해하고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중국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일부 중국인은 한국이 미국과 손잡고 중국을 고립시키려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중국 포털사이트의 부정적인 댓글들이 중국인들로 하여금 반한감정을 유발시키고 있다. 한국과 관련된 댓글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한국인을 비하하는 단어인 ‘가오리봉쯔(高麗棒子)’다.

한국 역시 지난 2002년 우리의 고대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계기로 반중 감정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2010년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중국의 북한 편들기가 노골화되고 중국 선장의 한국 해경 살인사건까지 터지면서 한국인의 반중 감정은 더욱 악화되는 분위기다.

지난 25년 동안 중국 현지에서 중국의 변화상을 체험해온 박근태 한국상회 회장(CJ 중국본사 대표)은 “과거 가난하던 시절의 사고방식으로 중국을 대해서는 안된다”면서 “가깝고도 먼 나라가 되지 않기 위해 모두가 상대에 대한 색안경을 벗고 자국 우월주의를 극복하는 객관적인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pys@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