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베를린영화제 화려한 개막
불길한 세상에 대한 근심이 드리워진 스크린을 뒤로하고 은막의 여신이 레드카펫 위에 강림했다. 미국의 제인 폰다와 이탈리아의 이자벨라 로셀리니, 중국의 장쯔이 등 세계적 여배우가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레드카펫을 밟기 시작할 무렵 베를린의 하늘에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레드카펫 주위에는 페미니스트 단체에서 나온 여성 시위자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토플리스(상의를 탈의한 차림)로 ‘여성할례반대’를 외쳤다. 칸, 베니스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제63회 베를린국제영화제가 때마침 내리는 눈을 맞으며 7일 오후(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왕자웨이 감독의 ‘일대종사’ 상영으로 화려한 개막을 알렸다.
개막 전 발표된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초청작은 전 세계 곳곳에서 위기를 맞는 삶과 세계에 대한 염려를 담아내고 있다.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침체, 삶을 벼랑 끝으로 몰고가는 가난, 자유를 옥죄는 정치권력의 박해, 부패한 제도, 환경의 재앙, 취약한 건강보험, 방사능 오염 등 굵직한 사회 이슈를 다룬 영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영화집행위원장 닥터 코슬릭은 최근 개막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특히 전 세계적 경제침체, 사회불평등과 관련된 사회 이슈가 많은 초청작에 반영됐다”며 “위기로 인한 집단적인 상처와 다양한 사회에 끼친 여파를 보게 될 것”이라고 올해의 경향을 밝혔다.
유럽의 한 집시 가족이 직면한 가난을 그린 보스니아 출신 다니스 타노비치 감독의 ‘언 에피소드 인 더 라이프 오브 언 아이언 피커’와 루마니아 사회의 부패와 타락을 담은 칼린 피터 네처 감독의 ‘차일드스 포즈’, 천연가스 시추 문제를 다룬 구스 반 산트 감독의 ‘프라미스트 랜드’ 등이 대표적이다. 자국에서 반체제 활동 지원 혐의로 활동 금지를 당한 이란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신작 ‘클로즈드 커튼’은 정치적 이슈를 담은 작품으로 꼽힌다.
이와 함께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여성 감독의 작품과 동유럽 영화의 강세다. 또 베를린영화제와 함께 열리는 유러피안필름마켓(EFM)에선 아시아 영화, 특히 중국 영화시장의 급성장이 ‘화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영화로는 장편 경쟁 부문에 홍상수 감독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 초청돼 스티븐 소더버그의 ‘사이드 이펙트’와 브루노 뒤몽의 ‘카미유 클로델, 1915’ 등 18편의 다른 영화와 함께 황금사자상을 다툰다. 홍 감독의 작품을 비롯해 한국 영화는 단편 경쟁, 파노라마, 포럼 등 각 섹션에 총 10편이 초청됐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는 17일까지 계속된다.
이형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