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리베카 솔닛 지음, 노지양 옮김,창비)=현재 세계의 주요 정책적 이슈가 된 환경과 기후문제, 인종차별에 대한 공분과 저항,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는 미투운동은 어느날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적어도 수십년 동안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더디게 흘러가며 마침내 큰 흐름을 만들어낸 것이다. ‘맨스플레인(man+explain)’현상을 통렬하게 비판, 전세계적 공감을 끌어낸 솔닛은 이런 변화가 거스를 수 없는 물결임을 확인시켜준다. 오래된 남성 중심주의와 가부장제, 백인 우월주의가 도전받고 있으며, 침묵을 강요받았던 이들이 점점 더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기득권자들의 백래시는 당연하다. 일부에선 안정과 편안함을 이유로 과거로 돌아가려 한다. 솔닛은 이런 갈등과 부딪힘은 오래된 이야기의 새로운 주인공을 찾는 일, 즉 백인 남성의 시각에서 벗어나 여성, 비백인, 비이성애자 등의 관점에서 다시 말하려는 싸움으로 본다. 솔닛은 책에서 우선 침묵을 깨기 시작한 이들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우리 사회의 서사가 주로 백인 남성 중심으로 만들어졌으며, 사회가 그들에게 얼마나 관대했는지, 남성 서사가 과대 대표되는 현실을 낱낱이 밝히고 목소리를 가질 수 없는 ‘노바디’ 취급을 받아온 여성들의 현실을 들려준다. 또한 솔닛은 익숙한 언어 대신 새로운 시선으로 새로운 시대를 증언한다. 특히 뉴욕시 곳곳에 남성의 이름을 딴 거리, 지하철역, 기념비 등을 모두 여성의 이름으로 바꾸는 지도 제작 프로젝트 ‘여인들의 도시’를 소개하며 도시의 ‘남풍경(manscape)’을 새로이 명명한다. 언어와 개념, 작은 목소리와 연대의 힘에 대한 솔닛의 날카로움과 위트, 통찰이 빛난다.

‘’▶애즈 어 서비스다!(김경훈 외 지음, 페이퍼로드)=제조업에서 서비스산업으로의 진화는 3차산업에서 시작됐지만 디지털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4차산업혁명 시기, 거의 모든 분야가 서비스경제로 바뀌는 추세다. 전통적으로 차를 생산해 팔기만 하던 자동차 제조업체는 ‘모빌리티 애즈 어 서비스’로 바뀌고 있다. 소비자가 이동성을 필요로 할 때 차를 제공하거나(카 셰어링), 일정기간 빌려주는(구독경제) 서비스 제공업체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저자들은 최근 경제 패러다임이 ‘애즈 어 서비스’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한다. 즉 서비스‘로서’ 변신한다는 의미다. 이는 애초에 서비스산업으로 출발한 곳들도 다르지 않다. 가령 아마존닷컴은 웹서비스를 내놓았지만 지금은 ‘플랫폼 애즈 어 서비스’로 불린다. 은행은 디지털플랫폼과 AI프로그램을 통해 더 지능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뱅킹 애즈 어 서비스’로 바뀌고 있다. 이들 서비스의 목표와 방향은 결국 하나로 모아지는데 소비자의 문제해결이다. 저자들은 이를 문제중심사회라 규정, 경계를 넘나들며 소비자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애즈 어 서비스’야말로 경제의 기본 개념을 흔드는 게임체인저라고 본다. 즉 소유에서 비소유로, 시장에서 디지털 플랫폼으로, 소비자에서 메타 서비스로의 전환이다. 바로 이 세 가지가 애즈 어 서비스의 3요소다. 책은 애즈 어 서비스를 관련 분야별로 하나씩 분석하고, 각 산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와 어떻게 성장할지, 현재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기업들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꼼꼼하게 분석했다.

▶최소한의 선의(문유석 지음, 문학동네)=양보·상호이해·자제·존중….이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우리 사회 덕목 들이다. 많은 이들이 이젠 이런 일상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대신 막말과 증오, 혐오가 횡행하고 SNS에선 사생활 침해는 물론 인격 살인도 흔하게 이뤄진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이에 대한 타협의 여지는 없다. ‘개인주의자 선언’ 으로 한국 사회의 집단 주의를 통쾌하게 비판했던 저자는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최소한의 선의가 무엇인지 법의 정신을 통해 짚어준다. 모든 법의 위법인 헌법의 정신은 인간의 존엄성에 기반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얼마든지 유별나고, 비루하고, 불온할 자유가 있다”. 누군가가 눈엣가시처럼 보일지라도 함부로 그를 비난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는 얘기다. 잘 알려진 대로 나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곳에서 멈춰야 한다. 그렇다면 남의 자유를 침해하고 짓밟은 자에 대한 처벌은 왜 일반의 법 감정과 차이가 날까? 저자는 우리 헌법 질서에 내재한 ‘인본주의’와 ‘공리주의’가 형벌에 대해 ‘필요한 최소한’의 관점으로 접근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선처를 베풀고자 하는 법관들의 문제점도 지적한다. 우리 사회 화두인 공정성과 정의의 문제를 평등이라는 헌법적 핵심 가치 위에서 풀어간 대목은 곱씹어볼 만하다. 저자는 “법 앞에 평등”에서 나아가 “모든 국민은 인간 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에서 평등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법을 통해 배우는 타협의 기술이다.

이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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