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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삼겹살? 바이두 백과에 올라온 삼겹살 쌈 이미지. 한국인들이 흔히 먹는 삼겹살과 비슷해 보이지만, 어딘가 어색하다. [바이두백과]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삼겹살 구이는 중국식 전병에 싸 먹는 '대파 돼지고기 볶음'에서 유래한 음식"-중국 바이두백과

이번엔 삼겹살이다. 중국이 김치, 삼계탕에 이어 삽겹살을 중국음식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중국의 '음식공정'이 또 다시 시작된 셈이다.

요즘같이 중국발(發) 미세먼지로 목이 따끔따끔 아파오는 봄철이면 더 생각나는 삼겹살의 기원을 과거 기록과 서적,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파헤쳤다. 전문가들은 삼겹살이 1970년대 산업화 시대 한국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한국 삼겹살의 역사'를 1980년대 서민의 단골메뉴인 '삽겹살에 소주' 기울이는 직장인의 저녁자리를 빌어 재구성했다.

한국인 고단함 달래주는 '기름진 한 점'

1987년 KBS 드라마 'TV손자병법'의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려는데 어때? 신 대리랑 셋이"

"삼겹살요?"

퇴근 준비 중이었는데 총무과 김 과장이 꼬드겼다. 그렇잖아도 저녁으로 소주에 순대 한 접시로 대충 때우려던 참이었다. 삼겹살이라니. 입에 군침이 돌았다.

1980년대 영등포 거리. [유튜브 타임트레벨러 캡처]

1980년 봄, 서울의 밤.

줄지어 늘어선 포장마차의 카바이드 램프에 불이 켜지고, 거리에 네온사인 간판이 도시에 화려함을 색칠했다. 선술집의 빈대떡 굽는 냄새와 삼겹살 지글거리는 냄새가 퇴근길 샐러리맨의 코를 자극한다.

몇해 전부터 제육이나 불고기를 파는 선술집에서 돼지고기 삼겹살이 인기를 끌고 있다. 회사가 모인 도심 번화가에는 삼겹살을 대표 메뉴로 내건 식당이 제법 흔해졌다.

1980년대 삼겹살 회식을 하는 모습. [유튜브 옛날티비 캡처]

뻑뻑한 술집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연탄 냄새가 확 풍겼다. 탁자 앞에 둘러 앉았다. 열댓살쯤 보이는 통통한 소년이 탁자 위를 치웠다.

"얘, 아주머니더러 돼지 삼겹살 두접시랑 뜨끈뜨끈한 순대 국물 좀 달라고 해라. 김치도 새 것을 가져 오고. 소주 한병. 알겠지?"

"여기 돼지 삼겹살 두개, 뜨끈뜨끈 순대 국물에 쐬주 있어요."

소년이 비위살 좋게 말을 받아 안에다 대고 소리쳤다.

"저희 어릴 때만 해도 삼겹살이란 거 모르고 지냈는데요, 그쵸?"

"그때야 먹을 게 없었으니까. 돼지고기는 김장할 때나 삶아서 먹었지. 넉넉한 집이면 제육을 해 먹거나. 생으로 구워먹기는. 숯불구이집 생긴지 얼마나 됐다고."

김 과장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답했다.

"저희 어렸을 땐 돼지 구워 먹으면 질기고 냄새나서 그냥 먹기도 힘들었는데요."

신 대리가 말을 보탰다.

[유튜브 옛날티비 캡처]

그새 소년은 연탄 화덕 위에 은박지를 깐 두꺼운 쇠판을 얹고, 소주병과 잔을 탁자 위에 갖다 놓았다.

소주를 따르고 있는 사이 쇠판이 어느 정도 달구어졌는지 소년은 삼겹살을 쇠판 위에 올려 놓았다. 기름이 지글지글 탁탁 소리를 내며 탔다.

삼겹살이 익자 술잔이 몇 순배 바쁘게 오갔다. 각자의 삶과 격변하는 세상 이야기가 노릇하게 익어갔다. 푸름스름한 밤이 짙어진다. 삼겹살 한 점에 하루의 고단함이 녹는다. 소주 한 잔에 묵은 피로도 목구멍으로 넘겨버린다.

中 "삼겹살, 전병에 돼지고기 싸 먹는 음식에서 유래"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에서 삼겹살을 검색하자 '고오화육(烤五花肉)'으로 검색된다. 바이두는 삼겹살이 중국의 대파 돼지고기 볶음에서 유래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바이두백과 캡처]

오랜 시간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아오던 삽겹살에 중국인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다.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는 삼겹살이 중국식 돼지볶음에서 기원한 중국음식이라고 주장한다.

바이두백과는 "삼겹살 구이는 중국식 전병에 싸 먹는 '대파 돼지고기 볶음'에서 유래한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전병에 볶은 돼지고기를 끼워 넣는 방식이 상추쌈에 구운 삼겹살을 싸 먹는 것과 흡사하다는 게 이유다.

바이두가 삼겹살의 원조라고 주장하는 '대파 돼지고기 볶음'. 바이두백과

대파 돼지고기 볶음은 중국에서 흔히 먹는 가정요리 중 하나다. 돼지고기를 굽다가 대파와 물, 소금 등을 넣고 강한불에 짧게 볶아내는 요리다. 이를 전병 사이에 넣어 먹기도 한다. 이때 돼지고기는 삼겹살을 주로 사용하지만 앞다리살, 목살 등 여러 부위가 사용된다.

중국음식을 소개하는 유튜버가 삼겹살을 소개하는 장면. 이 유튜버는 해당 영상에 '중국음식'이라는 태그를 붙이기도 했다. [유튜브 캡처]

바이두백과는 "삼겹살을 구워 상추잎 한 장에 된장을 찍어 고추와 마늘 한 쪽을 같이 싸 먹으면 맛이 정말 좋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삼겹살을 먹는 방법 중에 얼렸다가, 언 상태로 썰어 굽는 '냉동삼겹살'도 추천하고 있다.

바이두백과는 "골목길에 들어가도 삼겹살 구이를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인 요리"라며 "삼겹살은 중국의 최고 요리 중 하나"라고 자부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디즈니플러스에서 방영된 중국 드라마 '진수기'에서 깻잎장아찌에 삼겹살을 싸 먹는 장면. 디즈니플러스 캡처

바이두백과 뿐 아니라 현지 방송에서도 삼겹살을 중국 음식으로 소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된 중국 드라마 '진수기'에는 한복과 유사한 의상을 입은 중국배우가 삼겹살을 중국 전통 요리로 소개하는 장면이 나와 한국인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중국 매체 환구시보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비판에 대해 중국 네티즌들은 "진수기에 나온 음식들은 모두 중국 전통음식이라 흠잡을 데가 없다"는 반응으로 일관했다.

"현재의 '삼겹살 구이', 시작은 70년대 대한민국"

1983년 6월 2일 동아일보 기사. 삼겹살이 유행하기 시작한 퇴근길 풍속도를 기록했다. [뉴스아카이브]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지금처럼 삼겹살을 구워 쌈을 싸먹는 건 언제쯤 시작됐을까.

삼겹살에 대한 역사문헌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내 전문가들은 그러나 1970년대 한국 노동자를 중심으로 시작됐다고 본다. 대중화가 된 건 1970년대 후반부터로 추정하고 있다. 생각보다 역사가 길지 않은 현대음식이라는 게 정론이다.

'한돈 전문가'인 문성실 선진 식육연구센터장은 "삼겹살에 대한 문헌 기록은 남아 있는 것이 없고, 삼겹살을 구워서 쌈을 같이 내어 파는 방식이 시작된 건 1970년대 중후반부터"라며 "1980년대 서울 도심권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1983년 즈음에는 서울 중구 삼각동 일대에 '삼겹살 골목'이 조성되기도 했다.

문 센터장은 "소고기를 구워 먹는 문화는 삼국시대부터 기록에 있지만, 돼지고기는 주로 삶아 먹거나 굽더라도 양념에 재워 먹었다"고 덧붙였다.

1980년대 삼겹살을 파는 식당의 메뉴판. 삼겹살이 2500원이다. 옛날뉴스 유튜브 캡처

과거 돼지를 방목해서 키우던 시절 돼지고기는 질겨서 그냥 구워서 먹기 힘들었다. 도축 방법도 현재와 같이 선진화되지 않아, 누린내가 심해 돼지고기를 그냥 구워먹는 것은 생각보다 맛있지 않았다. 이에 선조들은 된장이나 여러 향신료를 넣고 물에 푹 삶아 부드럽게 먹었다.

삼겹살이 언론에 첫 등장한 것도 1934년 11월 3일 동아일보 기사가 처음이다. 이 때는 '세겹살'이라고 불렀다. 다만, 이것이 지금의 구워먹는 요리로서의 삼겹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사는 단순히 돼지고기 삼겹살 부위를 고르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삼겹살 구이가 등장한 건 1979년 8월 25일 동아일보 기사다. 당시 기사는 "우후죽순 주점가에 늘어가던 삼겹살집도 여름이 시작되면서 사람의 발길이 눈에 띄게 뜸해졌다"고 기록했다. 1970년대 후반 서울 시내에 삼겹살집이 대중화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1980년대 계곡에서 삼겹살을 먹는 모습.

한국 최초 식육 마케터 김태경 박사도 자신의 저서 '삼겹살의 시작'에서 "삼겹살의 시작은 1970년대 중반 경제발전과 더불어 육류소비 증가에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1980년대 휴대용 가스버너 일명 '부루스타'의 보급이 삼겹살의 대중화에 힘을 실었다"고 분석했다. 산이나 계곡, 바닷가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 모습은 이 때부터 시작됐다.

한국식 쌈. 게티이미지뱅크

삼겹살을 먹는 방법인 '쌈'은 삼국시대로 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채소에 쌈을 싸 먹는 방식은 한반도뿐 아니라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도 존재했다. 하지만, 익히지 않은 채소 쌈을 즐겨먹는 나라는 한국이 아시아에서도 유일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지금의 쌈 먹는 방식이 자리를 잡았다. 상추에 장을 얹어 먹는 채소쌈은 왕실뿐 아니라 평민들도 대중화된 음식이었다. 양반가에서는 먹을 게 없으니 상추쌈에 밥을 싸 먹는다는 한탄이 있었을 정도였다. 조선 말기에는 지금과 똑같이 상추 외에 쑥갓, 깻잎, 호박잎 등도 쌈채소로 인기를 얻었다.

"아시아문화 패권 뺏긴 中, '시기'와 질투'에 거짓 선동"

중국 유튜버가 김치를 버무리고 있다. 그는 해당 영상 태그에 '중국음식'이라고 달아 논란이 됐다. 유튜브 캡처

'김치', '한복', '삼계탕', '사물놀이', '농악'...

중국이 뺏으려 한 한국의 문화는 한두개가 아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K팝'의 기원이 중국음악에 있다"며, "한발 양보해 '아시안팝'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다. 이쯤 되면 '분노'를 넘어 '기가 찬다'가 더 맞을 거 같다.

세계적인 K팝 그룹 'BTS'. 일부 중국인들은 K팝도 중국음악에 기원했다며, '아시안팝'으로 명칭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중국이 왜 한국의 문화를 탐내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최근 세계적으로 K팝을 필두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반면, 중국에 대한 호감은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문화 수호에 앞장서고 있는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헤럴드경제에 "아시아 문화의 중심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동하는 것에 대한 중국인의 시기와 질투가 극에 달하고 있다"며 "이에 '비뚤어진 애국심'을 가진 일부 중국인들이 왜곡과 거짓 정보를 생산하고 여론이 호도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2월 4일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한복을 입은 한 공연자가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

문제는 중국 정부가 이런 거짓정보를 묵인하고, 오히려 선동에 앞장 서 데 있다. 지난해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는 개막식에서 한복을 입은 여성이 등장했다. 또 중국에 수출하는 한국 김치에 '파오차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강제하기도 했다.

서 교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중국에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한국 문화를 더 발전시켜 세계에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한국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채널이 굉장히 많았지고 있고, 또 우리는 이를 잘 활용하고 있다"며 "채널의 다양화로 여러 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맛는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면서 한국은 한 발 더 문화강국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