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 삶이 따뜻한 대한민국 찾기… ② 유가족들의 희망찾기
사랑하던 외동딸 먼저 보내고 우울증에 늘 자살유혹 시달려
유가족 지원센터서 도움 손길 자조모임 참가 위로받고 치유
“제가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의전화’와 자조(自助ㆍself help)모임 덕분이었죠. 박인순 선생님이 끊임없이 희망을 주셨고, 또 저와 같은 일을 겪은 분들을 만나면서 그분들로부터 삶에 대한 용기를 얻었어요.”
자살자 유가족인 장영숙(가명ㆍ58ㆍ여) 씨는 자조모임이 자신을 구했다고 말한다. 장 씨는 2011년 5월 외동딸이 세상을 떠나자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고, 심지어 딸을 따라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유혹에 시달렸다. 그녀에게 처음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한국생명의전화가 운영하는 자살자유가족지원센터의 박인순(57) 씨였다. 박 씨 역시 자살로 아들을 잃은, 국내 최초 자살자유가족 출신 상담사다.
장 씨는 한때 딸의 죽음을 입 밖에 꺼낼 수조차 없었다. 남들의 수군거림과 싸늘한 눈초리가 두려워 가까운 친구에게조차 딸의 사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음에 묻어 둔다고 사라질 고통이 아니었다.
“태풍이 몰아치던 어느 날 자조모임에 나가서 딸 아이가 남긴 유서를 읽어준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다들 펑펑 우는 거예요, 자식이 왜 떠났는지조차 모르는 부모도 많거든요. 그 말 못하는 아픔, 우리는 알 거든요. 다른 거 필요 없어요. 누가 아프다고 하면 함께 있어 주고, 밥 먹어 주고, 같이 잠 자 주고 그래야 하는데. 우리는 누구한테 이야기도 못하니… 그래서 자조모임에 나오다 보면 유가족들이 피를 나눈 가족보다 가까운 가족이 돼요.”
하지만 장 씨처럼 유가족 자조모임을 통해 삶의 의지를 되찾는 경우는 드물다. 해마다 발생하는 자살자유가족은 대략 10만명. 하지만 비교적 활성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서울시자살예방센터, 한국생명의전화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는 2007년부터 한 달에 한 번 ‘자작나무’라는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생명의전화도 2010년부터 자조모임인 ‘나나애나무’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기관은 유가족들이 서로 위로하면서 희망을 되찾을 수 있도록 애도상담 프로그램과 유가족 캠프 등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모임으로는 다음의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카페(http://cafe.daum.net/suicidesurvivor)가 가장 활성화된 자조모임으로 꼽힌다.
한국생명의전화 나선영 사무국장은 자조모임 운영의 어려움으로 무엇보다 대상자 확보를 꼽았다. 홍보 부족과 네트워크의 부재로 참여인원이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 사무국장은 “자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유가족들이 초기에 지원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 노원구처럼 자살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이 정신보건센터로 연락을 취하는 등 연계구조가 확실히 정착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공개정보를 꺼리는 유가족의 성격상 민관단체 등과의 네트워크 구성을 통해 자살자유가족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규섭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무엇보다 한국에선 자살에 대한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는 문화가 문제”라며 “자조모임을 통해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줄이는 효과를 얻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어떤 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는지 배우는 계기가 되는 등 심리적 치유 효과도 크다”고 설명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교수는 “자조모임을 하게 되면 상실감이란 공통분모를 통해 사회적 연대감을 맺어가는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불행한 일을 겪은 사람이 홀로 길을 걷다 보면 두려움이 앞서기 마련인데,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함께 거리를 나서면 동질감과 보호본능이 생긴다는 지적이다. 윤 교수는 “이제 자살자유가족에게 돌을 던지기보다 그들에게 희망과 극복의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체계적인 네트워크와 경제적ㆍ법률적 지원을 통해 자살자유가족이 미래의 꿈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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