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가 놀란 일식의 극의(極意)…카이세키 신화, 시노하라 타케마사[미담:味談]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꾸준함(継続),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힘이다.’ 카이세키(会席)는 일본의 맛과 미(美)를 집약한 일식(日式)의 극의(極意)다. 일본의 자연과 계절을 담은 이 장르는 절제미와 화려함, 양극의 아름다움을 고루 갖추고 있다. 최상의 식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두면서, 다채로운 조리법으로 미각의 지평를 넓힌다. ‘혼을 바쳐야, 완벽에 가까워 진다’는 일본의 장인정신, 쇼쿠닌다마시(職人魂)에 이르러야 카이세키를 완성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서방의 미식가들이 카이세키를 두고 ‘인류 최고의 미식’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마냥 과장만은 아닐 것이다. 시노하라 타케마사(篠原武将)는 카이세이의 최정점에 이른 명장 중 한 명이다. 그가 운영하는 ‘긴자 시노하라(銀座しのはら)’는 단순히 유명한 레스토랑이 아니다. “진짜 카이세키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정중하고도 단호하게 대답하는 공간이다. 미쉐린 2스타, 타베로그 일본요리 부문 3위. 숫자는 그의 실력
2025.09.14 23:20
“남자에게 의지 마라”…중식여제 정지선, ‘여자라서’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삶[미담:味談]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중식의 여제(女帝)’ 한국의 여성 중식 셰프라고 하면, 단연코 첫 번째로 거론될 인물이 정지선 셰프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 공고한 중식계에서 열정과 노력으로 정상에 선 정지선 셰프는 포기하지 않는 청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존재만으로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메시지의 키워드는 ‘도전’과 ‘끈기’와 ‘희망’이다. 스타셰프로 거듭난 정지선 셰프가 정상에 오르기 위해 멈추지 않아야 했던 인생담을 풀었다. ‘중식의 여제’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정지선 셰프지만, 지나온 길은 가시덩쿨에 둘러쌓인 절벽과도 같았다. ‘여자이기 때문에 곧 포기하고 말 걸’이라는 주변의 편견이 늘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고난에도 단 한 번도 포기를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노력하며 편견을 깨려했다. 정지선 셰프의 성공은 열정으로는 도달하기 힘든 초월적인 끈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지선 셰프는 고등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컴퓨터 공학도였다. 공부를
2025.08.31 23:00
“맛만 있으면 그만? 아름다움도 ‘미식’이다”…셰프가 된 패션디자이너[미담:味談]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음식이 예뻐서 뭐해, 배만 부르면 됐지.’ 가난이 일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했기에, 외적 요소를 신경쓰는 건 사치로 여겼다. 해외에서 비웃음을 사고 있는 ‘스뎅 밥그릇’은 고달팠던 그 시대의 상징이다. 한국의 경제력이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온 이제는 ‘배만 부르면 됐다’는 서글픈 관념을 버릴 때다 아름다워야 맛있다. 미식(美食)의 ‘미(美)’가 ‘맛(味)’이 아닌 아름다움을 뜻하는 것은 요리의 가치가 맛에만 포커싱된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예쁘기만 한 음식이 미식이란 의미는 아니다. 맛이 첫 번째다. 여기에 음식의 담김새, 음식을 담은 그릇과의 조화, 공간의 분위기, 조명, 음악, 서비스 등 음식을 둘러싼 모든 것이 더해져 미식을 완성한다. 그런 의미에서 브런치 비스트로 데비스는 아름다운 미식을 추구하는 이들에겐 보석같은 공간이다. 건축물로서 데비스의 정체성은 ‘시공간의 뒤섞임’이다. 창덕궁 돌담
2025.08.17 22:00
“韓 타코, 양배추 김치찌개 같았죠”…페루에서 온 ‘타코 장인’[미담:味談]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양배추와 고춧가루를 넣고 끓인 음식을 김치찌개라고 하는 것과 똑같았어요.” 이태원에 위치한 유명 타코집, 크리스피포크타운의 유호성 셰프는 90년대 후반 처음 한국에서 타코를 먹었을 때 받은 충격을 회상했다. 어줍잖게 흉내낸 타코가 비싼 값에 팔리는 것을 보고 실망감도 컸다고 한다.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난 유호성 셰프는 3살에 페루로 가, 한평생을 중·남미에서 자랐다. 페루뿐 아니라 멕시코 등에서도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 자연스레 타코는 그의 주식이었다. 타코는 그에게 고향의 음식이자, 추억과 애정이 깃든 향수로 자리잡았다. 그런 타코를 한국인들에게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당시 한국에는 멕시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마저도 타코를 흉내냈을 뿐 완전히 다른 음식이나 다름없었죠. 제대로 된 고향의 음식을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요리사를 동경해 온 유호성 셰프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며, 일찍
2025.08.03 22:30
진흙 속에 핀 꽃…나이트 웨이터 출신 미슐랭 셰프의 꿈[미담:味談]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매일 라면을 먹었던 7살 소년이 있다. 그는 진창에 묻혀 있던 한없이 여린 잎이었다. ‘진흙 속에서도 꽃은 핀다.’ 멋져보이고파 휘갈기던 명언이, 그에게는 현실이었다. 국내에서 시오라멘으로 첫 미슐랭에 오른 담택의 조원현 셰프는 해외 유학파, 고급 레스토랑 출신이 넘치는 미슐랭 세계에 이방인이다. 조원현 셰프의 출신은 나이트클럽 웨이터다. 웨이터가 되기 전 중고등학교 때에는 노가다꾼이었다. 조원현 셰프는 과거를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경의 시간이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 지금의 성공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숨기고 싶지 않습니다. 고통의 시간이 지금의 저를 있게 만들었으니깐요. 힘든 시절이 있었기에, 이 작은 행복을 누리는 것 아닐까요.” 1994년 조원현 셰프가 7살이 됐을 무렵,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해외에 억류돼 갑작스럽게 이산가족(離散家族)이 됐다. 집 안 곳곳에 빨간딱지가 붙고, 그리 유복하지 않았던 가정 환경은 더 깊은 수렁으로
2025.07.20 22:30
우린 오늘도 아기를 살해하려 한다…죽음을 막으려는 셰프 김태윤 [미담:味談]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우린 매일 살인(殺人)을 준비하고 있다. 대상은 요람 속 아기다. 극악무도한 일이지만 놀랍게도 죄책감은 없다. 살인의 행위가 일상 속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환경파괴, 과잉생산·소비 등 개인의 편의와 이익을 지나치게 좇는 모든 일들이 살인을 위한 준비 작업이다. 살인도구는 환경파괴의 결과물인 기후위기다. 기후위기야 말로 그 어떤 흉기보다 무서운 살인도구다. 우린 아기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매일 더 무서운 기후위기를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서울의 한낮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며 118년 관측 사상 최고(最高)를 기록했다. 재난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홍수와 가뭄, 극한의 폭염이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런 재난은 매년 더 끔찍하게 찾아올 것이다. 올해가 대한민국의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말이 결코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몇십년 후에는 여름철 외부 활동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어디까지 살아남을 때 일이겠지만. 일상 속 숨어있는 환경파괴 행
2025.07.13 22:40
“셰프의 진심, 손님께 닿기를”…틈이 없는 농밀함, 김도형의 ‘정성’[미담:味談]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정성(精誠) 어린 음식의 필수 재료는 진심(眞心)뿐이다. 정성이란 누군가를 위해 온갖 힘을 쏟아내는 참된 마음이다. 진심은 참된 마음의 본체(本體)다. 정성 어린 음식은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지어내는 밥이다. 아무런 대가 없이 오롯히 그를 위해 쏟아내는 부모의 사랑이야 말로 진심이다. 정성 어린 음식을 찾는 길은 그만큼이나 어렵다. 이탈리안 다이닝 서촌김씨의 김도형 오너셰프는 정성 어린 음식을 만들기 위해, 그만의 진심을 찾고 있다. 그것은 자식을 향한 부모의 아가페는 아닐 것이다. 자신의 식당을 찾은 손님에게 미식으로서 행복을 선사하고픈 거짓없는 마음일지 모른다. 레스토랑 문을 여는 순간부터 돌아가는 순간이 추억으로 남도록 바라는 간절함일 수도 있다. 24일 마곡에 위치한 서촌김씨 오스테리아에서 만난 김도형 셰프는 묵묵한 표정으로 라자냐를 뽑고 있었다. 대단한 기술을 요하는 작업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마치 가죽공예를 하는 장인처럼 가만히 집
2025.06.29 21:30
한국빵, 가격 세계 8위·맛은 ‘70점’…디올·에르메가 픽한 셰프의 ‘심회(心懷)’[미담:味談]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한국에서 디저트는 어쩌면, 영원히 비주류로 남을지 모릅니다.” 살롱 드 뮤흐의 최규성 셰프는 염세주의자 같았지만, 인터뷰의 끝에서 나는 그가 지독히도 현실주의자란 것을 깨닫고 한국 디저트의 어두운 미래를 그려볼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디저트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 같다. 엔딩 크레딧을 보지 않았다고,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린, 엔딩 크레딧을 영화의 없어도 될 존재로 여긴다. ‘이제 나가세요’라는 무언의 시그널이라면 모를까. 최규성 셰프는 한국의 디저트 역시 ‘식(食)문화’ 개념에 포함시키기 무안할 수준의 마이너한 장르가 됐다고 했다. 특별한 날을 케이크로 장식하던 문화조차, 한국에서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4~5만원에 달하는 케이크를 살 바에 차라리 더 멋진 레스토랑을 찾는다. “생존을 위한 식(食), 그리고 많은 사람이 맛과 즐거움을 찾는 미식(美食)이 모여 식문화를 형성한다고 하면, 한국에서 디저트는 생존을 위한 것도, 많
2025.06.22 22:00
500년 지켜온 ‘정씨家’ 농장, 세계가 감동한 요리로 꽃피다[미담:味談]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경기도 군포 수리산 자락에는 수려한 자태의 동래정씨(東萊鄭氏) 동래군파 종택(宗宅)이 있다.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鄭光弼·1462~1539)이 자리를 잡은 뒤, 후손들은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터를 지켜오고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일제강점기, 6.25 등 끔찍한 참변에서도 흔들림 없이 터를 지켜온 정씨 집안의 강직한 가풍의 상징이기도 하다. 종택의 한 켠에는 그 긴 시간을 함께 한 작은 텃밭이 있다. 쌈채소, 딸기, 콩, 온갖 허브들까지 계절에 따라 수십 종의 작물이 이곳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가족의 밥상을 책임졌던, 텃밭의 작물들이 세계인을 감동시킨 요리로 재탄생했다. 이를 실현한 인물은 동래군파 18대손 정하완 셰프다. 미슐랭 1스타와 그린스타에 오른 그의 요리에는 500년을 살아온 텃밭의 혼(魂)이 깃들어 있는 듯 하다. ‘자연주의’를 추구하는 정하완 셰프 요리의 주인공은 텃밭에서 재배한 채소들이다. 그가 하는 지중해 요리는
2025.06.08 21:30
누구나 미식의 권리가 있다…요리하는 혁신가 김병진의 ‘꿈’[미담:味談]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가난한 이들에게도 미식을 즐길 권리가 있다. 찬 바람이 몰아치는 깊은 밤, 소녀는 어느 집 앞에서 성냥에 불을 붙였다. 성냥의 불길 속에서 따뜻한 난로와 근사한 거위 요리, 갓 구운 빵이 나왔다. 굶주림 속에서 꿈꿔왔던 만찬에 손을 뻗었다. 불길이 꺼지고, 동시에 음식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안데르센의 단편 ‘성냥팔이 소녀’의 대목이다. 어떤 이에게는 원하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소녀에게는 신기루와 같은 허상이었다. 그것만큼 끔찍한 설움이 있을까. 맛있는 음식을 좇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이건 식욕이라는 원초적 생리와도 연결돼 있다. 살기 위해 음식을 찾고 그 중에서도 맛있는 음식을 선택하는 건 어렵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만고의 진리다. 현대 사회에서 가난은 이런 인간의 본능을 참아야만 하는 가장 참혹한 족쇄다. 상당히 대중화가 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파인다이닝은 누군가에게는 성냥 불길의 만찬처럼 바라만 봐야 하는 존재다. 한 끼에 30만원에 달하는
2025.06.01 2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