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직장인이 자신의 회사 상사를 범죄 혐의가 있다며 경찰에 고발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 상사는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재판이 열렸는데, 신고자가 판사다. 재판이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문제의 신고자 겸 판사는 ‘이 재판부 구성에 문제가 없다’고 선언하고 빠진다. 그리고 “다음 재판에는 증인으로 나오겠다”고 한다.

사건 제보자가 판사도 맡고, 증인도 하는 ‘1인 3역’ 재판이 불공정하고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전문 지식이 없더라도, 상식선에서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법무부에서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해임 여부를 결정하는 사안에서 이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지난 10일 1차 징계위에 투입된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은 가장 핵심 쟁점인 ‘판사 사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다. 심재철 국장은 올해 초 대검 반부패부장 재직시절 ‘판사 문건’을 보고받았고, 8월 인사에서 검찰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추 장관은 11월 이 문제를 징계 및 수사의뢰 사안으로 삼았다.

윤 총장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상식에 입각해 따져보자. 심 국장이 징계위에 참여하는 게 과연 공정한가. 이 사안은 첫 검찰총장 징계 회부사안으로 역사에 남는다. 그런데도 추미애 장관은 심 국장을 기어이 집어넣었다. 총장만 날릴 수 있다면 수단을 가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독립된 의견을 표명할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의중을 그대로 반영할 사람이 절박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 심 국장은 1차 징계위에서 공정성 논란이 벌어지자 다른 위원들에게 ‘기피 사유’가 있는지를 가리는 과정에 참여했다. 심 국장이 빠지면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심 국장은 다른 위원들에게 문제가 없다고 판단을 해준 뒤 스스로 징계위에서 빠졌다. 애초에 본인에게 자격이 없다면, 다른 위원들에 대한 기피 심리에도 관여하지 말았어야 했다. 심 국장은 15일 2차 징계위에도 증인으로 채택됐다. 1인 3역이다.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해임할 법적 근거는 없다. 임기 2년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법원이 윤 총장을 직무에 복귀시킨 가장 큰 논거도 임기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나는 검찰총장을 신임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면 총장은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 이것은 법의 영역이 아니라 현실정치의 문제로, 대통령이 직접 나서고 책임도 지는 방식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이 사안에 침묵을 지키다 ‘절차적 공정성’을 주문했다. 하지만 추 장관은 징계위를 여는 과정에서 매우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공정성 확보에 한계를 보였다. 문 대통령도, 추 장관도 법률가 출신 정치인이다. 이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안다.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이 꺼낸 ‘절차 공정성을 확보하라’는 말은, ‘일단 윤석열을 날려라’라는 의미로 작용했다. 문 대통령은 검찰총장을 불신임하면서 져야 할 정치적 부담을 회피하고 형식상 징계위 결정에 따르는 방식을 승인했다. 그러한 맥락에서 추 장관은 공직자로서 양심을 져버렸고, 문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대통령(박정희)은 중앙정보부장 김규평(김재규)에게 박용각(김형욱)을 죽이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대신 내뱉는 말은 ‘임자 뜻대로 하라’였다. 박용각을 살해하더라도, 그것은 내 뜻을 헤아린 ‘너의 행위’이기 때문에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소리다.