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기간 400일, 제작진은 ‘멘붕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아마존’에선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곤충은 달랐다.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4억년간 진화해온 그들의 ‘위대한 본능’으로 인해 가장 속이 탔던 건 제작진이다. 애타는 마음에 화가 치밀어 매일 아침 기도하는 심경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급기야 곤충들과 대화도 텄다. 달래기도 했고, 역정도 냈다.

“여기 좀 봐줄래?”, “그래, 거기 가만히 있어줘.”, “야! 이씨. 움직이지 말라고.”

이승기(‘곤충, 위대한 본능’ 내레이션) vs 이승기(‘꽃보다 누나’)의 대결엔 패했지만, 하나는 증명했다. ‘드림팀의 진화’였다.

희생양 없이도 쫄깃한 ‘악마의 편집’에 60분은 짧았다. 존재조차 가물거렸던 곤충들의 표정은 실사보다 실감났다. 폴리 효과를 입은 잠자리가 ‘착착착’ 날갯짓을 하면 희미한 바람소리가 꽃잎을 흔들었다. 우아한 장수말벌은 전의에 휩싸인 배경음악을 뒤로 한 채 꿀벌소탕 작전을 폈다. 생동감 넘치는 음악 뒤로 ‘잡식성 먹방’ 갈색여치가 등장해 1㎝도 되지 않는 극동버들바구미의 짝짓기 장면을 염탐했다. 후반작업에 상당한 공을 들인 탓에 영상과 배경음악, 음향의 조화가 빛을 발했다. 다큐의 일순위라는 ‘스토리텔링’도 놓치지 않았다.

‘눈물’ 시리즈 이후 다시 뭉친 드림팀을 만났다. ‘곤충, 위대한 본능’을 연출한 김진만, 김정민 PD와 3D 촬영으로 ‘곤충다큐’ 퀄리티를 한층 높인 손인식, 윤권수 촬영감독이다.

▶‘곤충과의 스킨십’ 그 후=‘곤충, 위대한 본능’ 편을 장식한 26종의 주인공은 사실 유명한 얼굴들이다. 장수말벌을 비롯해 나나니벌과 장수풍뎅이, 개미, 푸른큰수리팔랑나비 애벌레, 긴다리 쇠똥구리. 일단 외모도 받쳐주고, 스토리도 풍부해야 주인공 자격을 얻게 된다.

“자꾸만 벌레를 잡으라고 하니 짜증이 식을 날이 없을” 만큼 곤충에게 애정을 갖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주인공’들과의 스킨십은 사람을 먼저 변화시켰다.

“촬영을 하다 보면 종교가 없는데도 신을 찾게 되더라고요. 누군가 만들지 않으면 이 작은 생명체가 존재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욕구 충족의 본능만 가지고 태어날 뿐 그것을 어떻게 충족시켜나가야 할지에 대한 본능을 타고나진 않아요. 곤충들은 다르더라고요. 일벌들은 태어나자마자 일을 하고, 애벌레는 방어능력을 타고나요. 이 본능들이 누군가 정교하게 세팅해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학습도 없이 죽을 때까지 프로세스가 계획돼 있다는 게 신기했죠. 인간보다 낫더라고요.”(김정민)

“지구상에 불필요한 것은 없고 모두 자기 역할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끄러운 매미는 종족번식을 위해서만 존재할 것 같지만, 가지치기를 해주는 역할을 해요. 세상의 모든 것엔 자기의 역할이 있고, 필요치 않은 것은 없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심지어 굉장히 효율적인 삶이에요. 나비는 우화 이후 체내의 불필요한 물질은 다 뱉어내요. 곤충들은 인간과 달리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필요한 만큼만 쓰고 있다는 생각에 반성도 했죠.“(손인식)

쌍살벌
쌍살벌
장수말벌 VS 꿀벌
장수말벌 VS 꿀벌

▶곤충에게서 ‘인간’을 읽다=금요일 밤 10시, 경쟁작은 쟁쟁하고 리모컨은 중년여성이 쥐고 있다. “누가 곤충을 보겠냐” 싶었지만 시청자들은 곤충의 삶에서 인간을 읽었다. 제작진도 마찬가지였다.

“하루하루 너무나 치열하게 살아요. 매미는 태어나 성충이 되기까지 2주가 걸려요. 모든 곤충의 삶은 불과 몇 달이죠. 그 안에 자신의 DNA를 남기지 않으면 태어난 의미가 없는 거예요. 그때까지 짝짓기를 하고, 흔적을 남기죠. 그 치열한 삶은 인간 못지않아요.”(김진만)

“정말 치열하게 살지만, 군집생활을 하는 벌이나 개미 중에도 뺀질이는 있더라고요. 몇 녀석들은 놀기만 하고 왔다갔다 일하는 시늉만 내는 거예요. 여왕벌이 오면 그때서야 무언가를 하는 척 해요. 사람과 참 닮았죠?”(윤권수)

아주 짧은 생애동안 자신을 지키고 종족번식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지만, 그 와중에도 ‘잉여’는 존재했다. 하지만 김진만 PD는 자연계엔 ‘인과응보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했다. “여왕이 페로몬을 조절해 노는 애들은 결국 짝짓기의 기회를 잃는다”는 법칙이었다.

매미
매미

곤충의 삶은 인간의 삶과도 ‘판박이’였다. 암컷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선물을 골라 ‘뻥튀기 포장’을 하는 ‘참밑들이’의 모습은 호감있는 이성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의 방식과 같았다. 위대한 모성애는 ‘불변의 진리’였다.

“어미의 온 삶은 새끼를 키우는 데 할애돼 있어요. 감동적인 모성이에요. 자녀들이 볼 때는 엄마의 잔소리가 다르게 들릴 것 같고, 부모들이 볼 때는 나뿐만이 아니라 지구상 모든 생명체가 자식 때문에 속을 썩고 있다는 전지구적 동질감을 받으실 거예요.”(김정민)

‘애드리브의 강자’ 김진만 PD는 고민도 앞섰다. “쓸모없는 남편들의 한량 짓이 많이 나오죠. 이 다큐로 인해 부부싸움 날까봐 걱정이에요.(웃음)”

▶‘곤충, 위대한 본능’은?=방송다큐 사상 최초로 25%의 시청률을 쏘아올린 ‘아마존의 눈물’을 만든 김진만 PD와 김정민 PD, 고혜림 작가가 의기투합한 MBC 창사 52주년 특집 다큐멘터리다. 총 제작기간 700일(기획 300일+촬영 400일), 제작비 10억원을 투자했고, 11명의 촬영팀ㆍ30명의 기술팀을 투입해 대한민국 6만5430㎞를 이동하며 총 50여종(주인공 26종+엑스트라 24종)의 삶을 담았다. 멸종된 줄 알았던 긴다리 쇠똥구리도 23년 만에 충북 제천에서 발견했다. MBC 특수촬영의 일인자 손인식 감독은 이번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3D 접사 카메라(MBC 손3D 인섹트(insect) 캠)를 제작해 0.5㎝도 되지 않는 곤충들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담아냈다. 곤충과의 눈높이를 맞추는 과정이 핵심이었다. 촬영에 쓰인 3D 카메라만도 총 8대, 무려 1000시간을 찍어둔 다큐에서 군더더기는 가차없이 쳐냈다. 아무리 아까워도 ‘생략과 축약’을 모토로 삼아 지루하지 않은 다큐 만들기에 매진했다. “재미없어도 교훈적이니 보라”는 일방통행은 금물이었다. “한국적인 색채는 덜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곤충, 위대한 본능’은 향후 3D영화로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오는 13일에는 2부 ‘엄마의 본능’ 편이 방송된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곤충사진=MBC]

23년 만에 충북 제천에서 발견된 긴 다리 쇠똥구리
23년 만에 충북 제천에서 발견된 긴 다리 쇠똥구리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