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 요리노의 일본만화 ‘오늘의 네코무라 씨’는 고양이가 주인공이다. 직업은 가정부. 그림을 그리다 만화가를 꿈꿨던 신인 여배우 하연수가 꼽은 ‘인생의 만화책’ 정도. 그림체가 생각보다 거칠고 소박하다. 스토리는 흥미롭다. 하연수는 “이 만화가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정말 특이할 것 같다”고 한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고양이가 열심히 사람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내용이다. 따뜻하고 감동적이다. 열여덟의 느릿느릿한 4차원 소녀 민세이를 연기한 배우 하연수를 닮았다.
올초 ‘연애의 온도’로 데뷔해 케이블 채널 엠넷의 뮤직드라마 ‘몬스타’를 끝낸 하연수는 데뷔 1년 만에 스포트 라이트를 받는 대형신인으로 떠올랐다. 드라마 도중 화장품 음료를 비롯한 무려 9개의 광고를 따냈고, 김병욱 PD의 새 시트콤 ‘감자별 2013QRE’의 여주인공으로도 발탁됐다. 단 한 번도 꿈꾸지 않은 길에 첫 발을 디뎠는데, 장타를 날려버렸다. 1990년생, 올해로 스물셋. 인형같은 외모에 교복이 잘 어울리는 ‘어린 소녀’일 것 같은 하연수는 차분하고 단단했다.
“어렸지만 계획과 목표를 가지고 살아왔어요. 유치원 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초등학교 때는 만화가를 꿈꿨어요. 예중에 다니며 기본을 다진 뒤에 만화가가 되고 싶어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 진학했어요. 자라면서 꿈은 조금씩 달라졌어요. 나중엔 어른들이 읽을 수 있는 동화책을 만들거나 ‘북아트’를 하고 싶었죠. 10년 넘게 쉬지 않고 달리기만 했어요. 배움에는 왕도가 없는 건 분명한 사실인데, 그 나이 때엔 만족도 빨리 찾아오더라고요.”
그림만 그리던 소녀는 숱한 알바를 해오던 중 쇼핑몰의 피팅모델을 시작했다. 꽤 유명했다. 하연수의 피팅모델 시절 사진이 인터넷에 오르며 누군가 “데뷔했으면 좋겠다”는 글을 남긴 것이 이병헌의 소속사인 BH엔터테인먼트에 발탁된 계기였다.
당연히 ‘배우’라는 직업은 하연수의 인생계획 안에 없었다. 소속사에서는 “누구에게서도 본 적 없는 개성이 있다”는 확신에 4개월간 삼고초려했다. 하연수는 의아했다. “어릴 때는 못생겼다고 생각했고, 외모에는 관심도 없어 로션도 안 바르고” 다녔을 만큼 소탈한 성격인데 배우라니. 물론 지금은 일본 유명 여배우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ooo닮은꼴로 불릴 만큼 ‘예쁘고 신비로운 외모’로 정평이 나있다. 이 역시 당혹스러운 눈치다. 앞으론 “닮은꼴보다는 배우 하연수로 불리고 싶다”는 바람도 있다.
첫 만남에서 입을 꾹 다문채 듣기만 했던 입장이지만, 하연수는 집으로 돌아와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봤다. 배우를 하려는 사람의 입장에서 좋아했던 영화와 드라마를 다시 찾아보기도 했다. 나탈리 포트만의 ‘레옹’, 김민희의 ‘화차’. “나만이 할 수 있는 연기도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하연수는 마침내 이 세계에 발을 들였다. 전혀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몬스타’는 하연수에겐 특별한 작품이다. 서영은이 리메이크한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를 부르며 오디션에 덜컥 붙어버렸다. “옛날 노래의 감성이 좋다”는 하연수는 민세이를 만난 이후 하루에 10시간씩 질리도록 기타만 쳤다. 열손가락 물집을 터뜨려가며 하프를 켜던 근성이 있었기에, 힘들어도 재밌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돼야 하고 그 사람이 돼야 하는 걸 느껴야 하는 것이 연기 초반엔 힘들었어요. 민세이는 너무 독특하고 제 성격과는 전혀 다른데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려웠어요. 그래서 초반엔 민세이가 아닌 하연수로 지내다, 중반이 넘어가며 세이가 된 것 같아요. 아직도요.”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보는 또 다른 인생은 사색을 좋아하고 그림을 그리며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길 좋아하는 하연수에게도 잘 어울리는 옷이었다. 지금 하연수는 배우로서 새로운 길을 가게 된 만큼 새로운 목표도 세웠다.
“이제 시작이니까 배워야 할 게 너무나 많아요. 다양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고요. 지금처럼 좋으신 선배님들 연기도 많이 보면서 나만이 가진 매력이 뭔지, 좋은 연기가 뭔지 빨리 깨닫고 싶어요. 그 매력이 무너지지 않은 좋은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이순재 선생님처럼 모든 걸 다 아는 깊은 눈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어요.”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사진=이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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