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2회> 총칼 없는 전쟁 12
유호성이 황홀경에 빠져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정확히 말해서 1974년산 치타의 조수석 4점식 시트벨트와 굵은 파이프로 제작된 롤바에 강유리를 유관순 열사처럼 묶어놓고 슬슬 단추를 풀어냈을 때… 아니, 브래지어와 함께 드러난 38인치 A컵 수준의 젖가슴을 보고 놀라 입을 함박처럼 벌렸을 때… 거성그룹 그레이스 팀의 미캐닉 현성애는 문득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할까?’
5개국 관통 랠리 대회가 불과 열흘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진 탓만은 아닌 것 같았다. 기분이 야릇하다가도 가끔씩 섬뜩한 느낌이 드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여자의 육감으로 감지해 낸 위험경보일 것이라고 그녀는 판단했다.
현성애는 황급히 1974년산 치타를 보관해 놓은 패독으로 달려 나갔다. 패독이란 카레이스 경기장 안에서 차량검사 및 정비, 차량보관, 세차 등을 행하는 장소를 일컫는 말이다. 원래는 마구간에 딸려서 말을 길들이는 작은 목장이나 혹은 경마장에 딸린 잔디밭을 일컫는 말이었다고도 한다.
‘역시… 다른 여자를 찾아 나선 게 틀림없어.’
그녀는 즉시 사무실로 되돌아와 치타와 연결된 GPS 추적장치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원래 랠리에 출전하는 차량에는 사막이나 외진 계곡에 고립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위성으로 추적할 수 있는 GPS를 장착하게 마련이다. 그런 장치를 탑재하고도 물속에 빠지거나 전파가 닿을 수 없는 외딴 곳에 처박혀 실종되기도 하는 경우가 종종 생겨나곤 한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1974년산 치타가 머물러 있는 곳은 어이없게도 한탄강변 말고개 근처, 소위 아흔아홉 구비라고 불리는 한적한 곳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옆자리에 앉아 있던 권도일에게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이 인간이 또 바람기가 들었나 봐요. 이 시간에 어쩌자고 한탄강변엘 찾아 간 걸까요?”
“혹시 워밍업이라도 하려는 게 아니었을까요?”
“그럴 리가 없어요. 워밍업을 하는 거라면 차량이 계속 이동 중이어야 마땅한데… 기록을 보면 벌써 두 시간이 넘도록 한 곳에 머물러 있거든요? 워낙 바람기가 많은 인간이다 보니 어떤 여자와 놀아나고 있는 중일 거예요.”
“뭐라고요? 두 시간째 한 곳에 머물러 있어요? 혹시 사고라도 난 게 아닐까요?”
“어머나, 그런 걸까요?”
현성애는 제풀에 놀라 몸을 움찔했다. 어제 저녁이던가… 이번 기회에 유호성을 죽여 버리던지 혹은 척추라도 부러뜨리기 위해서 스트럿 바 하나를 슬쩍 비틀어 놓으려 했던 죄책감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생각이 씨가 된다고 했으니 실제로 스트럿 바를 비틀어 놓지는 않았더라도 굽은 산길을 주행하다가 하중을 못 이겨 도로를 이탈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사고가 아니라면 두 시간이 넘도록 한 곳에 머물러 있을 리가 없지요. 현성애 씨. 어서 따라나와요. 함께 찾아가 봅시다.”
현성애는 권도일의 재촉을 받으며 허겁지겁 따라나섰다. 사무실부터 한탄강변 말고개까지는 고속으로 달려서도 한 시간을 넘어서는 거리였으므로 서둘러야 했다. 만약에 큰 사고라면 5개국 관통 랠리에 출전하기까지 차량을 수리할 시간 여유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유호성이 부상이라도 당했다면 아예 출전은 물 건너 간 것인지도 몰랐다.
“계속 추적장치를 켜고 계세요. 가능한 한 최고속도로 쏘겠습니다. 이럴 때 로열 골드를 몰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무리 급해도 조심해서 운전하세요. 권 전무님도 귀하신 몸이잖아요.”
그녀가 대답을 끝내기도 전에 차는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장차 랠리 대회의 지원용으로 준비해 놓은 산악도로용 SUV 차량이었다.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순간에도 강유리의 탐스러운 젖가슴에 놀란 유호성은 아직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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