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자인 유어 라이프 <2> 문화소비에 가치를 더하다
버려진 가구 활용 생태공간 꾸미고 쓰레기장을 벽화·화단으로 조성
주부·대학생·직장인 다양한 계층 지역축제 FM방송에 PD·DJ 참여
강좌·북카페·예술활동 적극 동참 방관자서 이웃·마을복원 주체로
도시에 마을이 열리고, 아파트숲 속 사람들은 이웃과 ‘부족’이 된다. 현대 문화의 새로운 가치를 소모임과 지역 공동체에서 재발견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K-팝이나 한국영화, 출판만화 등 최근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엔터테인먼트산업으로 ‘소프트파워’의 경제적ㆍ정신적 가치에도 주목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풀뿌리 관계망 속에서 공동체 문화의 저변 확대를 이뤄야 ‘지속 가능한 문화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스몰’과 ‘로컬’이 키워드다.
가장 눈에 띄는 흐름은 ‘마을’의 재구성과 재발견이다. 경쟁과 학벌 지상주의로부터 새로운 교육을 고민하는 학부모들이 지난 몇 년간 각 지역에 기반을 둔 ‘공동육아’와 ‘대안학교’ 등 교육 운동을 펼쳐왔고, 이는 마을 공동체의 거점이 됐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일대의 ‘성미산 마을 운동’이 대표적이다. 대안교육에 대한 고민은 농수산물 직접 유통 및 구매 등을 목적으로 한 생활협동조합 운동으로 이어졌고, 이를 바탕으로 한 문화 생산 및 수용 활동이 더해졌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자발적인 마을 공동체 운동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말 연구 결과 보고서에서 ‘2013년 문화예술의 새로운 흐름 분석 및 전망’으로 ‘공동체(community)와 예술, 함께 길을 찾다’를 핵심적인 항목 10가지 중 하나로 제시했다. 마을공동체 회복을 위한 문화예술 프로젝트 붐이 일고 있고, 주민이 예술의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현상을 주목한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서울시 마을 공동체 종합지원센터를 만들었다. 유창복 센터장은 마을 공동체 운동의 의미에 대해 “경제 발전과 고속 성장 속에서도 대다수 국민은 생활이 어려워지고 고용은 불안하며 부녀자와 어린이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흉악 범죄에 노출돼 있다”며 “이웃과 지역 사회의 관계망에 기초해 생활의 고통과 필요를 나누고 공동 교육 및 생활 협동, 일자리 창출을 할 수 있는 ‘마을경제’ 혹은 ‘호혜경제’가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의 상처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유 센터장은 이어 “이웃과 마을이라는 1차적 대면접촉에 기반해 문화 공동체를 만들고, 주민들이 예술 창작과 소비의 주체가 되면 결국 이는 전체 문화의 국가적인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시가 선정한 우수 마을 공동체 15곳을 보면 버려진 가구 목재를 이용해 지역주민이 공공예술가와 함께 생태문화공간을 조성한 도봉구, 쓰레기장을 벽화와 화단으로 꾸민 관악구, 할머니의 밥상머리 교육과 세탁소 아줌마의 빨래비법 강좌 등 지역 주민 스스로가 강사도 되고 수강생도 되는 구로구의 ‘예술대학’ 등 사례가 다양하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 각 지역에서도 유기농 먹을거리를 중심으로 한 생활협동조합은 기본이고 북카페나 마을장터, 공동교육, 수공 및 목공예, 문화강좌, 공연 및 영화 제작 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마을 공동체도 적지 않다. 여성, 노년층, 청소년,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와 연대한 프로그램도 눈에 띈다.
영화 및 방송 등 미디어를 활용한 공동체의 형성 및 문화 활동도 주목할만한 흐름이다.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에 따르면 지난해 9월 20일부터 23일까지 전북 익산에선 지역 축제인 ‘서동축제’가 열렸는데, 라디오 교육을 받은 일반 시민들이 참여해 현장에서 미니 FM 방송국을 차려 진행했다. 고교생부터 주부, 대학생,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 직업의 시민들이 PD와 엔지니어, DJ, 게스트까지 맡았다. 시민 대상의 미디어교육 중심에는 영상미디어센터가 있는데, 이는 ‘공공접근권’이라는 개념에 근거한 영상문화교육기관이다.
국내에서 미디어센터의 본격적인 출발은 지난 2002년 설립된 미디액트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 활용 대중강좌, 교육 프로그램과 함께 접근권이 취약한 유아, 여성, 청소년, 노년층, 이주노동자 등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 노인영화제가 전국 각지에서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다. 지난 2010년에는 10여년 이상 전국을 돌아다니며 각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마을 영화’를 찍어온 신지승 감독이 세계마을영화축제를 양평에서 열기도 했다.
지난 1985년 프랑스 사회학자 미셸 마페솔리는 ‘부족의 시대: 대중사회에서의 개인주의의 쇠퇴’라는 책에서 도시에서 공동의 관심사를 나누는 사람들의 소규모 집단을 가리켜 ‘도시 부족’이라고 명명했다. 대체로 비격식적인 상호작용을 하며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냉혹한 논리를 거부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현대사회의 익명성과 개인주의에 대한 반발로 ‘공동체’에 대한 요구와 중요성이 날로 더한다는 의미다. ‘마을’, ‘공동체’의 재발견이며, 풀뿌리 문화의 힘에 대한 재인식이다.
이형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