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1회> 총칼 없는 전쟁 (51)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유민 회장의 질문을 받은 소위 천재 비서는 이번에야말로 어깨를 쭉 펴고 당당하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야 쫓아가면 되지요. 제가 총대를 메겠습니다. 까짓 거, 달나라도 아니고 중국이 멀면 얼마나 멀겠습니까? 비행기로 세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길 막힐 때 서울에서 대전 가기보다 빠릅니다.”

비행기로 세 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 하지만 지옥과도 같은 유민그룹 비서실을 벗어날 수 있다면 삼천 광년이 걸린다고 한들 마다하랴. 월급만 또박또박 받을 수 있다면 평생 동안이라도 유민회장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고 싶었을 것이다.

“좋아, 자네가 총대를 메. 즉시 뛰쳐나가서 광고회사 CF 감독 한 명 낚아채고 중국으로 가라고. CF는 질보다 속도 우선이야. 알겠지?”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다른 비서들도 살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중국 베이징 대학을 졸업한 비서관이 어깨를 겯고 나섰다.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살자는 의도가 분명했다.

“회장님,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5개국 관통 랠리 대회가 FIA 승인을 받지 않는 비공식 경기라 하더라도 랠리 팀의 뒤를 따르며 CF 촬영을 하려면 중국의 허가를 받아야만 할 게 뻔합니다. 마침 제가 중국어에 능통하고 중국에 인맥도 널리 펼쳐놓았으니 제가 동행하겠습니다.”

“들어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군. 좋아, 그렇게 해.”

유민 회장은 즉석에서 허락했다. 그만큼 마음이 급하다는 반증이었다. 그러니 다른 비서들이 보고만 있을 리 만무했다.

“이왕이면 힘들여 찍은 CF를 우리나라 방송용으로만 써먹어서야 되겠습니까? 두 분 비서관이 CF 촬영을 하는 동안 저는 일본과 중국 전역, 그리고 몽고를 두루 다니면서 각 나라마다 광고를 걸 수 있도록 섭외하겠습니다. 마침 저도 중국, 몽고, 일본의 방송국 매체 부 직원들과 교류를 이어오고 있었거든요?”

이번에는 가장 경력이 긴 노장비서가 브리핑이라도 하는 것처럼 조목조목 의견을 피력했다. 해외에 CF 광고를 걸기 위한 수단과 경비내역까지 들먹이는 것을 보면 마치 오랫동안 계획한 일을 추진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사실은 유민 회장으로부터 멀리 탈출하고자 하는 눈물겨운 노력일 뿐이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계속 이어져 온 악재로 인해 신경이 예민해진 유민회장을 피하려는 노력이 뜻밖의 아이디어로 터져 나온 셈이었다.

“그것도 좋은 생각이야. 역시 내가 인복은 있는 가봐. 내 주위의 비서들이 한 결 같이 천재들 뿐인 줄을 어찌 여태껏 모르고 있었을까?”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그럼 저희들은 경리부에서 예산을 타낸 뒤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알았어. 돈들 아껴서 쓰라고.”

비서들이 줄줄이 빠져나가자 유민 회장은 느긋하게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고, 잠시 서운하게 여겼던 대선주자와 높은 양반들의 심중도 어느 정도는 헤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긴, 관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백성들 입이지. 북한에서 영내 통과를 허용했다가 나중에 배신을 때리면 돌이킬 방법이 없으니 잠자코 들 있었을 게야. 백성들 원성을 피할 길이 없을 테니까… 알고 보면 그들도 불쌍하지.’

유민 회장의 마음 씀씀이는 어느새 하해와 같이 평온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는 담배를 꽁초까지 피우고 난 뒤에야 전화기를 끌어당겼다. 방송을 타는 일이 원만히 잘 해결될 것이라고 아들 호성이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장차 전 세계적으로 전파를 타게 될 아들 녀석의 모습이 벌써부터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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