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7회> 날개에 숨긴 칼 27
두고보자는 놈 치고 무서운 놈 없다지만 현성애는 달랐다. 그녀는 유호성과 김지선이 아담과 이브 흉내를 내며 무인도에서 노니는 꼴을 그대로 두고만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일종의 질투였다. 원래 각본대로라면 유호성도 이미 자기의 육체적 포로가 되어야만 했었다. 아버지 유민과 그 아들 유호성을 한꺼번에 육체적 포로로 삼을 수 있어야 훌륭한 각본이 완성되는 것이므로.
‘이 연놈들이 어디에 있을까?’
그녀는 커다란 바위에 몸을 숨긴 채 미리 준비해 온 쌍안경으로 섬 주위를 두루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섬이라 해도 대번에 그들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혹시 킬킬대는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까? 두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귀에 붙이고 유심히 들어보았지만 바람소리, 파도소리, 간혹 떼지어 날아가는 갈매기 울음소리뿐이었다.
‘혹시 지난 밤, 월야침침 야삼경에 이르도록 상열지사를 벌인 끝에 녹초가 되어 잠든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자 온몸의 땀구멍이 열리고 구혈로 열이 치솟기 시작했다. 구혈이란 눈, 코, 입을 비롯해 엉덩이에 이르기까지 사람 몸에 돋아난 구멍을 이르는 것이니 질투심으로 온 몸에 신열이 들끓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 이 연놈들을 그냥….’
그냥 어쩌자는 것인지. 그녀는 노루를 쫓는 사냥꾼처럼 허리를 반쯤 숙인 채로 숲을 헤매고, 바위를 건너뛰었다. 섬은 보잘 것 없는데 웬 잡목은 이리도 무성한지, 회초리질을 당하는 것처럼 종아리에 척척 감기는 잔 나뭇가지 때문에 무작정 숲길을 헤맬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오빠, 밤새워 달렸더니 허기진다. 우리 뭐 좀 먹을래요?”
바로 지척에서 낭랑한 여인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현성애는 엇, 뜨거워라 하며 바위 뒤에 찰싹 붙은 채로 몸을 숨겼다. 그 와중에도 귀에 쏙 들어와 박히는 그 여인네의 목소리가 새삼스러웠다. 뭐라고? 밤새워 달려?
“그래, 뭐 좀 먹긴 먹어야겠는데…. 동쪽 해변 빈 술통에 음식이며 옷이며 모두 집어넣고 왔지 뭐야. 지금 가진 거라고는 뿌리는 모기약하고 양말밖엔 없어. 여기서 잠깐 쉬었다가 음식을 가지러 가자고.”
“양말?”
“콘돔.”
“아! 양말.”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뭐라고? 뿌리는 모기약하고 양말? 양~말? 현성애는 혀를 끌끌 차면서 바위 옆으로 살짝 그들의 모습을 훔쳐보기 시작했다. 아, 그러나 햇빛을 받아 미끈하게 빛나는 그들의 알몸은, 때 묻지 않은 자연의 모습을 배경으로 빛나는 그들의 나신은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으흡’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으므로 현성애는 입을 틀어막았다. 여성의 나체는 신의 작품이라더니…. 유호성이야 별 볼일 없었지만 김지선의 나신은 어쩌면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현성애는 침을 꿀꺽 삼켰다. 같은 여자 입장에서도 저토록 탐나는 몸을 지녔다니…. 김지선 이 년!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나 맞아라.
현성애는 구두를 벗어든 채로 다람쥐처럼 숲길을 빠져 나왔다. 그들보다 먼저 동쪽 해변에 있다는 빈 술통으로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그래, 내가 옷이며 음식 모두를 바닷속에 던져버릴테니 알몸자랑이나 실컷 해보렴.’
루디아의 왕 칸다우레스는 부하 규게스에게 문틈으로 왕비의 나체를 보여주며 자랑했다. 그러자 왕비의 아름다운 나체에 반한 규게스는 끝내 왕을 죽이고 왕비를 차지하고야 말았다. 그러니…어디 알몸자랑좀 실컷 해보라는 것이 현성애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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