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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뉴진스 토끼 캐릭터, 원조가 따로 있다고?"
일명 '뉴진스빵'으로 유명한 빵이 있다. 바로 SPC삼립의 대표 카스테라빵 '보름달'이다. 보름달이 뉴진스빵으로 불리는 이유는 패키지에 그려진 토끼 캐릭터 때문이다. 뉴진스의 토끼 캐릭터와 닮은 모습에 장난섞인 '원조 논란'까지 일었다.
물론 진지하게 표절 시비를 논하는 건 아니다. 보름달의 토끼 캐릭터가 탄생한 건 1976년. 뉴진스 토끼가 등장한 시기가 2022년이니 무려 46년이나 차이 난다. 게다가 2022년까지만 하더라도 보름달 토끼 캐릭터의 모습은 지금과 사뭇 달랐으니 뉴진스 측에서 베꼈다고 보기에도 어렵다. 2023년 보름달의 토끼 캐릭터가 지금의 모습으로 개편됐으나, 뉴진스 토끼를 베꼈다고 하기에는 전반적 모습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그야말로 느낌만 비슷할 뿐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50살 가까이 된 캐릭터가 10대, 20대에게도 제대로 먹힌다는 점이다. 바로 캐릭터 마케팅의 힘이다. SPC에 따르면, 보름달빵의 매출은 캐릭터 리뉴얼한 달인 지난해 2월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출시 9일만에 100만개 판매 돌파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보름달의 총 매출액은 417억원에 달한다. 캐릭터 마케팅을 제대로 보여준 사례다.
베이커리업계 캐릭터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캐릭터 마케팅의 트렌드를 들여다봤다.
"안녕? 나는 보름이야"…캐릭터 비하인드 스토리
보름달의 토끼 캐릭터는 보름이(48)라는 이름까지 가지고 있다. 보름달이 탄생한 1976년 같이 등장했다. 보름이는 보름달에 살고 있는 달토끼를 모티브로 제작했다. 소원을 들어주는 둥근 보름달처럼 행운을 상징한다. 달빛을 닮은 노란색 몸통에 하트 모양 꼬리와 귀는 신비로운 느낌과 함께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초창기에는 절구통에 절구공이를 찧고 있는 빨간색 토끼의 모습이었다. 이후 2007년과 2012, 2019, 2023년 4차례 모습이 바뀌었다. 2007년부터 2019년까지는 색과 형태에 약간의 변화가 있는 수준이었다. 토끼의 해를 맞이해 2023년 개편된 캐릭터는 그전과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사실상 2007년 이후 16년 만에 파격적 변화를 시도했다.
큰 눈에 하트모양 꼬리, 좀더 통통해진 얼굴, 반짝이는 눈까지 10대, 20대를 겨냥해 귀여운 이미지를 강조했다. 어른들만 먹는 추억의 빵을 넘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스테디셀러로 거듭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SPC삼립의 캐릭터 마케팅의 신화를 쓴 최초는 '국진이빵'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출시한 국진이빵은 시름에 빠진 한국인들에게 웃음을 준 당대 최고의 인기 개그맨이었던 김국진을 모델로 해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국진이빵은 하루에만 50만개 이상 팔리며 연간 21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당시 부도 위기설까지 돌 정도로 경영난에 시달리던 삼립식품은 국진이빵의 인기에 힘입어 6개월간 밀렸던 직원 월급을 해결하고 재건에도 성공했다는 일화도 있다.
여기에는 또 다른 미담도 존재하는데, 국진이빵에 이름을 빌려준 개그맨 김국진 씨가 로열티를 거의 받지 않고 국진이빵을 만들도록 허락했다는 것이다. 경영난에 허덕이던 기업을 살리고 많은 아이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빵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는 풍문이 전해지고 있다.
동네빵집에 분 캐릭터 마케팅 바람…"스토리텔링을 해라"
캐릭터 하나로 회사가 되살아 난다니, 캐릭터 마케팅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특히, 최근에는 캐릭터 마케팅이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뿐 아니라 영세한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더욱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런 트렌드는 연남동·성수동·을지로 등 MZ세대에 인기가 많은 힙한 지역을 돌아보면, 가게만의 캐릭터를 내세운 베이커리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다.
디자인전문업체 다롱팩토리의 임다영 대표는 자영업에서 캐릭터 마케팅이 활성화되는 이유에 대해 "캐릭터를 활용하면 제품에 대한 감정적 연결을 형성할 수 있어 고객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고, SNS 및 온라인 홍보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자영업자들은 유명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같은 기존의 IP(지적재산권)를 이용하지 않고 가게의 정체성에 맞는 새로운 캐릭터를 제작하고 있다. IP 사용료에 대한 부담감도 존재하지만, 무엇보다 장기적으로 가게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한 전략이다.
어떤 유행에 휩쓸린 디자인보다는 가게의 콘셉트에 맞춘 개성있는 캐릭터를 제작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가게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유행에 따라 콘셉트를 정했던 과거와 달라진 트렌드라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는 방식을 택했다. 계절이나 기념일에 따라 캐릭터의 모습을 다양하게 변화시키기도 한다. 캐릭터를 포장지에 그려 넣는 정도로만 국한하지 않고, 텀블러·인형·스티커·엽서 등 다양한 굿즈로 범위를 넓히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최신 트렌드는 캐릭터에 '스토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연남동에 위치한 한 소라빵 전문점 캐릭터는 소라빵을 달고 있는 유니콘이다. 유니콘의 뿔이 소라빵과 닮았다는 점과 전국에 유일한 소라빵 전문점이 상상 속 동물 유니콘만큼이나 희귀하다는 컨셉으로 만든 캐릭터다. 이 캐릭터에는 스토리도 있다. 뿔을 잃어버린 유니콘을 위해 제빵사 부부가 다양한 맛의 소라빵을 만들어 유니콘에게 선물한다는 이야기다.
임 대표는 "캐릭터에 스토리를 부여하면, 소비자들이 브랜드의 가치와 메시지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호감도도 상승한다"며 "캐릭터의 스토리텔링은 소비자들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하고, 소비자와 브랜드를 감성적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마케팅 전략"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