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럽 투자자들 싱가포르·영국 등 새투자처 적극 물색
스위스 안전금고는 북적…앞다퉈 해외부동산·金 매입
EU 재정연대 결속력 약화…주변국 국채도 대거 매각
‘뭉쳐도 시원찮을 판에,자산 비행이라니….’
그리스ㆍ이탈리아 등 남유럽 투자자들의 자산이 새 투자처를 찾아 ‘유로존 엑소더스’ 행렬을 이루고 있다. 자국 은행들의 자산 건전성에 대한 의문에 더해 유로화의 앞날을 암울하게 봐서다.
이른바 ‘자산 비행(Assets Flight)’이다. 목적지는 영국 런던,싱가포르,바하마 등으로 다양하다. 이들 지역에 부동산을 구입하거나, 해당 국가의 사법권 아래에서 자산 신탁을 통해 재산 보존에 나서는 것. 스위스 은행의 경우 이들 국가에서의 자금 러시로 ‘안전금고’가 동이 났을 정도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재정연대도 더없이 헐거워졌다. 유로존 재정위기가 심화되면서, 역내 주요국 은행들이 주변국 국채를 보유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감소했다.
▶남유럽 투자자들 새 투자처 모색=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일 남유럽 국가의 은행가와 공무원들의 말을 종합해 ‘유럽 자산이 비행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유럽연합(EU) 정상들이 지난 9일 신(新)재정협약에 합의했지만, 유로존 붕괴에 대한 시장의 긴장은 누그러지지 않은 것이다.
그리스 투자자들의 자금 인출이 심각하다. 2009년 이후 현금으로 600억유로를 자국 내 은행에서 빼냈다. 올해 9월~11월 초만 따져도 140억유로나 된다. 그리스중앙은행에 따르면 올 1~9월 사이 인출된 예금의 5분의 1은 해외로 나간 것으로 추산된다. 그리스를 탈출한 돈은 영국 부동산에 상륙한 것으로 WSJ은 봤다. 이 신문은 영국의 유력 부동산업체 관계자의 말을 빌려 “그리스인들이 영국 중심부에 있는 레지던스를 구입한 비율이 지난해 3배가량 늘었다”고 전했다. 그리스 외에 이탈리아 등 유로존 자산가들도 영국 부동산 투자에 몰려든 결과, 영국 레지던스의 가격은 올해 9%가량 상승했다.
이탈리아의 안드레아 신골리 방카 에스페리아 대표는 “화이트칼라와 사업가들이 이탈리아 은행 시스템의 위기를 감지하고 해외에서 옵션을 찾고 있다”고 진단했다.
해외 부동산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투자자들은 유로화를 스위스프랑으로 앞다퉈 바꾸고 있다. 스위스프랑은 유로존 위기의 피난처로 인식되면서 올해 크게 올랐다. 이탈리안 머니는 최근 몇 달간 꾸준히 스위스로 유입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스위스의 ‘안전금고’는 매진됐으며, 일부는 금괴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싱가포르나 바하마 등에 자산을 신탁하는 등 좀 더 급진적인 방법을 찾는 투자자도 있다. 이탈리아의 파올라 가에타 변호사는 “고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했다.
▶헐거워진 유럽연대… 주요국 은행 주변국 국채 외면=WSJ은 유로존 내 재정연대의 결속력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0년 동안 유로존은 단일통화동맹으로 각국 재정 시스템이 얽혀 있어, 역내 선진국들은 평가절하 우려가 없는 각국 국채를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역내 선진 자본들이 자국 내에만 머물면서, 재정구조가 취약한 주변국의 국채 보유를 꺼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WSJ은 그리스 재정위기를 계기로 유럽 재정통합 과정을 전복시킬 정도로 채무위기 우려가 퍼졌다고 설명했다. 재정위기가 악화되자, 북유럽 은행과 보험회사, 펀드회사 등은 그들의 자본을 보호하기 위해 주변국 국채를 대거 매각해 자금을 회수했다. 대다수 투자자들은 독일과 같은 안전한 시장을 택하거나 차라리 집에 그냥 두는 쪽을 선호한다.
한 대형투자사 경영진은 WSJ에 “유로존 내에서 반유럽화, 반지구화를 목격했다”면서 “투자자들은 자국 시장으로 돌아갔고, 여전히 자본을 틀어쥔 채 예전처럼 유로존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WSJ은 유로존 내 채무위기에 시달리는 나라에서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선진국의 대형자본들이 이른 시일 내 유로존의 국채시장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ING은행의 이코노미스트 카르스텐 브르제스키도 “정치권이 재정위기 해법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안전한 자국에 돈이 머무는 경향은 지속될 것”이라며 ”투자자들이 학습효과를 쉽게 잊어버릴 리 없다”고 말했다.
홍성원ㆍ권도경 기자/kong@herald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