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주요 그룹들이 단행하는 연말 정기인사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공통적으로 한 해 성과에 대한 분석과 다가올 새해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 기업 인사 결과로 반영된다. 변화의 폭과 내용을 통해 조직 쇄신 강도 또한 가늠할 수 있다. 한 해 결산과 다음 해 계획이 모두 정기인사를 통해 드러나는 셈이다.

2022년 연말 정기인사를 마무리한 재계는 그 어느 때보다 백척간두의 상황에 놓여 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삼고(三高)’ 복합위기가 닥치며 재고 상승과 자금 압박 등 경영위기로 당장 4분기 실적이 곤두박질칠 전망이다. 내년 경기침체가 더욱 급속화될 수 있다는 지표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다. 올해 사장으로 승진하거나 대표이사로 신규 선임된 인사들은 당장 닥칠 파고를 넘어야 한다는 큰 숙제를 받게 됐다. 이들 나이는 대체로 50대 중반으로, 1960년대 후반 출생이다. 기업들은 새 리더들을 발굴하며 위기극복의 키를 맡겼다.

50대 중반 CEO(최고경영자)들과 호흡을 맞출 40대 부사장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삼성전자만 봐도 이번 정기임원인사에서 40대 부사장 17명을 새롭게 발탁했다. 전체 승진인사는 지난해보다 줄었지만 40대 부사장 승진자는 지난해 10명에서 올해 17명으로 증가했다. 현대차 신규 임원은 3명 중 1명이 40대다. ‘젊어지는 임원’과 ‘세대교체’는 인사 때마다 등장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하지만 올해 인사를 예년처럼 해석하기에는 재계에 깔린 위기감이 사뭇 다르다. 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기존의 전략과 대책만으로는 경기침체를 헤쳐나가기 위한 해법을 모색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성과를 낸 인재를 조기 발탁하는 원칙도 있지만 새로운 솔루션을 찾기 위한 처절함이 함께 담긴 것”이라고 의미를 풀이했다.

그룹 곳곳에서 등장하는 여성 사장들의 약진도 올해 인사포인트 중 하나다. 오너일가를 제외한 최초의 여성 사장이 잇따라 탄생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유리천장(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장벽)이 깨졌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여성을 사장으로 승진시킨 이유는 양성평등과 다양성 가치 때문만은 아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한 경쟁력이야말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열쇠라고 본 것이다. 동시에 새로운 변화를 유도해 조직을 쇄신하겠다는 의도로도 읽힌다.

이와 더불어 직급을 폐지하고 직무 중심의 조직으로 개편하는 것 또한 확산되고 있다. 위기를 돌파할 해결책을 찾기 위해 조직의 근본 체계부터 바꾸겠다는 각오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계획은 했지만 국내 현실상 도입이 늦춰지다 글로벌·수평적 문화 확산이 시급해 전면 시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올해는 이재용 삼성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 등이 승진하며 재계 3세 리더십이 한층 강화되는 분위기다. 그룹 곳곳에서 4세들의 승진도 이어졌다. 차세대 임원과 여성 인재가 적극 중용되는 것 또한 이 같은 흐름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새 시대를 이끌 리더십에 맞춘 참모의 재편이면서 난관을 뚫기 위한 깊은 고민의 흔적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새삼 무겁게 느껴지는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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