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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안녕하세요,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입니다.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가난한 자의 불편함은 끊임없이 참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식당 가격표 앞자리가 달라지고 있다. 밥상 물가는 물론 전기, 가스요금, 교통비 등 공공요금까지 전방위적 물가 상승에 밥 한끼 사먹기가 무섭다. 너도나도 지갑을 닫으면서 짜장면 한 그릇도 망설여지는 요즘이다.
벌이가 넉넉지 않은 이들에게 대학교 '학식'은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구성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고마운 존재'가 되고 있다.
대학교 개강 시즌을 맞이해 지난 2~3일 헤럴드경제가 직접 서울·수도권 대학의 '학식' 현장을 찾았다. 1000원짜리 아침 식사부터 인근 주민들도 자주 찾는 대학교 식당 풍경에서 '고물가'의 또 다른 슬픈 단면이 감지됐다. 현장에서 만난 '학식을 먹는 사람들'의 취재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저소득층에 더 가혹한 경제난…한끼 식사가 된 '학식'
"할머니 우리 오늘 밥 밖에서 뭐 먹어?" 한달 만의 외식에 양 볼이 빨갛게 설렘을 감추지 못하고 6살난 손자 시우가 말했다.
"으응, 할머니도 몰라 가봐야 알아." 찬바람이 부는 날씨에 손자의 손을 꼭 쥐고 명옥은 말했다. '며칠 전부터 돈까스를 찾던데, 오늘 꼭 돈까스가 나와야 하는데…' 명옥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둘이 도착한 곳은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대학교.
"그 학교에 가면 5000원만 내면 밥도 푸짐하게 주고 반찬도 이것 저것 잘 나와. 지난번엔 그 오리고기가 나왔더라고. 부동산 정씨 아줌마랑도 갔는데 밥 한끼 먹고, 커피 한잔 들고 대학 구경하는데 옛날 생각도 나고 별재미더라구." 얼마 전 같은 교회를 다니는 숙자이모라고 부르는 지인의 말이 기억나서다.
3년 전 맏아들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보내고, 생계는 며느리가 책임지고 있다. 남편은 5년 전 암투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육아는 자연스럽게 명옥의 몫이 됐다. 변호사가 돼 집안을 일으켜 보겠다며, 서른이 넘도록 고시생활을 한 아들은 뒤늦게 작은 회사에 들어갔지만 모아둔 돈이 많지 않았다. 원래도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외식은 사치같았다. 최근 들어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외식 가격에 손자의 칭얼거림도 애써 외면했다. 그렇기에 숙자이모 말을 듣고 가장 먼저 손자의 얼굴이 떠오른 것도 당연했다.
"돈까스다!" 시우가 신나서 말했다. 속으로 그렇게 바랬는데, 꼭 꾸민 것처럼 이날 점심 메뉴로 돈까스가 나왔다. 밖에서 먹으려면 못해도 8000원 이상은 줘야할 돈까스가 절반에 가까운 5000원이었다. 학생의 도움을 받아 키오스크에서 식권을 사고 음식을 받아 식당 가장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허겁지겁 먹는 손자의 모습에 곳잔등이 약간 시큰해지는 걸 느꼈다. 이게 얼마라고 못 사줬던 게 미안해졌다.
"할머니 할머니, 담에 여기 또 오자" 집으로 가는 길 만족한 얼굴의 시우가 다시 명옥의 손을 꼭 쥐며 말했다.
"먹지마"…외부인에 문 닫는 대학들
"누구를 위한 학식인가"
몇몇 학교들은 학생과 교직원이 피해를 본다며, 외부인이 학식을 먹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또는 외부인에게는 가격을 올려 받는 곳들도 많다. 국내 최고 국립대학인 서울대도 외부인에게는 1000원 더 비싸게 학식을 제공하고 있다.
실제 한국외대는 '학식 맛집'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외부인들의 출입이 잦아져 학생들의 불편함이 컸었다. 밥을 먹고 싶어도 학생들이 자리가 없어 밥을 못 먹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문제로 한국외대는 2016년부터 학생증을 제시하는 학생만 이용이 가능하도록 개편했다가, 주민들의 반발에 1년도 안돼 철회하기도 했다.
2019년 경남대학 학보사는 '누구를 위한 학식'이냐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외부인과 동등한 가격을 받는 학식 시스템을 비판했다. 경남대 학보사는 "외부인과 학우들에게 받는 가격이 같다"며 "창원대는 일반인에게 4500원으로 가격을 더 받으며, 마산대 또한 외부인 식권을 5000원으로 규정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서울시내에 위치한 몇몇 대학의 경우 유동인구도 많고 외부인 출입도 잦아 식당 사용에 교직원이나 학생들이 불편을 겪는 일이 실제 존재한다"며 "외부인 출입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으나, 지역 공동체를 위해 힘써야 한다는 대학 존재의 목적에 따라 학식을 개방해야 한다는 의견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고 말했다.
"학식도 비싸"…컵라면으로 끼니 때우는 학생들
더 안타까운 일은 이런 학식조차 돈이 없어 사먹지 못하고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학생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학식도 물가 상승 총알을 피하지 못했다. 서울대 캠퍼스 내 학교식당을 운영·관리하는 생활협동조합(생협)은 지난해 4월 물가 상승으로 인한 적자 폭 확대 등을 이유로 약 1000원 정도 인상했다. 약 3000∼6000원에 판매되던 학식은 4000∼7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연세대 신촌캠퍼스도 지난 2학기 들어 교직원 식당의 점심 뷔페 가격을 6500원에서 7000원으로 인상했다. 청경관에서 파는 김밥 가격은 1300원에서 1500원으로 올랐다. 학생이 이용하는 식당의 음식값은 올리지 않았다.
고려대는 1000원 인상한 6000원에 학식을 판매하고 있다. 한국외대는 학생식당의 대표 메뉴 2가지 가격을 각각 3000원에서 3500원, 3500원에서 4000원으로 500원씩 올렸다. 2000원이었던 면 요리도 2500원이 됐다. 라면·김밥 등 분식류 가격 역시 300원씩 인상됐다. 이화여대는 공대 학식이 4900원에서 5500원으로 올랐다.
대학들은 "버티다 못해 학식 가격을 올렸다"는 입장이다. 학식 가격을 1000원 인상해 7000원까지 오른 서울대 측은 당시 "학식 적자가 누적돼 적자를 개선하기 위해 식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학생들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전국대학생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가 진행한 ‘2022 전국 대학생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0%가 가장 부담스러운 지출로 ‘식비’를 꼽았다.
이에 점심 시간이면, 교내 편의점은 값싼 컵라면 등을 사기 위해 온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서울시내 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혜인 씨는 "가격이 싸기도 하고, 학식 가격이 많이 오르기도 해서 종종 편의점에서 간단히 떼우곤 한다"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정도로는, 외식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시대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도 외부인도 모두가 배부를 수 없을까
"모두가 밥 한끼 따뜻하게 먹는 세상이 돼야하지 않을까요."
일부 학교는 학생들을 위해 아주 저렴한 가격에 학식을 제공하고 있다. 학식을 '사업'이 아닌 '복지' 차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인천대 학생들은 단돈 100원으로 아침을 먹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학식이 부실하지도 않다. 동그랑땡에 불고기에, 닭죽, 소고기무국 등 든든한 한끼를 제공한다.
박창훈 인천대소비자생활협동조합 사무국장은 "대학생 복지에서 학생 식당(학식)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최대한 많은 학생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밥값 부담을 최소화할 기회를 잡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지원으로 1000원 학식을 운영하는 곳도 꽤 된다. 서울대와 성균관대, 고려대 등 전국 28개 대학이 1000원 학식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대부분 아침밥을 제공하는 데 머물러 있어 많은 학생이 혜택을 보기는 어려우며, 정부의 예산 문제로 1000원 학식을 운영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대학도 있다. 이에 정부의 예산 지원이 대폭 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대학은 기업이 아니잖아요. 모든 선택의 기준이 경제적 이익이 돼선 안되겠죠. 그렇다고 대학에 모든 사회적 책임과 부담을 맡길 수는 없죠. 정부와 시민이 돕는다면, 가난한 자와 학생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그런 밥 한끼 내 줄 수 있는 대학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