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사정 볼 것 없다 (17)
채 희 문
오토싸롱… 전 세계인이 몰려들었던 모터쇼가 성황리에 끝났으니 1974년 산 치타의 1차 임무는 완수한 셈이었다. 1차 임무가 선을 보이는 것이라면 두 번째 임무는 본때를 보이는 것이겠지.
“이제 치타를 저에게 내주십시오. 치타와 혼연일체를 이룰 수 있도록 당장 맹훈련에 돌입하겠습니다.” 권도일은 거성자동차 회장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쥔 채 레이싱 우승을 향한 굳은 의지를 내보였다. 이제 1974년 산 치타의 시동 키를 넘겨받는 순간부터 본인 자신의 목숨은 저당 잡힌 것과 다름없었다. 죽느냐, 사느냐… 그 해답은 오로지 하늘만 알 뿐이었다.
“좋습니다. 가져가세요. 그동안 완벽하게 튜닝을 해놓았으니 안심하시고요. 당장 로키산맥을 달리는 ‘파이크스 피크 인터내셔날 힐 클라임’ 대회에 출전해도 방방 날아다닐 수 있도록 개조해 놓았습니다.”
“제가 부탁드린 대로 현성애 양의 감독 하에 튜닝이 이루어졌습니까?”
“물론이지요. 역시 현성애 양은 튜닝의 지존이더군요. 그 모든 기술을 권 전무님의 부친께 전수받았다고요? 정말 부친께선 대단한 실력자였던 모양입니다.”
거성자동차 회장은 굳은 악수를 청하는 것으로 1974년 산 치타의 인수인계 절차를 마무리 지었다. 의외였다. 기자회견이나 출정식 정도를 능히 열어줄 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의 이벤트를 벌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일단 이기고 돌아오라’는 무언의 명령을 내리는 것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파이크스 피크 인터내셔널 힐 클라임 (Pikes Peak International Hill Climb) 대회란, 말 그대로 산악도로를 타고 달리는 자동차 경주를 말한다. 매년 6월 미국 콜로라도주에 걸쳐있는 로키산맥을 따라 19.9km를 달리는 것인데 156개의 아슬아슬한 코너를 통과하는 묘미가 실로 대단하다. 각 코너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짜릿함에 선수건 관객이건 손에 땀을 쥐게 되는 그런 경기를 회장이 직접 거론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현성애 씨? 지금 막 회장님으로부터 치타를 넘겨받았어요. 만날래요? 와서 튜닝 상태를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지 않아도 벌써 거성그룹 지하3층 독립차고에 와 있어요. 치타 등에 올라앉아 있다고요. 빨리 내려오세요.”
권도일은 허겁지겁 지하3층 독립차고로 내려갔다. 독립차고란 거성그룹 회장의 승용차를 세워놓기 위한 별도의 시설이었는데, 회장이 늘 이용하는 승용차 외에도 오프로드를 탈 수 있는 세컨드 카와 VIP 접대용 방탄 승용차가 보관되어 있는 특실이었다.
“보세요, 불에 타고 찌그러졌어도 프레임부터 근본적으로 교체했다고요. 껍데기는 비록 늙은 치타일망정 내장은 V8 6,000cc에 500마력이 넘는 성난 수사자라니까요? 어서 시동부터 걸어보세요. 우렁찬 포효소리를 듣고 싶어.”
현성애는 지하 차고를 가로질러 달려오느라 아직도 숨을 헐떡이는 권도일을 바싹 끌어안으며 이렇게 속삭였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슈퍼 6,000 머신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치타의 문을 열고 들어가 조심스럽게 시동을 걸었다. 어느새 현성애도 조수석에 올라앉아 치타의 내부를 손바닥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자, 보세요. 내부는 레이싱을 위해 완전 개조했다고요. 불필요한 건 다 떼어냈어요. 운전석과 조수석 의자만 달랑 붙어있을 뿐이지요. 손이 닿는 뒤 공간엔 배터리와 소화기, 그 뒤편엔 브레이크와 스티어링으로 연결되는 오일 통, 그 외엔 뼈대만 앙상하게 드러나 있어요. 레버도 손가락이 닿는 범위 내로 옮겨놓았고요. 저 레버는 앞, 뒤 스테빌라이저를 조절하기 위한 레버고요…”
현성애는 매우 흥분해 있었다. 하긴 그녀는 튜닝 전문가이기도 했지만 당장 이 차를 함께 타고 5대륙을 누비게 될 코-드라이버 아니었던가.
“자, 이제 ‘HANS 시스템을 고정시키세요. 그리고 출발합시다.”
그녀는 발갛게 상기된 모습으로 출발을 외쳤다. HANS 시스템이란 목이 부러지지 않게 보호하는 장비였으니… 시운전부터 죽도록 달려보자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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