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한국 사회를 달군 인물들
검찰개혁 주도한 채동욱 前총장 혼외아들 의혹으로 낙마 국민들에게 큰 실망 · 충격
댓글공작 지시 원세훈 관련재판 진행중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국론분열 뒷수습 막대한 사회적비용 초래
국가정보원의 댓글공작을 통한 정치개입 사건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과 더불어 2013년 올 한 해 단연 첫손에 꼽을 만큼 정국을 뒤흔든 대형 이슈였다. 검찰이 포털사이트 및 특정사이트에 이어 트위터 등 SNS에서 벌어진 댓글공작 관련 혐의를 추적하면서 공소내용을 추가하고 있고, 관련 재판도 한창 진행 중이어서 2014년 상반기 핫이슈 자리도 사전 예약해둔 상태다.
이 사건 중심에는 바로 원세훈(62) 전 국정원장이 있다. 원 전 원장은 서울시 수도국장으로 근무하던 당시 시장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눈에 들어 행정안전부 장관을 거쳐 국정원장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재임 중 ‘원장님 지시ㆍ강조 말씀’을 통해 국내에 있는 종북세력을 물리쳐야 한다며 심리전단 요원들에게 트위터, 포털, 유머 게시판 등에서 활동하도록 지시했다. 심리전단 인원도 대폭 늘렸다.
그 결과 검찰이 기소한 것을 기준으로 약 1년 동안 총 121만여 건이 넘는 선거ㆍ정치 개입 댓글이 나왔다. 포털사이트 뉴스 게시판이나 오늘의 유머 등 게시판에서 활동하면서 댓글을 달거나, 찬성ㆍ반대를 통해 당시 박근혜 대선 후보에게 유리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노출하거나 불리한 정보를 감추는 등 정치에 개입한 상황도 검찰이 포착했다.
원 전 원장의 이러한 혐의에 대한 재판은 아직 선고가 나오지 않았으나 유력 증거가 속속 드러나면서 당초 원 전 원장 측을 두둔하던 여당 의원과 보수 성향의 국민들마저도 그에게 등을 돌린 상태다. 원 전 원장은 건설업자에게서 1억6000여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도 별건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번 사안은 비단 원 전 원장의 개인 범죄나 부도덕에 대한 처벌 요구와 비난에 그치지 않고 여야 극한 대치와 국론 분열, 사회지도층 인사에 대한 무조건적 적대감과 불신 등 사회 전반에 큰 악영향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뒷수습에 들어갈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다는 지적이다.
검찰에선 개혁의 기수로 호평받던 채동욱(54) 검찰총장이 혼외아들 의혹으로 낙마하면서 국민에게 적잖은 충격과 실망을 안겨줬다. 채 총장은 검사들의 잇따른 비리와 검찰 수뇌 간 벌어진 항명파동으로 인해 최악의 겨울을 보낸 검찰을 구할 구원투수로 올 4월 등장했다. 전임 총장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해 공석이 된 자리를 메우면서 그는 흔들리는 검찰조직을 조기에 안정시키는 데 주력했다. 또 검찰 개혁을 진두지휘하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추징, 원전비리 수사, 4대강 사업 담합 수사, CJ그룹 비자금 수사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밀어붙이면서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9월 혼외 아들이 있다는 의혹 보도가 나오면서 채 전 총장은 급거 추락했다. 그는 “모르는 일이다”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하며 완강히 버텼지만 법무부가 자신을 상대로 감찰에 들어가자 사의를 표명했다. 의혹 해소가 우선이라며 사표 수리를 미루던 청와대는 검찰총장의 장기공백 우려에 따라 결국 사표를 수리했다. 검찰 신분을 벗고 자유의 몸으로 결백을 증명하겠다던 채 총장은 그러나 최초 의혹을 보도했던 조선일보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고, 내연녀로 지목된 임모 여인에 대한 명예훼손 고발 건도 처벌불원 의사를 밝혔다.
두 사정기관장의 불행한 은퇴는 검찰과 경찰에 적잖은 여파를 남겼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의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여주지청장)은 국정감사 때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는 동안 검찰 수뇌부의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다시 한 번 검찰에 큰 생채기를 냈다. 외압 주체로 지목당한 조영곤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윤 팀장도 최근 법무부 징계위에서 지시불이행 등에 따른 이유로 정직 1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이달 초 취임한 김진태 신임 총장은 이런 불상사로 증폭된 검찰의 수사 독립과 정치적 중립성을 사수해야 하는 절대과제를 안게 됐다. 김 총장은 취임사에서 이를 강조하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국정원발 악성 바이러스’는 검찰만 공격한 것이 아니다. 경찰에도 흉한 상처와 후유증을 남겼다. 수사 기간 내내 경찰은 사건 축소ㆍ은폐 논란에 휩싸였으며 김용판(58) 전 서울지방경찰청장과 권은희(39) 서울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은 이를 놓고 진실공방을 벌였다. 지난해 12월 서울 수서서 수사과장을 맡았던 권 과장은 올해 2월 송파서 수사과장으로 인사 조치된 뒤 2개월 만인 4월, 국정원 댓글 수사와 관련해 경찰 수뇌부의 은폐ㆍ축소 지시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권 과장의 양심선언을 계기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은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교수와 학생, 시민이 거리로 나서 시국선언을 낭독했으며 일선 경찰들은 대국민 ‘사과 릴레이’를 하기에 이르렀다. 권 과장에 대해 ‘정치 경찰’ ‘소영웅주의자’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쏟아졌으나 권 과장의 근무지로 꽃다발과 편지 등 각종 선물이 쇄도하는 등 열띤 응원도 이어졌다.
조용직·김재현·김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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