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지난해 영국의 한 공영주차장에서 발굴된 유골이 중세 영국 플랜태저넷 왕가의 마지막 왕인 ‘리처드 3세’의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 레스터 대학 발굴팀은 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통해 집요한 추적으로 일군 이날의 성과를 세계 언론에 알렸다. 발굴팀은 “DNA 분석 등 수개월에 걸친 정밀 조사 결과 유해의 주인공이 리처드 3세라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리처드 3세의 유골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발굴팀의 이번 작업은 ‘집요한 끈기’가 빚어낸 기념비적인 성과였다.
지난해 9월 레스터의 한 주차장에서 리처드 3세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견한 뒤, 발굴팀은 왕가 후손인 캐나다인 마이클 입센 씨와 DNA 비교를 하는등 주인공을 밝혀내기 위한 분석 작업을 벌여왔다.
발굴된 유골을 리처드3세로 추정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앞서 고지도와 현대지도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유골이 매장된 옛 프란체스코회 수도원의 터를 찾아냈기 때문. 이에 유골 발견 이후, DNA 분석에 착수한 발굴팀. 철저한 과정이었다. 발굴팀의 수장인 리처드 버클리 교수는 “유골 확인 과정에서 엄격한 과학적 분석을 거쳤다”면서 리처드 3세 누이인 ‘요크의 앤’의 직계 후손을 찾아 모계 유전자를 비교하는 방법으로 진행됐다고 밝혔다. 그 결과 유골에 대한 탄소연대가 1455~1540년으로 나타났으며, 유전학자인 튜리 킹 교수는 “직계 후손 2명과 유골의 유전자를비교했더니 혈통이 일치했다”고 밝혔다. 생물고고학적 분석 결과도 이 모든 결론을 뒷받침했다.
레스터 대학의 생물고고학자인 조 애플비 교수는 “발굴된 유해에서 비정상적인 척추 측만증이 확인돼 리처드 3세가 ‘꼽추왕’으로 알려진 부분과 맞아떨어진다”면서 “유골의 주인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사이의 남성으로, 사망에 이른 시점에 두개골 8곳 등 10군데를 다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두개골 부위의 큰 상처 2곳은 깊이가 10㎝나 돼 직접적인 사망 원인으로 보였으나 다만, 유골의 주인은 척추측만증이 심했지만 알려진 것처럼 허리가 굽은 꼽추는 아니며, 팔 골격도 정상이었다.
리처드 3세는 1485년 장미전쟁을 끝낸 보즈워스 전투에서 랭커스터 가문의 리치먼드 백작 헨리 튜더(헨리 7세)에게 패해 32세로 일기를 마쳤다. 1483년 형인 에드워드 4세 왕이 사망하자 조카인 에드워드 5세를 제치고 왕좌에 올랐으나, 전투 중 사망한 영국 최초의 왕으로 재위 기간은 26개월뿐이었다.
그는 애초엔 레스터에 있는 프란체스코회 수도원에 묻힌 것으로 알려졌으나 1530년 무렵 수도원이 파괴돼 무덤의 행방을 알 수 없었으며, 16세기에 시신이 파헤쳐져 강에 버려졌다는 등 가설도 제기된 미스터리한 왕이었다.
발굴팀은 리처드 3세의 시신이 수의와 관을 사용하지 않고 매장, 팔이 묶인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히며, 리처드 3세의 유골은 이번 발굴에 따라 주차장 터를 떠나 조만간 인근 레스터 성당에 안치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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