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02회> 감추어진 승부 26

란저우, 예로부터 동방과 터키를 잇는 실크로드의 교역지로 번성한 란저우는 몽신 고원과 평균 해발 1,500미터에 달하는 황토 고원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다. 사방 어디에라도 난초가 자라고, 난꽃이 청초하게 피어 있을 것 같은 이름과는 달리 대기가 언제나 오염되어 있다는 것이 흠일 뿐이다.

에어프랑스를 타고 조금 전 공항에 내린 북한 당 간부 도형철은 손수건을 꺼내어 코를 막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황사처럼 누런 연무가 잔뜩 끼어 있는 하늘만큼이나 그의 마음도 무겁기만 했다. 날은 어느새 어두워지기 시작했는데, 민둥산 너머로 해가 사라지자마자 어둠이 성큼 몰려오고 있었다.

“택시 라이, 라이!”

그는 두어 마디 아는 중국어로 택시를 잡아 세웠다. 오늘 같은 일이 생길 줄 알았더라면 평상시 중국어 회화라도 열심히 해둘 것을…. 하지만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북한에서는 중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것이 출세의 지름길이도 했지만 어째서 그동안 외면하고 있었는지 이제와 돌이키자니 마음만 서글펐다.

“한궈렌? 싸우스 꼬레앙?”

“노스 꼬레안.”

“아! 노쓰 꼬레앙, 고우 궈다오?”

운전기사는 도형철을 룸미러로 훔쳐보며 외마디 회화를 시도했다. ‘궈다오’란 국도를 뜻하는 말이었다. 이를테면 지역 순환도로를 타고 빙 돌아갈 것인지, ‘롄훠 고속공로’를 타고 질러갈 것인지를 묻는 말이었다.

“엿장수 맘대로!”

도형철은 이렇게 말한 뒤에 낡은 비닐 시트에 등을 파묻었다. 조선말을 알아들었을 리 없는 운전기사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롄훠 고속공로 램프를 타고 올랐다.

“헤이, 노쓰 꼬레앙! @*&$%#&^*%!!!”

얼마나 달렸을까? 운전기사가 갑자기 호들갑을 떠는 통에 감았던 눈을 뜨니 이건 또 뭔가? 주변 환경이라곤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 고속공로 한편으로 천하의 명차들이 줄줄이 달리고 있질 않은가?

펄이 담긴 핑크색, 광채가 도는 코발트블루, 형광 빛이 찬연히 감도는 노란색, 핏빛 립스틱만큼이나 붉은색… 랠리 포스트를 향해 달리는 클래식 명차들의 퍼레이드였던 것이다.

‘오! 저런….’

도형철은 화들짝 놀라 자세를 바로잡았다. 명차 대열의 선두를 달리는 차량이 그 유명한 ‘이소타 프라치니 타입 8A’라는 것은 알 재간이 없었다. 물론 그 뒤를 이어 줄줄이 달리는 ‘롤스로이스 레이스’라든지, ‘메르세데스-벤츠 680S’라든지, ‘BMW 328 스포르트 카브리올레’ 등등도 알아먹을 수 없었다. 다만….

‘저 아가씨는 그때 그 아가씨?’

선두 차량의 조수석에 앉아 있는 강유리가 확연히 눈에 띄였다는 말인데… 어쩐 일인지 그녀를 본 순간 그녀가 누구인지를 단숨에 기억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호들갑을 떨던 중국인 운전기사는 아직도 놀란 모습이 역력했다. 하긴 이토록 아름다운 차량들의 행렬을 평생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없었으니.

“헤이, 고우, 고우. 콰이! 콰이!”

그는 멍청히 퍼레이드 행렬을 바라보고 있는 운전기사를 다그쳤다. 일단 그 행렬을 따라가자고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비록 보디랭귀지였지만 운전기사는 도형철의 뜻을 대뜸 알아차리고는 명차 행렬의 뒤끝을 바짝 따라붙기 시작했다.

‘이제야 이름이 생각났어. 남조선 골프 선수 강유리로구먼….’ 도형철은 이렇게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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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