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서바이벌 경쟁’이라는 타이틀 안에 대놓고 특혜와 차별을 가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고 끊임없이 주입하며, 혹독한 시작을 해보라고 전 국민 앞에 세운다. 날 때부터 생존경쟁을 시작하는 한국 사회의 잔혹한 단면은 케이블 채널 엠넷 JYP 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 데뷔 프로젝트 ‘식스틴’을 통해 선명하게 그려졌다.

지난 5일 케이블 채널 엠넷 ‘식스틴(SIXTEEN)’ 이 첫 방송됐다. JYP엔터테인먼트와 케이블 음악 채널 엠넷이 손을 잡고, 미쓰에이의 뒤를 이을 새 걸그룹 트와이스(Twice)의 멤버를 선발하는 초특급 프로젝트다. 앞서 YG엔터테인먼트가 엠넷과의 합작(‘윈’)을 통해 위너의 멤버를 선발했던 것과 같은 방식의 프로그램이다.

청소년 장래희망 3순위에 손꼽히는 ‘직업군’인 연예인을 선망하는 아이들이 넘쳐나기 시작하며 이 시장은 포화상태가 된지 오래다. 분야를 막론하고 빚어지는 일이지만 가요시장의 경우 더하다. 매해 숱한 아이돌그룹이 쏟아져 나오지만 막강한 팬덤을 형성하며 시장에서 자리를 잡는 팀은 손에 꼽을 정도다. 데뷔 이후의 생존경쟁도 치열하지만, 데뷔까지의 과정도 만만치 않다. 연습생으로만 수년을 보내다가 데뷔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시간만 수년을 보내 경쟁력이 떨어진 사례도 있다. 상품가치를 잃어 기존의 소속사를 떠난 연습생은 운이 좋으면 새로운 소속사를 만나 얼굴이라도 비출 기회를 얻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숫자가 가장 찬란할지 모를 시절에 흘린 피땀을 보상받지 못한다.

‘이 바닥이 이렇게 힘들다’고 ‘식스틴’은 대놓고 말해준다. 그러니 살아남기 위해선 혹독하고 잔인한 경쟁을 해야한다고 말이다.

이날 방송된 ‘식스틴’에선 일단 시청자에게 눈도장을 찍을 16인의 JYP 소속 연습생이 공개됐다. 그 중 7명은 ‘메이저 그룹’에 속한 걸그룹 ‘트와이스’의 후보생이고, 나머지 9명은 ‘마이너 그룹’이다. 다 같은 연습생이지만 연습생의 세계에서도 신분이 다르다.

JYP 엔터테인먼트의 트레이닝 과정은 잔혹한 서바이벌이었다. 학창시절 석차와 빈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과 편견을 받았다면, 이 프로그램은 드러내놓고 아이들을 가른다. 학교의 우열반처럼 16명의 아이들은 상위그룹과 하위그룹으로 분류됐다. 대우도 당연히 다르다. 메이저그룹은 연예인 수준의 대우를 받지만 마이너그룹은 하층민과 다름없다. 이동수단과 숙소는 물론 연습실 사용시간까지 철저하게 상위그룹 위주다. 특히 연습실 사용시간의 경우 마이너그룹은 ‘오후 9시부터 오전 9시까지’였다. 잠자기에도 모자랄 이 시간에 밤낮을 바꿔가며 하는 연습은 실력 향상에 얼마나 기여할까도 의문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라는 의도적인 잔혹함이며, 그것이 훗날 화려하게 데뷔한 ‘트와이스’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일지라도 이 과정을 버티는 TV 속 연습생들의 일상이 대단해보이면서도 씁쓸했던 것은 이 프로그램이 한국 사회의 축소판처럼 비쳐졌기 때문이다.

생존경쟁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인지도 모르겠다. 유치원 시절부터 ‘장미반’과 ‘잡초반’ 등으로 학생들을 성적에 따라 가른다. 일등만을 강요하고, 일등만을 대접해주는 환경에서 옆자리의 친구를 밟고 일어서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네 꿈을 이루기 위해선 더 치열하게 덤비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선 그것을 노력이라고 말했다. 승자독식 사회에서 숨이라도 쉬며 살아가기 위해선 별 수 없다.

‘식스틴’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뚫기 위해선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무너져내리는 자존감을 일으켜세우고, 치욕과 울분을 견디라고 말한다. 10년차 연습생도, 이미 데뷔조에 속했던 경험이 있었다고 예외도 아니다. 도태되면 차별받고, 도태되면 버림받는다. 이 같은 생존경쟁 사회의 치명적인 단점은 일등이 아닌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패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열패감에 휩싸이게 한다는 점이다.

한 개인이 열패감에 젖어드는 것은 ‘모멸감’이 유발하는 삶의 형태들이라고 사회학자 김찬호 교수는 ‘모멸감’이라는 저서를 통해 강조했다. 책에서는 지독한 경쟁구도로 인해 한국사회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하나는 ‘모멸감’이라고 꼬집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끊임없이 모멸적인 시선을 건네며 굴욕적인 감정을 일깨워준다. 보이지 않는 폭력이 경쟁사회 안에선 일상화되고 있는 셈이다. 말이 좋아 ‘치열’한, 이 사회의 생존경쟁이 잔혹한 것은 승자와 패자를 가르고, 패자는 열패감을 벗기 위해 또 다른 패자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왕따, 악성댓글, 갑을관계 등 곳곳에선 계층을 가르며 자기 안의 열패감을 씻기 위한 미약한 우월함을 찾아 또 다른 약자를 만들고 짓밟는다. 그런데 과연 일등이 아니라고, ‘트와이스’ 멤버로 발탁되지 않는다고 우리의 삶은 여기가 끝일까. ‘식스틴’ 속 연습생들의 반복될 일상은 사실 그 이전과 이후에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삶의 한 모습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잔인했다. 다만 박진영은 앞서 ‘식스틴’ 기자간담회에서 “내 새끼들을 뽑는 자리이기 때문에 일부러 무서운 상황, 좋은 상황에 내놓고 잘 판단하려고 한다. 원래 잔인한 회사는 아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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