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명이 죽어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1347년 프랑스 북부도시 칼레.영국과 프랑스간 백년전쟁기간중 칼레 시민들은 영국에 맞서 1년동안 결사항전을 해지만 결국 함락당한다. 승리한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자비를 구하는 항복사절단에게 명령을 한다.“자비를 베풀겠다. 그러나 칼레시민중 지체 높은 사람 여섯만은 예외다.”광장에 모여있던 시민들은 공포와 안도가 교차한다. 6명을 뺀 나머지는 목숨을 건졌지만 누가 6명으로 나설 것이란 딜레마가 광장을 짓누른다. 가장 먼저 일어선 사람은 가장 부유했던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였다.이후 고위관료, 상인 등 5명이 뒤를 따른다.다음날 6명은 영국 왕의 요구대로 맨발에 목에 밧줄을 건 채 광장으로 나온다. 임신한 왕비의 간청을 들은 영국 왕은 용감한 이들을 사면한다.

목숨을 내놓은 이들은 정말 용기있는 사람들이었을까. 답은 몇백년뒤 로댕이 완성한 ‘칼레의 시민’에 있다. 6명을 형상화한 조형물에서 이들은 머리를 감싸쥐고 비탄과 고뇌에 빠져 있는, ‘영웅’이 아닌 ‘인간’의 모습이다. 그들을 앞장서게 한 것은 사회적 신분에 걸맞는 도덕적인 의무(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였던 것이다.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지고 있다는 신호가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빙하기’를 맞을 것이란 얘기를 성급하다고만 외면할 게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와 달리 국가 자체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위기는 깊고 오래갈 것이란 진단이 늘고 있다. 한쪽에선 복지에 대한 수요도 대응해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시장 지상주의 시대가 종지부를 찍고 반성으로 ‘제3의 길’을 모색하면서 복지, 분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방법은 많지 않다. 덜 먹고 덜쓰는 내핍, 정부가 나서서 재정을 늘리거나, 세금을 더 많이 걷는 수 밖에 없다. 덜먹는 방법은 저성장속 물가상승이란 스태크플레이션 상황에서 쉽지 않다. 지난해 부터 각국 정부가 인플레와 전쟁에 나서고 있지만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고 있다. 밀턴 프리드먼의 말대로 “입법과정을 거치지 않고 부과할 수 있는 유일한 세금”인 물가상승은 안 그래도 어려운 중산층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 재정을 늘리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은 그리스 등 유럽국가의 위기가 상징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증세에 대한 거부감도 간단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어려울 때 ‘우리(부자)와 같이 혜택을 받아온 계층이 국가에 기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세금을 더 내겠다고 간청하는 서구 부자들의 ‘경제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의미가 깊다. 워렌 버핏, 로레알그룹의 상속녀 베탕쿠르 등의 ‘자발적인 증세’주장은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이 희박한 우리에게 낯설다. 부자들의 자발적인 증세 주장에 뒤에 깔린 정치적인 배경에 의심의 눈초리가 적지 않다. 재정적자가 천문학적인 상황에서 근본적인 대안이냐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 먼저 손을 들고 일어났다는 점엔 다른 말이 있을 수 없다.

우리나라 부자들도 보이지 않은 선행, 기부등이 늘고 있다.그러나 ‘나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으라’란 주장에는 못미친다.

나라가 어려워지고 있다. 누가 칼레의 6명의 시민이 될 것인가.

전창협/글로벌증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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