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경기엔 일반적으로 3명의 투수가 등장한다. 선발, 중간 계투 그리고 마무리 투수가 그들이다. 마무리 투수의 임무는 지금까지 얻은 점수를 20여개의 공으로 매조지하는 일이다. 강속구를 뿌리거나 정교한 컨트롤로 상대 타자를 압도해야만 한다. 많지 않는 공을 던지지만 그의 능력에 따라서 경기의 쟁패가 결정되기 때문에 그 역할은 막중하다.
60여년 전 중학교 1학년 때 접한 첫 영어문장이 ‘I am a boy.’였다. 그때 선생님께서 아무리 문장을 완벽하게 썼다고 해도 마침표 부호가 없다면 영점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신 것으로 기억한다. 조그만 부호로 문장이 완성되었음을 알려야 비로소 끝이 난다는 것이다.
프랑스제 명품 라이터를 만드는 장인의 말이 생각난다. 재료를 선별하고 100개가 넘는 부품을 조립하는 작업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뚜껑을 지탱하는 볼트는 자기가 직접 끼워 라이터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작은 부품으로 본인이 라이터의 최종과정을 직접 끝낸다는 것이다.
깔끔한 끝맺음은 스포츠 게임의 향방을 결정하고, 문장을 완성하며 명품을 제조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끝맺음은 한 과정이 완성되었음을 알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채비를 차리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선현들은 유종의 미를 강조해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상큼하고 산뜻한 끝맺음은 지난 과정의 완성이며 멋진 시작을 가능케 하는 첫걸음이다.
이런 쪽에서 ‘혼외 아들 문제’로 달포나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채동욱 씨의 끝맺음(?)은 찜찜하기 짝이 없다. 오랫동안 능력있는 검사로, ‘파도 파도 미담으로 가득 찼던 검찰총장으로 등장한 후 짧은 기간이지만 승승장구했던 채동욱 씨의 퇴임 모습, 그 후의 행적은 영 마땅치 않다. 형식적인 이임식, 대충대충 악수만 나누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은 처량하고 황망하기까지 했다.
‘혼외 아들 문제’는 조금 관대한 눈으로 보면 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문제가 불거진 후 채동욱 씨가 보인 행동은 그가 입버릇처럼 외치던 ‘법과 원칙’과는 거리가 멀었고 남자답지도 않았다. 법과 원칙은 진실하고 진솔한 행동에서 구체화된다.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당당히 맞서서 옳고그름을 가리든지, 사실로서 사실을 규명하거나 반박하는 정공법을 쓰지 않고 추상적이고 수사적인 장막 속에서 어물거렸던 점은 ‘명 검사’의 모습은 아니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시간이나 벌고 국민들이 잊어버릴 때까지 기다리자는 얄팍한 술수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퇴임 후엔 산사에 머물고 있다니, 숨바꼭질로 해결될 사안은 더더욱 아니다.
기성세대 특히 각계의 지도자들이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하는 것은 물질적인 풍요만이 아니다. 삶을 일구고 가꾸는 데 근간이 되는 덕목을 전승하고 가르쳐야 한다.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문제 해결은 어떻게 하는지를 몸으로 알려야 한다. 이런 노력들이 쌓여야 우리 사회는 정신적으로 더 풍요롭고 더 높은 품격을 지니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채동욱 씨의 문제 대처 방법은 좀 거시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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