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1회> 총칼 없는 전쟁 (11)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어머, 시트를 조일수록 몸이 등받이에 딱 달라붙어요. 레이싱을 하려면 이래야 하나? 옴짝달싹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요, 레이싱을 잘 하려면 자세확립이 기본이지요.”
그는 벨트를 매주는 척 하면서 그녀의 두 팔을 가지런히 모아 하늘로 향하도록 했다. 그녀는 아무런 의심 없이 두 팔을 올렸고, 유호성은 모아 잡은 그녀의 두 손에 레이싱 글러브를 끼우기 시작했다.
“뭐 하려는 거예요?”
“유관순 열사 놀이부터 하자는 겁니다. 자, 자… 가만히 있어 봐요. 글러브가 꼭 끼워져야 좋거든요?”
그녀의 손이 앙증맞도록 작았기 때문일까? 혹은 레이싱 글러브가 남자용이라서 품이 넉넉했기 때문일까. 손가락 부분은 쉽게 들어가는가 싶더니, 글러브 한 쪽에 그녀의 마주 잡은 손바닥까지 밀어 넣기엔 아무래도 뻑뻑했다. 하지만 막상 글러브가 끼워지자 그녀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양 어깨와 배에 둘러진 풀 하니스 시트벨트는 몸을 움직일수록 점점 단단하게 조여져 왔고, 롤바를 사이에 두고 합장한 듯 마주 쥔 손에 끼워진 레이싱 글러브는 좀처럼 벗어지지 않는 할머니들의 옥양목 버선처럼 굳게 덧씌워져 있기 때문이었다.
“자, 이 자세로 기도하듯 이미지 레이싱을 하는 거예요. 우선 엔진소리부터 들어볼까요?”
유호성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1974년 산 치타의 시동을 걸었다. 잠시 캬르릉~하는 쇳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중저음의 엔진 배기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유관순 열사 놀이는 뭐고 이미지 레이싱은 또 뭐예요? 그나저나 날 이렇게 묶어놓고 뭘 어쩌려는 거지요?”
“일단 무드부터 잡자는 겁니다.”
“무드를 잡다니요? 지금 워밍업 드라이빙을 항려는 게 아닌가요?”
“아직 어색한 관계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고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이까짓 죄는 용서받을 수 있을 겁니다.”
어느 책에서 외운 말인지, 유호성은 스스로 생각해도 기막힌 대사를 읊어나갔다. 하긴 맞는 말이었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사랑의 속성은 쟁취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유호성이야말로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사랑? 용서? 어머나… 미치겠네.”
강유리는 잠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순간 고함이라도 질러야 할까? 하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판단을 정확히 해야 할 터. 우선 생각부터 정리해야 했다. 유호성이 나를 사랑한다고 했던가? 내가 오히려 유호성에게 사랑을 갈구해야 할 입장 아니었던가?
이런 궁리를 하는 동안 유호성은 조심스레 그녀의 윗도리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여자의 옷이란 원래부터 2차방정식처럼 생겨먹어서 서두르거나 완력을 가할수록 오히려 옥죄어드는가 싶다가도, 부드럽게 터치할수록 설렁설렁 잘도 벗겨지곤 했다.
“호성 씨! 천천히… 천천히 해요.”
이건 또 무슨 조화인지…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부드러운 터치가 필수라는 뜻인지, 혹은 어설프게 운만 떼지 말고 확실하게 하라는 뜻인지… 강유리는 이렇게 말하고도 제풀에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어쩌면 이렇게 예쁠까. 어쩌면…”
단추를 풀어내자 브래지어가 드러나고 아름다운 그녀의 가슴골이 엿보였다. 명색이 38인치, A컵 수준의 젖가슴을 보자 유호성은 황홀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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