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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황제식단'이 한끼 1600원?…법무부
실제 교도소 급식 사진. [법무부 제공]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쇠고기떡국', '돈까스', '키위소스샐러드', '소시지김치볶음'…유명 식당 메뉴가 아니다. 강력범죄를 저지른 흉악범들을 수용한 한 구치소의 실제 식단이다.

이 구치소에는 일면식 없는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시체를 훼손해 유기한 정유정(23)과 처음 본 여성을 폭행하고 성폭행까지 한 혐의를 사고 있는 일명 '부산 돌려차기남'이 머무르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시민들은 사이에서 "강력범죄자들에게 '황제식단'을 제공하고 있다"는 공분을 샀다. 국민의 혈세를 허투루 사용하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 수감자들에게 배정된 식비는 이같은 식단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당히 적은 액수인 것으로 확인됐다.

25일 헤럴드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구치소·교도소 수감자 1명에게 배정된 하루 식비는 평균 4994원이다. 한 끼 당 1664원에 불과하다.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컵라면 한개 가격 수준이다. 한 해 소요되는 전체 수감자 급식비 예산은 약 952억원이다.

어떻게 컵라면 한 개 가격으로 식단표에 보이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걸까. '교도소 황제식단'의 비밀을 파헤쳤다.

교정시설 급식비 한끼 1600원…"인건비·재료비 최소화"로 가능

'교도소 황제식단'이 한끼 1600원?…법무부
SBS 예능 '관계자 외 출입금지'에 나온 구치소 밥. [SBS 캡처]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식사가 (수감시설에서) 가능하겠습니까? 밖에서 먹는 음식을 생각하면 안 돼요."

익명을 요구한 한 교정시설 관계자는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교도소 황제식단'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그럼 최근 확산한 식단이 거짓말인 것일까. 그것도 아니다. 관계자는 분명 식단표 대로 음식은 준비된다고 했다.

비밀은 최소한의 인건비·재료비에 있다.

"식단이 거짓말은 아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모습은 단언컨대 아닙니다. 예컨대 소고기가 들어간 소고기국은 맞지만, 의미있는 수준으로 들어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 들어가는 고기 역시 저렴한 부위를 사용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또 배식되는 양도 적어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배부르게 지내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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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피의자 정유정(23)이 수감된 한 구치소의 실제 식단표. [온라인커뮤니티]

올해 1월 첫 방영된 SBS 예능 '관계자 외 출입금지'에는 서울 남부구치소 급식이 나온 바 있다. 당시 식단은 쌀밥·미역국·닭볶음탕·김치·핫케이크였다. 교정소 관계자의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실한 모습이었다.

관계자는 이에 대해서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를 배려해 배식을 더 하거나 특식을 제공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교정시설에서 밥을 짓는 모든 준비와 정리를 교도소 내 수감자 중 지원자를 선발해 운영하기 때문에 인건비도 거의 들지 않는다"

고급 레스토랑 수준 노르웨이 교도소…"인간적 대우, 교화에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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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한 교도소에서 재소자를 위한 음식을 만드는 모습. [The Norwegian Correctional Service]

일각에서는 범죄자들에게 시민의 세금으로 제대로 된 식단을 제공하고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면 이들을 교화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반대로 비인간적인 대우를 해주는 것이 교화에 오히려 악영향이라고 입을 모은다. 인간 이하 최악의 대우를 해줄 경우 희망을 잃고 오히려 극단적 범행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황제급식'으로 불릴 정도로 범죄자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대표적인 국가가 노르웨이다. 교도소 내에 흡사 대형마트를 방불케하는 마트가 존재하고 여기서 재료를 사다 감방 안에 비치된 조리기구로 밥을 해 먹을 수 있다. 제공되는 급식 역시 고급 레스토랑급이다. 노르웨이 교도소 수감자 1명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한화로 약 1억원에 달한다. 이는 미국과 한국의 3배에 달하는 비용이다.

"할 거 없으면, 죄 짓고 노르웨이 교도소에 가는 게 편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놀랍게도 노르웨이 출소자들의 재범률은 20%로 한국(24%)보다도 낮다. 미국의 경우 50%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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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한 교도소에서 재소자가 교도소 내 마트에서 장을 보는 모습. [The Norwegian Correctional Service]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교정학적으로 교정시설에서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는 것이 오히려 교화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한국의 교정 패러다임도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다만, 한국의 법 처벌이 강력범죄자에게도 경미하다고 느낄 수 있어 이런 국민 정서와 상황을 고려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역시 "아무리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인간적인 대우는 필요하다. 교도소에서의 처벌이 가혹해서는 안 된다"며 "다만, 편의를 제공하는 것 역시 재소자의 특성과 반성하는 태도 등 개개인에 맞춰 차등적으로 제공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한국도 나아지나?…법무부 "재정당국과 수용자 급식비 인상 협의"

'교도소 황제식단'이 한끼 1600원?…법무부
시대별 교도소 수형자 밥의 변천을 보여주는 사진. [MBC 캡처]

교정당국은 이같은 문제점을 인지해, 계속해 교도소 식단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릴 계획이다.

법무부는 서면 답변서를 통해 "재정당국과 수용자 급식비 인상을 협의하는 등 수용자 식단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지금의 식단도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향상된 것이다. 대표적인 게 '콩밥'이다.

이슈가 된 이번 식단표 어디에도 콩밥은 없었다. 이를 본 일각에서는 왜 콩밥이 안 나오는지 궁금해 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콩밥은 이미 40여년 전에 교도소에서 사라졌다.

콩밥을 수감자들에게 제공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때부터였다. 그 이전까지는 체계화된 수감자 식단 매뉴얼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콩밥에는 쌀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콩과 좁쌀을 섞어 만들었다.

1986년 쌀 가격이 하락하고 반대로 콩 가격이 상승하면서, 보리밥으로 대체됐다. 교도소 수감자에 대한 인권과 건강문제도 영향을 미쳤다. 2008년에는 보리 비율을 대폭 줄여 보리 1: 쌀 9 비율로 밥이 제공됐고, 2014년부터는 100% 쌀밥이 제공되고 있다. 하루에 제공되는 식단 전체 칼로리는 2500kcal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