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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안녕하세요,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입니다.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차라리 반만 먹고 반만 내게 해주세요!"
치킨마저 3만원 목전에 왔다. 소시민들에게 치킨 한 마리 시켜먹는 것조차 사치인 시대다.
끝을 모르고 오르는 외식 물가에 '0.5인분'이 새로운 외식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돈 때문에 먹고 싶은 것을 망설였던 이들에게는 최고의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가정의 모습을 통해 0.5인분이 대세가 된 배경을 조명했다.
꼭 '그 치킨' 먹고픈 아들, 정답은 '반 마리'
"엄마아 나 간장치킨~"
9살 아들 도훈이 어디서 치킨을 먹고 왔는지 요즘 계속 떼를 쓴다.
저렴한 마트 치킨으로 만족하면 좋으련만, 꼭 프랜차이즈 간장치킨만 찾는다.
얼마 전 3000원이 인상된 프랜차이즈에서 가장 싼 한 마리 메뉴가 1만9000원이다. 배달비 4000원이 붙으면, 2만3000원으로 뛴다.
'언제부터 치킨이 이렇게 비싸졌지..'
중소기업에 다니는 외벌이 남편의 월급으로 2만원 넘는 치킨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배달 어플을 뒤적거리던 중 '반 마리'에 눈이 번쩍 뜨인다. 해당 브랜드 치킨 반 마리에 1만2000원. 양에 비에 턱없이 비싸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게 어디냐. 반마리는 도훈이 혼자 먹기에도 남는 양이다.
1만9000원 이하 금액은 배달이 안 되지만, 차라리 배달비를 내지 않아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손에는 엄마 손을, 다른 한 손에는 치킨을 들고 집에 오는 도훈의 표정에 웃음이 피었다.
치킨부터 중국요리·양갈비·샐러드까지 '0.5인분' 확산
0.5인분 트렌드는 치킨뿐 아니라 양꼬치, 중국요리, 샐러드 등 다양한 품목으로 확대되고 있다.
치킨 프랜차이즈 청년치킨은 2년 전부터 반 마리 치킨을 팔기 시작했다. 가격은 7000~9000원으로 저렴하다. 처음에는 "반마리만 시켜도 괜찮냐"며 손님들도 어리둥절해 했다. 이제는 전체 매출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효자 상품이 됐다.
모선용 청년치킨 대표는 "반 마리 치킨의 인기는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며 "비싼 치킨 값에 부담을 느낀 손님들이나 1인 가구들을 중심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청년치킨은 배달을 하지 않고 포장을 전문으로 하고 있지만, 부담을 줄인 가격과 맛있는 맛에 입소문을 타고 올해 수도권 50개 매장 오픈을 계획하고 있다.
경기도 시흥의 중국집 '쩜오각'은 식당 이름처럼 0.5인분을 전문으로 파는 식당이다. 짜장면 반그릇에 2900원, 짬뽕 반그릇에 3900원이다. 다른 가게에서는 2만원이 훌쩍 넘는 유산슬이나 고추잡채도 이 곳에서는 반그릇에 9900원에 먹을 수 있다.
이원기 쩜오각 대표는 "중식을 좋아하는데 다양하게 못 먹는 점이 항상 아쉬웠다"며 "짜장면만 먹어도 요리류는 손을 거의 못 대지 않나. 다양하게 먹고 싶은 고객층 수요가 있을 것 같아 이런 콘셉트로 식당을 차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님 한 명이 메뉴 7개를 시킨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2023년 미쉐린가이드에 선정된 이태원의 삿포로식 양고기집 '교양식사'은 양갈비를 0.5인분인 100g에 1만6000원에 팔고 있다. 영등포에 위치한 '연변양꼬치'에서도 꼬치류 0.5인분을 6000~9000원대에 판다.
대기업도 이런 추세에 가담했다. 신세계푸드는 프랜차이즈 노브랜드버거에서 0.5인분 샐러드를 출시했다. 노브랜드 버거의 ‘그린샐러드 미니’는 양상추, 적채, 방울토마토 등 신선한 채소와 드레싱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사이드 메뉴다. 가격과 용량은 기존 판매 중인 ‘그린샐러드’의 절반 수준인 1800원, 100g이다.
짜장면이 6000원대, 무섭게 치솟는 외식물가
그러나 0.5인분이 인기를 끌게 된 사회적 배경은 씁쓸하다. 치솟는 물가. 제자리에 머무는 노동자 임금에 먹고 살기가 하루가 다르게 힘들어지고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3월 전국의 외식 물가 지수는 116.38로 전년 동월 대비 7.4% 증가했다.
1월(7.7%), 2월(7.5%) 등과 비교하면 소폭 하락한 수준이지만 여전히 전체 소비자물가를 크게 웃돌았다.
3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 오르면서 1월(5.2%)과 2월(4.8%)에 이어 3개월 연속 상승률이 감소한 바 있다.
품목별로 보면 39개 외식 품목은 하나도 빠짐없이 1년 전보다 가격이 올랐다.
가격 상승 폭이 가장 낮았던 커피(1.9%), 불고기(4.7%), 소고기(4.8%) 등 3가지 품목을 제외하면 모든 품목이 5%가 넘는 상승률을 보였다.
특히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인 품목도 6종에 달했다. 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품목은 피자로 전년과 비교해 12.0%가 상승했다.
식당에서 파는 소주는 10.8% 상승률을 기록했고, 라면(10.3%), 김밥(10.3%), 햄버거(10.3%), 돈가스(10.0%) 등이 뒤를 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민 음식'이라는 이름도 무색해지고 있다.
전문가격조사기관인 한국물가정보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민 음식의 대표격인 짜장면의 올해 평균 가격은 6361원으로 5년 전(5011원)과 비교해 26.9%가 올랐다. 10년 전(4345원)과 비교하면 가격이 1.5배 가까이 오른 셈이다.
"외식물가, 상반기에도 상승세…하반기에도 보합세 이어가"
안타깝게도 이런 외식물가 상승은 올해까지는 계속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한국물가정보원의 이동훈 연구원은 "원재료와 공산품, 유가, 금리 등이 안정화가 돼야 식음료 물가도 안정될 수 있다"며 "현재 추이로는 상반기까지는 상승세가 이어질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산유국들이 감산 계획을 밝히면서 국제유가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국제유가 인상은 전기·가스요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명분에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전기·가스료 인상은 식당의 원자재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외식 물가를 더욱 자극할 수 있다.
이 연구원은 "국제 곡물가격 하락과 국내 농축산물 가격 안정세에 따라 집에서 직접 해먹는 '밥상물가'는 하반기에 안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하지만, 인건비 이슈로 외식물가의 경우에는 하반기에도 하락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